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신뢰할 수 있는 타인을 걸러내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다. 가령 은행원이 대출심사를 할 때에는 사람의 구두를 본다는 말이 있다. 잘 관리된 구두는 그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거울이란 것이다. 노동자들은 손에 박힌 굳은살을 통해 베테랑을 알아보고, 유럽의 매춘부들은 손목시계를 보고 고객을 골라낸다고 한다. 나의 기준은 사람의 옆모습이다.

어떤 사람이 진정 자신을 위해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사람의 옆모습을 보아야한다. 앞모습은 화장이든 옷차림이든, 하다못해 흡 하고 으레 배를 힘주어 집어넣으면 어느 정도 견실하게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늘어진 뱃살, 사람 상대할 일이 없으니 웃을 일도 없어 굳어진 턱선, 퀭하고 게슴츠레한 곁눈질은 오로지 옆모습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또한 앞모습을 거울에 비출 땐 턱 당기고 눈에 힘깨나 주고 보는데, 이는 포장되고 가식적인 모습이며 2차원적인 평면의 모습이다. 세계는 다차원적이며 타인을 품평하기 위해 던지는 시선은 언제나 은밀하기 때문에, 남들이 언제나 나의 잘 꾸며진 전면을 보리라는 보장은 없다. 외려 타인의 시선은 곧잘 가장 무방비한 측면을 공략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지만, 대학 신입생 때와 군 제대 직후엔 유사현실이 주는 쾌락에 미쳐 살았었다. 천만다행히도 사람을 폐인으로 만든다는 온라인 RPG엔 흥미가 없었고, 짜임새 좋은 스토리라인을 가진 타이틀 게임을 주로 즐겼었다. 하루 12시간 동안 컴퓨터 붙잡고 있는 것을 "즐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간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했었던걸까? 안암골 PC방 아저씨들이 내 얼굴만 보면 짜파게티를 자동으로 내오고, 하숙방 의자에 내 엉덩자국이 깊이 패여 당최 다시 부풀어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복학 직후 아는 사람도 없어 내가 객관적으로 어떤 몰골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수 밖에는 없다. 당장 다이소에서 전신거울 두 개와 연습장 하나를 사와 내 의자 양 옆에 두고, 첫 이틀 사흘간은 그대로 반나절씩 게임에 매진했다. 이따금씩 거울로 내 옆모습 보고, 자기전엔 하루동안 어떤 일들을 했었는지 기록한다는 점이 이전과 다를 뿐. 나흘째 되던 날, 문득 내 옆모습이 피폐해다 못해 일종의 덩어리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컴퓨터에 있는 모든 게임을 삭제하고 PC방으로의 발길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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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네가 살만한 곳인지 판단할 때는 그곳의 고양이들을 만나보곤 한다. 이른바 동네 유지묘들이다. 고양이들이 아예 없거나 혹은 사람만 보면 기겁을 하고 도망가기 바쁘다면, 그곳은 오래 머무를 곳이 못된다. 자신보다 힘없는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며, 그 대상이 사람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람이 다가서면 경계는 하되, 다시 저만치 비켜주면 햇살 아래 늘어지게 하품하는 녀석들이 있는 곳에선 전세계약 두 번 정돈 괜찮다.

내 집을 마련하기에 (돈이 있어야 말이지만) 가장 좋은 곳은 새끼고양이들이 있는 동네다. 고양이는 본디 경계심과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 아무 곳에서나 새끼를 낳고 기르지 않는다. 제 새끼 예쁘다고 쓰다듬어도 발톱을 세우고 이빨을 내보이는게 고양이들이다. 그런 녀석들이 자기 자식 뛰노는 모습을 웅크려앉아 느긋이 지켜보는 동네라면, 평생의 이웃을 사귀고 평생의 터전으로 삼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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