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곽에 혐오사진을 삽입하겠다며 마치 대단한 협박이라도 하듯 무게를 잡아대는 뉴스를 보았을 때, 그 순진함에 비집고 나오는 비소(誹笑)를 참을 길이 없었다. 10년차 골초가 보다 실질적인 금연정책을 조언하겠다. 혐오사진은 담배곽이 아니라 차라리 (디자인적으로 가능하다면) 라이터 주둥이 부분에 삽입하되, 라이터는 불이 한 번에 쉬이 붙지 않도록 화력을 약하게 제한하라. 니코틴의 노예들은 주머니 속에서 이미 뚜껑을 열어제낀 상태로 담배곽을 꺼내, 이빨로 한 개비를 꺼내물고 불을 붙인다. 모든 과정은 초침이 사반원을 그리기 전에 종결되며, 단언컨대 담배곽에 무엇이 그려져있는지 따위에 눈길을 줄 새는 없다. 남실바람에도 명줄이 요동치는 가녀린 불꽃만을 게워내는 라이터라면, 렘브란트의 작품을 감상할만한 여유 정도는 있을 터. 피하고 싶은 미래를 똑똑히 목도하면서까지 쉽사리 불붙지 않는 라이터 부싯돌을 돌려댈 독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열여덟, 푹푹 찌던 여름 어느날.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낮 기온이 기말고사 성적표에 수학 점수로 찍혀있었던 날.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걸어서 이십분 여가 걸리는 읍내로 향했다. 울적한 기분에 천안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한바탕 정처없이 거닐다 새벽에나 들어올까 싶었지만, 내일 아침 둔부에 고스란히 돌아올 사감선생 철근 몽둥이가 공포스레 여겨져 구멍가게에서 시퍼런 디스 플러스를 한갑 사서 돌아왔다. 왜 구태여 담배를 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탈을 꿈꾸었던가? 아니면 나를 둘러싼 안전이라는 울타리가 더이상 위안으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차피 골초가 될 팔자였던 놈이 그저 제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선 계곡이 인도하는대로 연을 맺은 것이었던가? 현기증나는 첫 들이킴에도 기침은 없었다. 기숙사 뒷편 야트막한 언덕배기. 우리 학교를 세웠다던 이사장 선생의 무덤을 짚베개삼아 흐리어져가는 연기 사이로 별을 헤아렸다. 그래 뭐, 아침 기온이 아닌게 어디야. 그렇게 체념도 했다.

골초였던 프로이트는 흡연행위가 반드시 어떤 의미를 담지하고 있진 않다고 했단다.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한다. 현대 매스미디어는 담배를 단순한 건강상의 해악이 아닌 죽음 그 자체와 결부시키고 있으며, 자신만은 목젖에 산소호스를 끼우는 비극적인 결말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란 개인의 자기과신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객관성에 의해 항시 반박되고 부정당한다. 그러므로 골초들도 흡연 스무년차 후엔 폐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폐암 한 갑"씩을 뻑뻑 피워 죽음을 향해 보다빨리 전진해 나아가는 데에는 나름의 의미부여가 없을 리 없다. 금연이 힘든 것은, 따지고보면 기껏 자의적으로 부여한 의미 일절을 포기하는게 힘들기 때문일런지 모른다. 그 허울좋은 의미란 것을 왜 하필 담배에 부여하느냐 물으면 할말 없지만서도.

보름 전 연초를 근 일할로 줄이고 전자담배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이 10년간 담배에 부여해온 유의미와 전자담배의 밍밍함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냉기를 머금은 아침 공기를 들이키면 기침이 나오고, 또 어느 날부터는 편도 즈음을 기웃거리던 기침이 흉곽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옴을 느끼게 된다면, 추억과 이성을 찾던 담배연기에서 비로소 폐암과 후두암을 발견케 된다. 본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만용을 부리는 인간도 고통에까지 의연하기는 힘든 법. 매캐하지도 그렇다고 청명하지도 않고, 쌉싸름하지도 그렇다고 달달하지도 않은 이것저것들의 경계에 놓인 애매한 전자담배 수증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또 익숙해져간다. 그렇게 사람은 미쳤었고 미쳐있으며, 그렇게 나도 미쳤었고 미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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