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밤이 채 여물지 못해 아직도 중천의 태양이 벌겋게 눈을 뜨고 있었지만, 금요일 충정로는 쉽사리 뚫리지를 않았다. 가히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무소불위의 법카택시를 타고 있다곤 해도 막내는 애가 탄다. 조마조마 애꿎은 창문만 열고 닫다가 거 참 그게 신기해요? 하고 기사 아저씨에게 핀잔을 듣는다. 여기 그냥 내려주세요 하고는 서대문역 개찰구로 냅다 뛰었다. 교육까지는 여남은 십오분 가량. 넉넉하지 않은 여유에도 잠시 발걸음이 멈칫했다. 낯선 익숙함, 혹은 익숙한 낯설음이 볼을 간질여 눈길을 돌려보니, 늦겨울 이맘때 때를 잊은 아련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 일렁임에서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하다.

서대문역 4번 출구를 나와 적십자병원 주차장을 대각으로 가로지르면, 빈말로라도 부촌이라 할 수 없는 주택가가 나타난다. 침침한 회벽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아스팔트 언덕길을 이수영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따라가면 친구 A네 빌라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초인종은 이미 오래 전에 박살나 저의 녹색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기에 눌러야할 지점을 도통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똑똑 문을 두번 두드리면 A는 칫솔을 입에 문채 철컹하고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일단 내용물 없는 배낭부터 저쪽으로 벗어던지고, 뭔 양치야 임마 한대 피우고 해 하며 A의 방으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운동 좀 해라, 하숙집밥이 그렇게 맛있냐 하며 A도 뒤따라 들어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A는 재수생이었다. 내가 외지의 기숙학교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A네 가족은 서대문으로 이사를 갔다. 깡촌 평야 출신인 둘 다 특별시에는 이렇다 할만한 인연이 없었기에, 상경한 후에도 별 용무없이 이따금씩 짜장면에 탕수육 소자를 시켜 젓가락을 나누곤 했다. 철가방이 열리면 서로 내겠다며 몸싸움을 하곤 했는데, 사실 용돈 신세였던 둘 다 통장엔 여백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중화요리가 주는 묵직한 뒷맛을 또다시 담배 연기로 털어버리고나서는, 지난달치 교육청 모의고사를 함께 풀곤 했다. 가뜩이나 흙빛인 그를 기죽이기 싫어 일부러 과목당 너다섯개씩을 틀리게 채점하면, A는 흡족한 표정으로 야 그 성적으로도 그 대학을 가냐 하며 웃었다. 형은 1년 전에 이 바닥 은퇴했잖아 자식아, 나도 맞섰다.

내가 입대하던 해, A는 이름모를 산속 이름모를 절간에서 삼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서대문 적십자병원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다. 내가 내무반에서 막내를 벗어나던 해엔 그도 새내기가 되었고, 내가 제대하던 해엔 그도 군화끈을 조였다. 밀도없는 삶이 허물임을 취업준비를 통해 통감하며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그는 회계사 공부에 돌입했다. 광화문에서의 교육을 마치고 맥주나 한잔 하자며 전화를 걸었건만 웬걸, 학원이란다. 요즘은 허리가 더 굳어가는 것 같다, 이상하게 나도 아침만 되면 기침이 멈추지를 않는다 하며 서로의 병약함을 자랑하다가 이내는 담배 끊자 로 의기투합한다. 거참 벌써부터 대화 내용이 이 지경이면 사십 오십 되어서는 대체 무슨 이야길 나눌지 덜컥 겁이 나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전화 너머로도 부싯돌 돌리는 소리가 들려 야 너 담배 물었지 하니 그렇단다.

그러니까 나의 나이 이십팔세다. 그의 나이 이십팔세다. 우리 나이 이십팔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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