저물어가는 창천에서 보랏빛을 찾던 일,
현학을 위해 익숙하지도 않은 사전을 뒤지던 일,
무엇이 옳고 글러먹었음을 담뱃재 흩날린 테이블에서 열띠게 부르짖던 일,
무리에서 느끼던 포근함을 버리고 구태여 고독을 씹던 일,
낭만의 부재를 죽음보다 못하게 여기고 사고의 부재를 가난보다 못하게 여긴 일.
그런 것 따위 잊었소.
죽음이 두렵소이다. 홀로 남겨지면 날 집어삼킬 어둠에 갓난아이처럼 떨었소. 나의 확신이 비난받을까 무섭소. 황금빛의 편린이라도 잡으려치면 낭만도, 사고도 없는 편이 낫더이다. 그리하여 얼이 빠진 얼간이가 되었으니, 이제 가진 것은 병든 몸뿐이라 육신의 죽음이 더욱 두렵소이다.
분쇄된 혼으로 집문서를 사면 이문이 얼마나 남소이까? 흐려진 안광으로 감투를 사면 수지맞는 장사이오이까? 황금으로도 젊음을 살 수 없다는 말은 졸부들의 말놀음인줄로만 알았는데, 종이쪼가리를 한장 가질 때마다 명징했던 머릿속이 뭉개져만 가는 것은 어떤 까닭이오?
이제 내 피에는 젊음은 가시고 콜레스테롤이 흐른다 합니다. 나이든 심장은 판에 찍은듯 꼭 같기만 한 나날을 보내도 더더욱 쥐어짜내야 합디다. 조선땅 동년배 중에 이만한 하자 없는 몸 타고난 사람이 얼마나 되냐한들, 흰 가운 입은 샌님 앞에서 몸사진을 찍을 때면 도마 위 생선이 된 것만 같소.
살아온 쳇바퀴를 한바퀴 더 돌면 정말로 끝이오. 남들은 기꺼이 죽고자 함이 근심이라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삶의 동앗줄을 쥐는 손아귀가 더욱 굳세어져 가오.
그런 것 따위 잊었소
2025. 5. 13.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