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브리스트 반란 > 피의 일요일 > 2월 혁명 > 4월 테제 > 10월혁명






러시아는 원래 제국이었어.


간혹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이후의 소련만을 러시아사의 유일 제국으로 칭하는 사람이 있는데, 러시아는 원래부터 유럽세력에게 매우 거대한 위협세력임에 틀림없었지.


자 그럼 제국이란 무엇이냐?


제국은 좁은 의미에서 황제라는 1인 절대권력자가 통치하는 정치체제(제정, 帝政)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제국이란 정치체제에 관계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변국에게 영향을 미칠 의도와 능력을 갖고 있는 국가를 말해.


다시말해,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 해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변국에게 영향을 미칠 의도와 능력을 갖고 있다면 제국이라 할 수 있지.


자 여기서 의도와 능력은 둘 다 중요해. 하나라도 없으면 제국이라 칭하기 힘들어.


왜냐?


① 일례로 대한제국의 경우, 고종황제가 칭제를 하고 제국을 선언하였지만 주변국에서는 아무도 공식적으로 승인해주지 않았고, 실제로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어. 바로 능력의 부재지. 이름만 대한제국이지 아무도 대한제국을 제국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어.


② 또한 1980년대 일본이 강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의 위상을 바싹 추격했지만 제국으로 불리지 못했어.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주변국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지. 이게 바로 의도의 부재야. 지금은 다만 그 의도를 조금씩 표출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만...


제국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참 많아.


Amy Chua라는 사람은, 제국이란 역사상 어느 한 시점에서 지구상에 도저히 어떤 경쟁 상대도 없는 유일 강자, 즉 Hyperpower가 제국이라 칭했어. 이 기준에 따르면 냉전시대 소련의 위협을 받던 미국이 제국이라 칭할 수 있을까?


무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범위를 넘어, 흔히 현대사의 제국이라 한다면 크게 미국과 소련을 떠올리게 될거야. 따라서 여기서는 미국과 소련을 제국으로 설정하고 살펴보고자 해.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러시아가 하루아침에 소련으로 바뀌게된 것은 아냐.


이미 1800년대부터 러시아에서는 혁명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어.




예전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젊은 장교들은 전쟁 중에 혁명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에 심취하여 고국으로 귀향했지.


그러나 자신들이 돌아온 고향은 왕실과 귀족의 부패 등으로 피폐했어.


때문에 이 청년장교들은 1825년 12월 왕실과 귀족에 대항하여 데카브리스트 반란을 일으켜.


물론 이 시위는 촛불시위 정도로만 끝난게 아니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


이시기에 때마침 니콜라이 1세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는데, 이 새파랗게 젊은 놈들의 반란조차도 진압못하면 황제의 권위가 말이 아니게 되잖아?


니콜라이 1세는 이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해버려.


데카브리스트 반란 자체로는 그다지 큰 성과는 없었지만, 그만큼 당시 러시아는 사회적으로 혁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지.




사상은 항상 현실에서 태어나. 춘추전국시대가 그랬고, 독일의 나치즘이 그랬지.


이 시기 러시아에서도 여러가지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1860년대에는 니힐리즘(허무주의)이 탄생했어. 드미트리 피자레프는 "파괴될 수 있는 것은 모두 파괴되어야 한다"는 중2병 파괴신마냥 말을 던지며 허무주의의 선구자가 돼.


187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는 급진주의 세력이 득세하는데, 주축이 된 세력이 바로 인민주의(나로드니키) 세력이야.


여기서 인민주의를 영어로 번역하자면 포퓰리즘인데, 현대에 이르러 선심성 공약 등을 일컫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단순히 사상적인 측면에서의 인민주의를 뜻해.


이 급진주의 세력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테러리즘을 옹호하기도 하지.


이 시기부터 농민주의(산업화 유럽 국가와는 달리 당시 러시아 인구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함), 코뮌(농민 공동체), 소작농을 위한 토지제도 등이 논의돼.



1870년대 이후에 이르러 위의 사상들의 큰 경쟁자로 득세한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야.


쉽게 말하면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 부르주아지를 혁명으로 뒤엎잔 사상이지.


마르크스주의를 받치고 있는 철학은 바로 유물론적 변증법이야.


자 여기서 살펴보자. 유물론적 변증법이란 뭘까?


① 유물론 : 인간은 자라온 경제적 배경에 의해 사고방식이 정해진다는 거야. 예를들어 부잣집에서 태어난 도련님은 사치를 부릴것이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돈을 지독히 아낄 것이라는 설명이지. 이러한 물질적 경제적 배경을 평등화하여 모든 인민을 평등하게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의 핵심인데, 막상 물질주의를 비판하며 타파하고자 하는 유물론이라는 철학이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모순점을 지니지.


② 변증법 : 헤겔 철학에서 유래된 정반합의 원칙이야. 역사는 항상 정반합의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는 거지. 쉽게 말하자면 정(테제, Thesis)이란 원래의 상태를 말하고, 반(안티테제, Antithesis)이란 그 원래의 상태에서 비롯된 모순상황, 합(신테제, Synthesis)이란 모순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상태를 의미해. 공산주의에서의 변증법이란, 자본주의 사회가 정,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과 무산계급 착취현상이 반, 공산주의 혁명이 합인 셈이지. 그런데 여기서도 모순인건, 소련을 반세기간 지배해온 이러한 철학과는 달리 러시아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거친적이 없어.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에서도 주도권싸움이 일어나게 돼.


겉보기에는 혁명의 방법론에서의 급진파와 온건파의 차인데, 내부적으로는 권력투쟁에 가까웠지.


여기서 탄생한 분파가 볼셰비키(레닌주의)와 멘셰비키야.


① 볼셰비키 : 혁명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정당을 구축하여 혁명을 조성 및 촉발해야한다는 입장. 레닌이 주도


② 멘셰비키 : 최대한 많은 당원을 결집하여 정당의 덩치를 부풀린 후 혁명을 시도


자 여기서, 볼셰비키란 "다수파"란 뜻이고 멘셰비키란 "소수파"란 뜻이야.


그런데 이 이름이 붙게된 계기가 좀 웃겨.


실제로는 멘셰비키(온건파)가 수적으로는 다수였어. 급진파가 수가 더 많을리는 없잖아?


이러한 수적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레닌은 선수쳐서 자신의 세력을 다수파로 칭해버리지. 실제로는 소수파인데 이름을 다수파로 바꾼거야.




이렇게 혁명세력이 자신들의 진영을 정비하는 동안 러시아 왕조(로마노프 왕조)도 손놓고 방관하고 있진 않았어.


알렉산더 1세 등은 농노해방 등의 개혁안을 내놓기도 하지.


그렇지만 몰락해가는 지도부가 늘 그렇듯, 사회분위기는 혁명을 기도하고 있었고 개혁은 흐지부지 되어버려.


결정적으로 1905년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패하게 되지.


사실 러시아가 일본에게 털릴 정도로 약한 국가는 아니었어.


다만 사회내부적으로 심한 모순과 유럽세력에 대한 견제로 인해 모든 국력을 일본을 상대하는 데 쏟아부을 여력이 없었지.


그러나 안그래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코딱지만도 못한 일본에게 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러시아 혁명세력은 드디어 폭발하게 돼.


1905년 1월, 바로 도시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폭동을 일으키는데, 이게 바로 피의 일요일이야.


마찬가지로 러시아 왕실은 이 폭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해.


그렇지만 아예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것이,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혁명적으로 흘러가다보니 당시 황제인 니콜라이 2세도 점점 잠자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하는거야.


자기들을 뒤엎으려는 세력이 벌겋게 눈뜨고 있는데 편하게 잠이 오겠어?


그래서 니콜라이 2세는 상황을 모면해보고자 의회를 설치해.


이 의회를 두마Duma라고 하지. 러시아어로 의회라는 뜻이래.


그렇지만 의회라 해봤자 황제의 거수기 역할일 뿐이었어.




그러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러시아는 무려 1550만이란 군대를 동원했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는 내부적으로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하지.


현시대 대한민국 국민의 1/5 넘는 숫자를 전쟁에 투입한건데 경제가 돌아갈리가 없잖아.


그런데 니콜라이 2세가 이때 희대의 병신 짓을 하게되는데, 자신이 직접 1차대전 전장에 진군하겠노라고 선언해.


그리고나서는 독일계 황후에게 통치권을 넘겨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


지도부의 지속된 실정에 러시아 수도였던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월 혁명(1917년 2월)이 발생해.


당시 수도의 전병력이 전선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예비병력을 파견했는데, 진압하라고 보낸 예비병력이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중앙정부에 총을 겨누지.


이 때문에 로마노프 왕조는 완전히 붕괴, 러시아 제정은 막을 내려.


이렇게 무너진 지도부를 사회주의자 케렌스키를 포함한 러시아 임시정부가 맡게 되는데, 이들은 니콜라이 2세가 설치했던 의회에 의지하게 돼.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사회주의적이진 않았어.


케렌스키만을 제외하고는, 의회와 임시정부의 구성요원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들이었지.




자 그런데, 이렇게 보수주의자 임시정부가 생겨나니 레닌을 비롯한 혁명세력들은 다시금 모의를 하게돼. 결국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지 못한거지.


그래서 임시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바로 소비에트야.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회의라는 뜻이래.


소비에트도 결성했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임시정부에 대항할 필요성을 느낀 레닌은 자신이 망명해있던 스위스에서 독일군의 도움으로 다시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해.


그리고 나서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은 이미 완수되었고, 노동자와 인민이 권력을 장악하는 단계로 이행해야한다"는 4월 테제(1917년 4월)를 발표해.


레닌은 수적으로 소수파였다고 아까 말했었지?


그렇지만 급변하는 러시아 정세를 잘 활용하여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착취자를 착취하라" 등 선동을 해가며 국내에서 권력기반을 확대해.


1917년 7월에는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에서 임시정부에 대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임시정부는 소비에트(혹은 볼셰비키 혹은 레닌파. 어떤식으로 봐도 무방)를 무참히 진압하지. 이 때문에 레닌은 다시 핀란드로 망명가.


그러나 소비에트의 영향력이 무시못할 정도로 커졌고, 이때문에 임시정부와 의회 또한 사회주의자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개각되어 사회주의적 성향을 띄게돼.




그러나 임시정부도 계속해서 지도부가 바뀌다보니 불안정해지게 되지.


대표적으로 케렌스키와 코르니로프라는 두 세력이 충돌하게 돼.


이틈을 타서 볼셰비키는 수도 페트로그라드 주변의 군사력을 모두 장악해.


볼셰비키는 적은 숫자이지만 상황을 참 유리하게 잘 써먹었지.


이러한 과정에서 볼셰비키 내 트로츠키라는 인물이 레닌의 제1후계자로 급부상하고 스탈린이 득세하기 시작했어.


아무튼 볼셰비키와 그를 지지하는 붉은 군대는 페트로그라드를 점령하고 네바 강의 겨울궁전(임시정부의 청사)을 습격하여 임시정부 요원을 모두 체포해. 이과정에서 케렌스키는 도주하지.


그리고나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데, 이를 10월 혁명(1917년 11월)이라 해.


왜 11월에 일어났는데 10월 혁명이냐? 당시 러시아가 채택했던 달력이 러시아 구력이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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