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룰 주제는 비스마르크 동맹체제의 붕괴 이후의 독일의 대외정책이야. 앞편을 잠시 정리하자면, 비스마르크는 ⓐ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을 외교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골자로 하였는데, 삼국동맹이란 독일-오스트리아 연합전선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고, 독일-이탈리아 연합전선으로 프랑스를 견제한다는 구상이었지. ⓑ 이러한 대러시아 포위망에 해상세력인 영국까지 끌어들여 지중해 협정(영국-이탈리아-오스트리아)을 결성하기도 했고. ⓒ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의 목을 조르기만 하지는 않았어. 러시아를 지나치게 고립시켰다가는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해버릴 수도 있었고, 그렇게되면 독일입장에서 전선이 동서부 2개로 갈라지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유리할 것이 없었지. 따라서 러시아와 재보장 조약을 체결하여 우호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형식적인 협력관계는 지속하였지. 한편 오스트리아는 계속해서 발칸지역으로 팽창, 오스트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와 연합전선을 형성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기에 이르렀어.


비스마르크 동맹체제의 취약성

오늘 살펴볼 주제는 바로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가 싸그리 무너지게되는 계기였어. 사실 얽히고설킨 비스마르크 동맹체제는 복잡한만큼 깨지기도 매우 쉬운 구조였지.


i) 특히 러시아의 불안감은 오스트리아의 발칸반도 팽창으로 인해 더욱 증폭되었는데, 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러시아가 지원해줬던 국가들이야. 러시아 입장에서는 만약 이들 국가가 독립하지 못한다고 해도 오스만에 대해 강력한 입김을 불어넣을 수가 있었고너네 X같이하면 확 찢어버리는 수가 있어, 만약 이들 국가가 독립한다면 같은 슬라브계인데다가 자신들의 독립을 지원해준 러시아에 대해 의존할 가능성이 매우 컸지. 결국 이들 국가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단기적으로는 러시아의 계산대로 친러시아적인 성향을 보였어. 하지만 더 나아가 러시아는 발칸반도에서 이들 국가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와 대적해야했기에 루마니아-불가리아-세르비아가 마냥 자치적인 정책을 펴는 것도 불안했지. 이 때문에 러시아는 이 3개 국가에 지나친 내정간섭을 실시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 반감을 갖고 친오스트리아적인 성향을 갖게되는 데 일조했지. 사실 친오스트리아적이라기보다는 러시아새끼들보단 오스트리아새끼들이 좀 더 낫다는 성향이었던게 함정이지. 이렇게 발칸반도에서 안보위협을 느끼던 러시아는 더이상 재보장조약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꼈고, 프랑스와 연계하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



ii) 지난 시간에 썼던 지도를 그대로 인용해볼게. 지도를 보면 알수있듯, 비스마르크의 대러시아 견제 동맹은 대체적으로 발칸반도와 지중해에서의 충돌을 상정하고 있어. 다시말해, 비스마르크는 향후에 유럽에서 충돌이 생긴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발칸반도나 지중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계산했지. 그 계산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1차 대전으로 인해 사실로 증명되었으니), 당장 발칸반도와 지중해만이 문제가 아니었어. 먼저 보불전쟁 때 독일이 프랑스로부터 빼앗은 알자스-로렌 지방은 여전히 프랑스가 이를 갈며 되찾고자 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또한 오스트리아와는 롬바르디-베네치아-트렌토-트리에스테 지방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어. 심지어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는 같은 삼국동맹이었는데 말이지. 

iii) 뿐만 아니라,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 프랑스와 크림전쟁 이전 러시아가 무너졌던 이유를 깊이 생각하여, 독일 통일 이후에도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팽창정책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는 독일 내부 민족주의자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어. 독일이말야, 이만큼 컸으면말야 엉? 딴새끼들은 식민지도 확보하고 하는데, 우리가 뭐 부족하다고 빌빌 기고있나? 하며 들고일어난 민족주의자들의 반론은 비스마르크가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지. 더군다나 빌헬름 1세를 이은 빌헬름 2세가 독일황제로 즉위하였고, 빌헬름 2세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의 요구를 수용, 비스마르크를 해임(1890)시켜 버리지.

cf) 이 때 비스마르크는 의회 측에 황제권한을 축소시키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사실상 반역에 가까운 짓까지 서슴지 않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한 예우를 받으며 은퇴했어. 향후 비스마르크는 고문역할로 지속적으로 대외정책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었고, 그의 아들도 외교부에 낙하산으로 들어갔으니 나쁜 말년은 아닌 셈이지.


재보장 조약의 파기

정리하여 위의 세가지 이유가 비스마르크 동맹체제 붕괴의 복합적인 이유지만, 표면적으로는 빌헬름 2세의 비스마르크 해임으로 모두 드러나지. 비스마르크 동맹체제 붕괴의 가장 첫 희생타이자, 새 황제 빌헬름 2세의 첫 외교적 업적(?)은 다름아닌 재보장 조약의 파기(1890)였어.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 아슬아슬 줄타기같은 관계를 지속하느니 차라리 우호적인 영국과 동맹을 맺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정작 영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단 걸 미리 알았다면. 독일과의 관계가 깨졌다면 러시아가 바로 프랑스와 손을 잡았을 것 같지? 그런데 러시아 입장에서도 재보장 조약의 파기는 치명타였어. 이 조약이 파기될 때 가장 반대했던 사람이 러시아 외무장관인 Nicholas Giers였지. 그 이유인즉슨,

ⓐ 재보장 조약의 파기로 인해 영국이 삼국동맹(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에 편입할 경우 러시아에게는 지중해 진출은 물건너가버린다.

ⓑ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체결한다고해도 러시아에게 이는 결코 이득이 아니다.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탈환하기 위해 독일에게 설욕전을 하려고 할것이고, 러시아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연루되는 꼴이 된다.

ⓒ 재보장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발칸반도 팽창을 독일이 어느정도 묵인해주고 있었는데, 재보장 조약이 파기되면 이러한 기회마저도 없어진다.

는 것이었지.


한편 독일의 입장은 더이상 러시아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 먼저 삼국동맹과 지중해 협정이 모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동시에 한다는 것이 모순된다는 거였지. 또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가 "나 좀 살려주소"하며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와 충돌하고 있는데 이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고. 게다가 애매하게 러시아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독일이 그토록 동맹을 맺고싶어하던 영국마저도 날버리고 떠나갈까 걱정됐지.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독일은 러시아의 재보장 조약 파기 취소 요구를 뿌리쳐버리지.


그러나 상황은 독일의 계산과는 상당히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어.

ⓐ 먼저 재보장 조약 파기의 가장 큰 목적이 영독동맹의 체결이었는데, 오히려 재보장 조약의 파기는 영국이 독일과 동맹을 맺지않아도되는 결과를 낳았지. 영국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하나마 지속되고 있었던 독일-러시아의 협력관계가 내심 못마땅했었는데, 이참에 독일과 러시아가 아예 적으로 돌아서버리니 더이상 자기들이 러시아 견제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 이후 독일이 수없이 영국에게 동맹 러브콜을 보내지만 영국은 모조리 다 거절해버렸지. 뿐만 아니라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또다른 패권세력인 거대 독일에 힘을 실어주는 짓 따위는 하고싶지 않았어.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등장을 견제하는 것이 영국의 전통적인 역할이었지(나폴레옹 프랑스, 러시아, 독일).

ⓑ 삼국동맹(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내에서도 독일의 발언권은 약화돼. 표면적으로나마 러시아를 붙들고 있음으로해서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사실상 보호국으로 삼을 수 있었어. 오스트리아 너새끼들 하나만 잘못해봐 아주 러시아한테... 그러나 재보장 조약의 파기로 독일과 러시아가 완전히 적으로 돌아서버리고, 독일이 발칸반도에서 믿을 곳이라곤 오스트리아밖에 남지않게 되었지. 이는 오스트리아의 발언권을 강하게 만들어버렸어. 특히, 프랑스가 튀니지 합병을 선언(1890.7)했을 때 이탈리아는 "프랑스하고 화친해버려 그냥?"하며 독일을 똥줄타게 만들었고, 오스트리아도 똑같은 방식으로 "아 갑자기 러시아 형님들이 끌리네? 어? 어?"하며 독일의 옆구리를 찔렀지.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체결


(이 시점에서 벌써 이 지도를 올리면 스포일러긴 하지만, 그만큼 재밌게 읽는 사람은 없을테니 그냥 올림. 1차대전 이전과 이후 판도변화. 프랑스-러시아 동맹은 독일이 동서부로 적국을 상대해야함을 의미했고, 이는 독일의 병력과 물자가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삼국동맹에서도 독일의 맹주 역할이 지속적으로 추락하였고, 이탈리아는 결국 배신하여 연합국 측에 가담한다. 영국을 붙잡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독일은 러시아를 등진 이상 영국이라도 반드시 동맹에 끌어들여야한다는 일념하에 영국 측에 수많은 외교적 양보를 하게돼. 그러나 영독식민지협정(1890)에서도, 시암 위기(1893) 때도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영국은 독일과 동맹을 꺼렸지. 영국은 크림전쟁 때 러시아를 견제하려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적이 있었기에 더이상 러시아 견제라는 골아픈 문제에 끼어들 의사가 없었어. 독일이 러시아와 등지고 알아서 견제해주면 영국 입장에선 고마울 노릇이었지.


영국의 지속적인 동맹거절로 인해 독일도 서서히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어. 이에 따라 독일은 다시 재보장 조약을 살려보고자 러시아에게 접근했지만, 러시아는 단단히 삐쳐서 프랑스와의 동맹체결을 확정한 시점이었지. 프랑스와 러시아는

ⓐ 프랑스가 독일 혹은 이탈리아에게 공격받을 경우 러시아가 지원

ⓑ 러시아가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에게 공격받을 경우 프랑스가 지원

ⓒ 삼국동맹 측에서 동원령 선포시, 프랑스와 러시아도 즉각 병력동원

cf) 단, 프랑스의 독일에 대한 설욕전 시에는 러시아가 지원할 의무 없음.

이라는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체결(1893)하게 되었어. 이제 독일은 적국 둘을 양옆에 끼고있는 형세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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