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사를 알아보기 전에 유럽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 역사적 특징을 말하자면, 유럽국가들은 한놈이 잘나가는 꼴을 못봐주는 특징이 있어. 그 이유가 바로 유럽대륙 국가들이 찢어진 걸레쪼가리처럼 덕지덕지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한놈이라도 균형을 깨고 팽창을 시도하면 자국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기 때문이지.



프랑스 혁명 이후 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 유럽에는 5개 강대국이 있었다. 영국, 프랑스, 프러시아(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지. 개괄적으로 설명해줄게. 좀 유치하지만 이해하기 쉽게 게임하듯 능력치를 별로 평가해볼게. 이건 어디까지나 한눈에 보기쉬우라고 하는거지 별이 몇개가 되어야되느니 하는 소리는 안해줬으면 해. 밑에서 현상유지적이라는 말은 정세나 판도의 변화를 꺼려하는 성향이라는 뜻이고, 현상타파적이라는 것은 정세나 판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성향이라는 거야.


1) 영국 : 영국은 해양세력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육군력이 약했고, 따라서 대륙유럽국가들과 직접적인 경쟁은 불가능했어. 다만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외식민팽창에 열을 올리지. 유럽 대륙에 한정해서보면, 영국이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던 곳은 벨기에~네덜란드 지역과 지중해 지역이었지. 또 영국은 유럽대륙에서의 "세력균형"을 대단히 중시했어. 이 이유는 바로 유럽대륙을 한 국가가 석권하게 되면 영국은 그야말로 고립되어버리기 때문이야. 나폴레옹 프랑스와 나치 독일로 인해 영국은 그런 엿을 두번이나 먹게되지.

육군 : ★

해군 : ★, 해군에서는 사실상 절대우위

(유럽에서의) 영향력 : ☆, 세력균형 중시하며 개입 피하는 듯 하지만 주요사건에는 모두 개입. 현상유지적.

(유럽에서의) 주요지역 : 벨기에, 네덜란드, 지중해

주요 경쟁국 : 러시아, 프랑스


2) 프랑스 : 프랑스는 러시아와 더불어 유럽의 전통적인 육군강호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이어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까지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유럽대륙에서의 팽창을 추구하지. 프랑스가 이렇게 팽창정책을 취하게된 것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상 프랑스는 해양에서는 영국에게, 대륙에서는 프러시아-오스트리아에게 포위된 위치야. 나중에는 이탈리아까지 프랑스 포위망에 가세하게 되지. 따라서 자국이 군사력을 증강시키지 않으면 3대 강대국에 의해 옭죄이게 되는거지. 프랑스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중해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 프랑스와 바로 아래에 접한 이탈리아반도에서 오스트리아와 경쟁하고 있었어.

육군 : ★★(나폴레옹 시절) > ☆(나폴레옹 이후)

해군 : 

(유럽에서의) 영향력 : , 거의 모든 유럽사 사건에 프랑스가 개입된다고 보면 된다. 현상타파적.

(유럽에서의) 주요지역 : 벨기에, 네덜란드, 지중해, 이탈리아 반도, 남부독일, 북아프리카

주요 경쟁국 : 영국(지중해에서), 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서), 러시아(지중해에서)


3) 프러시아 : 비스마르크가 등장하기 전의 프러시아는 그야말로 간신히 강대국 대열에 턱걸이한 약체국가였지. 다만 나폴레옹전쟁 이후 탈탈 털리고나서는 군대개편 등을 시도했고, 그게 나중에 독일이 성장하는 엔진이 되었지만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러시아는 그저 타 강대국들에게 묻혀버리는 그런 존재였어. 독일지역 내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맹주자리를 두고 경쟁했지만, 독일 외의 유럽문제에 있어서는 같은 게르만족이라는 이유로 오스트리아와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 이건 나중에 삼국동맹으로까지 이어지지.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프러시아는 쩌리 신세를 면하게 되고, 이후에 유럽 전통강호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탈탈 털면서 명실공히 유럽 제1의 강대국으로 급부상하지.

육군 : ★(쩌리 시절) > (비스마르크 등장 이후)

해군 : ☆(쩌리 시절) > ☆(세계정책), 프러시아는 전통적인 육군국가로 해군에 투자할 자금부족.

(유럽에서의) 영향력 : ☆(쩌리 시절) > ★(비스마르크 등장 이후), 현상유지적.

(유럽에서의) 주요지역 : 갈갈이 찢어진(...) 독일지역, 폴란드

주요 경쟁국 : 프랑스(남부독일에서), 러시아(폴란드에서), 오스트리아(독일지역 내에서)


4)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의 성향은 영국과 유사하고, 지리적인 상황은 프랑스와 유사해. 프랑스,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육군강대국에게 포위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친했지만 안으로는 경쟁상대였던 프러시아와도 독일에서의 주도권을 쥐고 경쟁해야했으니 참 고달픈 상황이었지. 오스트리아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민족주의의 득세이기도 한데, 그럴만큼 오스트리아는 다민족제국이었어. 이후에 오스트리아가 국명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바꾸게 된 것도 바로 그만큼 소수민족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거지. 여기저기서 민족주의 분리독립운동이 발발할 때마다 오스트리아는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였어. 특히 발칸반도가 화약고로 변하면서부터 오스트리아는 급격히 쇠약해지기 시작했지.

육군 : ★

해군 : , 지도에서 오스트리아 위치를 보면 왜 해군이 이 모양인지 알 수 있다.

(유럽에서의) 영향력 : ☆, 현상유지적 국가.

(유럽에서의) 주요지역 :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독일지역, 폴란드

주요 경쟁국 : 프랑스(이탈리아에서), 프러시아(독일지역 내에서), 러시아(발칸 반도에서)


5) 러시아 : 러시아는 좀 과대평가된 육군강호였어. 영국과 프랑스가 그토록 경계하던 것치고 러시아는 상당히 약체임을 크림전쟁 때 다 까발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러시아는 유럽사에서 무시못할 강대국이자, 모든 유럽대륙이 잠재적으로 견제대상으로 삼던 국가야. 그러나 러시아의 특성상 그 거대한 영토만큼 마주하고 있는 경쟁세력도 무척 많았기 때문에 국력의 분산이 필연적이야. 이 때문에 1904년에는 듣보잡 열강따라하기 세력인 일본에게 함대를 완파당하게 되지. 러시아가 그 거대한 세력으로도 유럽을 제패하지 못한 건, 바로 위에서 봤듯이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육군 : ★

해군 : ☆,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흑해에서 지중해로 기어나오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

(유럽에서의) 영향력 : , 처음에는 현상유지적이었으나 크림전쟁에서 패한 이후 현상타파적.

(유럽에서의) 주요지역 : 폴란드, 발칸 반도, 페르시아, 오스만, 동아시아 등등등(...)

주요 경쟁국 : 영국(지중해에서), 프랑스(지중해와 오스만에서), 프러시아(폴란드에서), 오스트리아(발칸 반도와 오스만에서).



위와 같이 유럽 강대국은 서로를 물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지들만의 역사를 써내려가는데, 굳이 유럽사를 서술하는 이유는 백인 다이스키♥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외교적 술수 등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고, 또 이런 유럽의 걸레쪼가리 싸움이 1,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야. 역사적으로 상당히 동적이고 중요한 지역이 아닐 수 없지.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패권은 차례로 프랑스 -> 영국+러시아 -> 독일이 쥐게 돼. 그 중 시간순서대로 프랑스부터 알아보자.


자 위에 동네 모자란 애처럼 생긴 형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 되시겠어. 이 사람이 왜이렇게 중요하냐 하면은 먼저 프랑스 혁명부터 알아봐야해. 그런데 프랑스 혁명만 해도 그 과정이 몇페이지는 서술할만큼 이야깃거리가 많고, 그렇게되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근대유럽사의 개괄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 그리고 나폴레옹의 등장,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등을 알아볼거야.


아 참고로 나폴레옹은 키가 작은걸로 유명하지만, 당시 프랑스 남성 평균키를 고려해보면 그리 작은 키도 아니라고 해. 그리고 그 나폴레옹이 말타고 있는 사진 알지? 그건 굉장히 잘생기게 그리게하라고 해서 그렇게 그린거긴 하지만, 나폴레옹이 인물이 꽤 그래도 괜찮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프랑스 혁명(1789)

프랑스에서 인류 최초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혁명이 발생했어. 그 유명한 프랑스 혁명이지. 이 혁명으로 인해 기존에 프랑스를 통치하던 부르봉 왕조가 붕괴되고 혁명세력을 중심으로 선거를 통한 의회가 구성돼. 당시 유럽 주요강대국들의 정치체제가 왕정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사상초유의 사태인거지. 이렇게 프랑스 혁명으로 수립된 공화정 정치체제는 당시까지만해도 이상적으로만 서술되던 정치체제였어. 고대 아리스토텔리스, 플라톤 등은 민주정을 중우정치로 멸시하였었고, 이후에 등장한 중세의 키케로 등도 민주정 단일로는 중우정치로 흘러갈 소지가 크니 왕정+귀족정+민주정이 혼합된 혼합정을 지지했어. 로마가 바로 그 혼합정의 예시였지(로마황제+원로원+호민관). 여튼 민주정 단일로만 현실세계에 나타난 건 프랑스 혁명이 최초야.


그런데 혁명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강해. 이 국가에서 한번 들고일어나면 바로 옆에 국가에서도 들고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이건 나중에 1830년대 혁명과 1848년대 혁명을 통해 알아보게 될거야. 아무튼 주변국은 전부 왕이 통치하는 정치체제인데, 웬 백성들이 자신들이 통치하겠다면서 민주정부를 구성하자 프랑스 주변국들은 똥줄이 타기 시작하지. 자칫 프랑스 혁명이 자국으로 번졌다가는 자기들도 엿을 먹을 판이었거든. 참고로 Stephen Walt라는 사람은 혁명이 종종 전쟁을 야기한다고 주장했어. 혁명이 발생하면 주변국의 안보불안이 높아지고 주변국은 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혁명국가를 침공한다는 거야. 반대로 혁명이 발생한 국가 입장에서는, 자국의 혁명을 수출하거나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변국으로 팽창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해.


혁명전쟁(1792~1802)과 나폴레옹 전쟁(1803~1815)

혁명전쟁이라는 전쟁명칭은 없고,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고나서 주변국이 프랑스를 못 잡아먹어 안달났다가 프랑스에게 탈탈 털리는 일련의 전쟁들을 말해. 나폴레옹 전쟁은 주변국의 프랑스 침공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나서 이번엔 거꾸로 나폴레옹이 주변국들을 짓밟아버리는 일련의 전쟁을 말하지.


1792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연합군을 프랑스에 파병해. 위에서 설명했듯, 프랑스 혁명에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국가는 바로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였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와 바로 접경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러나 프랑스가 아무리 혁명으로 엉망이 된 상태여도 당대 최강의 육군강대국이었고, 보오연합군(프러시아+오스트리아의 음차)은 프랑스에게 실컷 두드려맞게 돼. 이듬해 1793년,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까지 끌어들여 연합군을 형성하고 프랑스를 침공해. 여기서 프랑스가 털렸다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프랑스는 마찬가지로 가뿐히 이들의 침공을 막아내.


사실상의 유럽 침공이 모두 차단되었어.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은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제1통령으로 등극(1799)하게 돼. 이후 1804년에 나폴레옹은 황제자리에 등극하게되고, 프랑스의 공화정은 사실상 다시 제정으로 회귀하게 되지만 혁명세력은 이를 반대하지 않았어. 나폴레옹은 태생부터가 혁명세력이었기 때문이지. 나폴레옹은 1805년에 오스트리아를, 1806년에 프러시아를 격파하고 이들을 프랑스 세력권에 복속시켜. 이듬해 1807년에는 러시아까지 침공하게 되지. 이 때 변증법으로 유명한 독일 철학자 헤겔이 프랑스의 승리를 "역사의 종말"이라고 표현했어. 보수적인 왕정질서가 무너지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민주공화정+자유주의가 바로 인류역사 발전의 최종단계라는 의미였지. 이후 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고나서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도 똑같은 제목의 책(역사의 종언)을 내는데, 이는 사회주의 소련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실패하였고,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가 명실공히 역사의 최종발전단계라는 의미였지.


아무튼 나폴레옹 프랑스는 영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유럽 전부를 자신의 세력권에 복속시켜.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 계획까지 수립했지만 영국 본토에 상륙하기 위해서는 당대 최강이었던 영국해군과 맞붙어야될 상황이었지. 나폴레옹이 선택한 것은 프랑스 함대와 스페인 함대를 연합하여 영국해군과 맞붙는 것이었는데, 영국의 명장 호레이쇼 넬슨 제독에 의해 이 연합함대는 격파되지. 영국은 또한 이베리아 반도(포르투갈과 스페인 있는 반도)에 웰링턴 공작을 파견하여 프랑스와 게릴라전(이때 게릴라라는 스페인어가 처음 창시돼)을 하는데, 웰링턴 공작의 게릴라는 프랑스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히게 되지.


영국 본토에 상륙하기가 어려움을 깨달은 나폴레옹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바로 대륙봉쇄Continental System야. 영국을 대상으로 유럽 전체에서 영국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대영무역을 완전히 봉쇄하려고 했지. 그러나 영국은 물자를 수입할 수 없게되자 배급제를 실시하는 등 행정적으로 대처를 참 잘했고, 영국과의 무역에서 이득을 얻던 유럽국가들이 영국과 밀무역을 함으로써 이 대륙봉쇄체제는 결국 붕괴하고 말아. 이 대륙봉쇄 붕괴의 주범은 바로 러시아였어. 러시아는 프랑스 침공 때 털리긴 했지만, 아직 본토의 강력한 육군은 건재했고, 나폴레옹 따위가 유럽을 제패한 데 대하여 불만이 상당했지. 또한 나폴레옹이 다른 유럽 국가는 복속시켰을지언정, 러시아는 프랑스와 거리도 멀고 또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프랑스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전달되기가 힘들었어.


나폴레옹 또한 고분고분 자기말을 듣지않는 러시아를 아니꼽게 보고 손봐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돼. 따라서 1812년 6월에 러시아를 침공하지. 러시아군은 당대의 먼치킨 군대인 프랑스군과 직접 대적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 따라서 "초토화 작전"을 시도하는데, 이게 뭐냐면, 프랑스군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고 계속 후퇴하면서 자국 영토의 자원을 모두 불살라버리는 거야. 이렇게되니 프랑스군이 땅을 점령해도 도저히 거기에서 이득을 취할수가 없게 되지. 프랑스군은 결국 모스크바까지 점령하게됐지만 러시아는 뭐 상관없었어. 여전히 당대 러시아 중심지였던 상뜨페테르부르크는 건재했고, 프랑스군은 점점 지쳐만 갔지. 시간은 러시아의 편이었어. 러시아에는 어느덧 혹한의 겨울이 도래했고, 프랑스군은 대규모로 퇴각하기 시작해. 러시아는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공격했고, 프랑스군은 50만의 파병군 중 3만명만이 생존하여 달아나지.

cf) 참고로 1941년, 히틀러가 나폴레옹과 정확히 똑같은 실수를 하게돼. 이게 바르바로사 작전, 독일의 러시아 침공이야.


나폴레옹 프랑스의 몰락, 비엔나 체제(1814년 체제)

러시아 침공으로 프랑스는 급격히 막강한 육군을 대규모로 상실했어. 유럽국가들은 이때다싶어 프랑스에게 설욕전을 하게되지. 특히 프랑스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프러시아부터 시작해서 유럽 각국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나폴레옹은 실각하게 돼(1814). 유럽 연합세력은 프랑스 혁명세력을 짓누르기 위해 원래의 프랑스 지배세력이었던 부르봉 왕조 루이18세를 옹립하고, 루이18세는 유럽국가들과 평화협정을 맺어.


그리고 유럽 각국은 전범국가인 프랑스를 어찌 처리해야할지 논의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비엔나 회의에서 논의되지. 근데 이 회의는 지지부진했어. 일단 프랑스가 패권국가가 되니 자연스럽게 반프랑스 동맹이 형성되어 프랑스를 짓밟았지만, 전후처리에 대해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엇갈리게 되는거야. 비엔나 회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빈)에서 개최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외상 메테르니히Metternich는 자국에 불리한 논의가 지속될 때마다 무도회를 열어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게 했지. 이런 강대국들의 균열을 틈타 나폴레옹은 유배지로부터 탈출, 파리에 귀환해서 다시 황제자리에 복귀해. 결국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 프러시아군에 의해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패하고, 다시 유배당해.

cf) 당시 프랑스군이 심각하게 붕괴하긴 했지만,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군대는 승률이 사기캐 수준이었어. 따라서 워털루 전투에서 프러시아군과 영국군은 한가지 묘안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부대와의 교전은 피하고, 다른 지휘관이 지휘하는 부대부터 먼저 부수고 보자는 식이었지.

cf2) 나폴레옹이 유배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강대국들은 그의 목숨을 빼앗지 않았을뿐 아니라, 황제의 지위는 유지시켜주겠노라 약속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다시 복귀해서 멍청한 짓을 저질렀지.


아무튼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로 인해 지지부진했던 비엔나 회의는 다시 진행되는데, 가장 중요한 의제는 바로 전범국가인 프랑스에 대해 강경한 평화협정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유화적인 평화협정을 맺을 것인가였어. 프랑스와 국경을 접한 탓에 많이 얻어맞고 거의 프랑스 보호령 수준으로 전락했던 프러시아는 저새끼들 용서못한다며 강경한 평화협정을 지지했지만, 다른 강대국들의 생각은 달랐어. ⓐ 먼저 영국/오스트리아/러시아의 국력이 프러시아보다 강하여 프랑스를 패퇴시키는 데 더 큰 기여를 했고, ⓑ 민족주의가 대두된 프랑스를 가혹히 압박하면 후에 프랑스가 복수를 다짐할 수도 있었으며, ⓒ 프랑스가 지나치게 세력이 약화되면 유럽대륙에서 세력균형이 붕괴되고, 이를 틈타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패권을 다시 노릴 수 있었지. 바로 러시아에 대한 경계론이 프랑스에 유화적인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결정적인 이유야.


나폴레옹 프랑스는 왜 강력했고, 왜 무너졌는가?

20여년이라는, 역사적으론 참 짧은 기간동안 프랑스라는 단일 국가를 제압하기 위해 엄청난 수준의 국제연합이 결성되었어. 이렇게 프랑스가 강력해질수 있었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


1) 민족주의와 국민군대 : 프랑스혁명으로 민족이라는 개념이 국민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모든 민족은 그들의 민족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지. 이는 이전의 기사중심 직업군인체제였던 군대제도를 국민징병제도로 전환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었어. 내 민족국가는 내손으로 지킨다는 개념이지. 프랑스에서 최초로 현대적인 방식의 국민개병제(레비앙마세Levee en Masse)가 실시된거야. 쉽게말해, 예전엔 군인하나를 양성하기 위해 훈련이니 장비니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이제는 수십만의 군대를 짧은 시간에 양성할 수 있게됐지. 음 논산훈련소에 매주 들어오는 인원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갈거야(...)


2) 전술의 변화 : 또한 소수가 금전적인 이유로 군복무를 하던 이전 군대제도와는 달리, 시민군이 병사계급을, 부르주아가 장교계급을 대체함으로써 많은 것들이 가능해졌어. 음 가령 예를 들면, 국민군대 이전에는 장교층을 기사계층이, 병사층을 사회하층민으로 채워넣었는데, 이 때는 충성도도 낮고 탈영률도 높아서 야간행군이 불가능했어. 그런데 국민군대제도가 들어서면서 야간행군이 가능해졌지. 또한 이러한 높은 탈영률 때문에 예전에는 적군을 추격하기도 쉽지가 않았는데, 국민군대에 이르러서는 적군을 추격하는 것도 가능해졌어. 따라서 전쟁의 양상이 제한전에서 섬멸전으로 변화하지.


3)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 : 나폴레옹은 사단 단위의 부대를 전술적으로 이용한 첫번째 사례이고, 이동식 대포를 효율적으로 이용했지.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실패했을까?


1) 타국의 프랑스 모방 : 타국이 프랑스를 모방하여 국민군대를 창설하기 시작했어. 프러시아는 본래 잘 훈련된 정예 직업군대를 보유했음에도 프랑스군에게 패하자 프랑스식 국민개병제도를 도입하게 되지. 또한 고등군사학교(현대의 사관학교)를 처음으로 설립하고, 능력주의를 확립해. 프랑스가 선발주자로 누릴 수 있었던 군사혁신의 이점을 프러시아 등도 누릴 수 있게된 거지.


2) 민족주의의 확산 : 근대 민족주의는 프랑스에서 태동되었어. 민족주의 이전에는 외국왕실이 자국을 통치해도 국민의 민심이 크게 나빠지지 않았지. 근데 민족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외국의 지배에 대한 국민저항이 강화돼. 이게 프랑스의 역설인데, 자국의 혁명가치를 전파시킴으로써 결국은 자국의 팽창을 가로막아버리는 꼴이 된거지.


3) 세력균형 :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 전국가가 힘을 합쳐 대항해. 정치학에서 현실주의의 전형적인 사례지. 약 반세기 후,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나폴레옹 프랑스와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 독일의 해외팽창을 자제하는 정책을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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