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평택이다. 그래 그 미군부대 있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규모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홍등가로 유명한. 그 평택역 앞 홍등가를 중학교 시절 한번 걸어본 적이 있다. 아무도 믿지는 않을테지만 걸으려해서 걸은 것은 아니었고, 한번 걸어보니 그 길은 일부러라도 피해다니고싶은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혹시 일본 미신 중 요괴로 가득한 귀시장 이야기를 아는가? 현세와는 그 어떤 가치관도, 사상도, 도덕률도 공유하지 않을듯한 귀시(鬼市). 내가 아는, 옳다고 생각하는, 혹은 그렇다고 배워온 모든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이 차원과는 완전히 다른 곳에 존재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 그 동네는 그렇게 보였다. 내가 나이보다 얼굴이 심히 삭아보여서인지 아니면 중학생이어도 화대만 준다면 그다지 상관없다는 생각인지, 지금의 내 나이또래 정도 됐을법한 암컷들이 외계에서는 드러낼 생각조차 하지못할 곳들을 거침없이 노출하며 사카린같은 싸구려 색기를 내풍겼다. 외계와는 어떤 교차점도 찾을 수 없는 특수한 세계. 도덕률의 소도(蘇塗). 치외법권. 슬럼. 사회의 쓰레기장.

그런 곳에는 남자와 여자, 현재와 미래, 감정과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을 사려는 수컷과 그것을 팔려는 암컷, 오늘과 내일, 황금과 인격의 자본주의적 거래만이 존재했다. 대낮인데도 주정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늙고 털이 벗겨진 추한 수컷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암컷들의 음부를 희롱했고, 이제 막 거사를 끝내고 나온듯한 암컷은 자신의 손님에게 교태섞인 목소리로 작별을 고하고는 곧 "씨발"하고 되뇌이며 시꺼멓게 칠해진 셔터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외계라고는 했지만서도, 그곳을 나가고 들어오는 일에는 시공간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물리학 따위는 적용되지 않았다. 어떤 망설임도, 다짐도, 죄책감도 없다. 양복으로 한껏 자신의 야수성을 가리고 사람 흉내를 낸 수컷들은 그 거리를 나가면 번듯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 변모하고, 황금에 자신의 웃음을 입술을 음부를 팔아제끼는 사카린내 나는 암컷들은 귀한 집 딸내미가 된다. 분명 성매매가 불법인 영토인데도 홍등가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던 것처럼, 무언가 굉장히 이치에 맞지않는듯 하면서도 진저리나게 자연스러웠다. 홍등가의 암컷과 수컷들은 그렇게 외계로 나아갔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흐름, 이를테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수컷과 암컷이 남녀가 되고, 당장이라도 무너질듯한 슬레이트 지붕과 곳곳에 아무런 괴리감 없이 버려진 콘돔, 인간의 황금에 대한 종속의 아름답지 못한 사생아와 같은 흔적들이 말끔한 역사와 깔끔한 거리가 되는 것들이 부자연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게된 것은 지금에 와서다. 현대문명을 모조리 투입시킨듯한 에덴동산과 구역기나게 추악스러운 소돔 사이에서 과연 무엇이 인간의 본성이고 가식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거짓인지의 물음은 무의미하다. 이제서야 떠올리건대, 그 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기에 그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도 모두들 진절머리나게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인류는 자신들의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에 대하여 매몰차다. 자신의 어떠한 역사가 자랑스럽지 않다면, 먼저 그것을 합리화하려고하고, 합리화되지 않으면 자신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돌려버린다. 무자비한 연쇄살인범은 싸이코패스로, 나치와 제국주의의 역사는 지난 날의 잔재들로 치부하고 현재의 자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것, 가령 비뚫어진 것으로 거리두기를 한다. 이를테면 창남창녀들이 몸을 팔았던 경험을 "가난해서 어쩔 수 없었다"거나 "지금과는 관련없는 과거"로 미화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추악한 것은 현재의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피력하며, 최소한 현재의 나는 그런 모습을 갖고있지 않다고 자위한다. 말그대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이거나, 생각을 실제 행위로 옮겼느냐 옮기지 않았느냐의 차이일뿐, 인간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본성적인 폭력성과 악의를 가지고 있다. 찬란한 평택역사 뒤에는 음침한 홍등가가 있는 것과 같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그 홍등가를 문명세계의 찌꺼기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빛나는 문명세계와 공존하는 인류의 본성 중 한 모습이다. 인류가 이룩해낸 모든 과학과 사상의 결정체인 문명 그 자체를 위선과 가식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지만, 이 세계나 저 세계나 모두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수컷이 양복입고 롤렉스 차고 벤틀리 끌며 신사 흉내를 낸들 수컷이 아닌 것이 아니다. 부정하려한들 부정할 수 없다. 상견례 자리에서 술에 취해 시아버지 될 사람에게 "오빠"라고 불렀다던 인터넷의 어떤 창녀처럼.

이를테면 나는 위선과 아이덴티티의 기로 앞에 서있다. 또한 가식과 본성 앞에서 서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이고 어떤 것은 자신의 보이는 모습이라 한다. 영혼이라는 존재를 가공하여 실재하는 세계에서의 자신의 추악한 짓들 이면에는 선한 본성이 숨겨져있다고 주장한다. 미친 개소리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역사로 취해서는 진정 인간은 발전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젠가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강타한다면 순순히 뿜어져나오는 용암 속에 몸을 던져야 마땅할 쓰레기더미에 불과하다. 나는 본성적인 악을 없애라는 불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악을 그대로 자기자신으로 인정하라는 현실적이고도 휴머니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할 수 없는 우리의 세상이다. 평택역 뒤 홍등가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세상이다. 누구나에게 있는 내면의 악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혹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해서는 그 악을 구축할 수 없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혹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멸하고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추악한 모습을 인정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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