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게 모욕적이라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고 어떤 이가 말했다. 들숨 한 움큼에도 홍조가 달아오르고, 내뱉은 말 한마디가 자괴감의 항아리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푸르른 하늘 아래 두 발자국만큼의 내 지분이 문득 창피스럽기 짝이 없어 등줄기까지 오싹한 순간이 있었다. 시련 중의 제일은 작열지옥이 아니라 사람시련이더라. 동면과 같은 깊은 잠에도 이루 들지 못하며, 벗의 위로조차 귓바퀴만을 맴돌다 삭아져갈 때 즈음이면 상투적인 소결론에 이른다. 떠나자. 타성의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명줄 한번 기타처럼 퉁겨보자. 가슴까지 떨리도록. 핀란드도, 아이슬란드도 좋다. 눈을 세번쯤 비벼도 구면의 익숙함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타지로 떠나버리자. 그런데 젠장. 가면 뭘하지? 제2의 지옥은 먹고 사는 시련이더라.

그곳에선 자그마한 시계수리 가게를 하나 할까 싶다. 이역만리 타향에서도 언젠가는 인연이란 것이 생겨 언젠가는 익숙한 모욕스러움이 찾아올터. 이리저리 둘러보며 괜한 상처받지 말고, 톱니바퀴로 째깍째깍 돌아가는 자그마한 합리성의 세계만 들여다보며 살자. 여름날의 가녀린 순풍 한줄기처럼 불어오는 손님에겐 다시없을 미소 한번 지어주며 수리삯만큼의 행복을 선사하자. 늦가을볕 아래 고등어무늬 고양이처럼 둥그렇게 몸말아 꾸벅꾸벅 졸다가, 어스름질 적이면 슬며시 눈뜨고 차르륵 하루의 셔터를 내리자. 벽난로에 끓인 뜨끈한 홍차에 데운 우유를 한컵 부어, 사지에서 돌아온 군인 남편에게 안기는 아내처럼 소파에 폭 안기자. 다리를 꼬고 북반구의 낯선 풍경이 선물하는 상념에 빠져들자. 그렇지만 그리워하지는 말자. 한탄도, 후회도 하지 말자.


도피망상.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그런 류의 망상은 언제나 통쾌하고 달콤하지만, 본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최 빠질 길 없는 나의 뱃살 속에 숨어있는 (초콜릿 복근이었다해도 근육 사이사이에 숨어있을지 모를) 시련이란 녀석에겐 딱히 조국 같은 것은 없다. 사람시련이란 것은 연락선 하나 지나지 않는 무인도 한복판에서조차 악몽을 빌어 나타나 나를 분노케 하고, 좌절케 하지 않을까? 그렇게 도피마저 시들해지면 이래저래 다른 것들일랑 제쳐두고, 하늘색 앞치마 두른 여자친구가 만들어준 달짝지근한 계란말이가 생각난다. 한번 씹으면 고소한 노른자 즙이 흘러나오고, 채썬 야채들이 저마다 빨갛게 혹은 파랗게 상큼하고, 설탕 한 티스푼 뿌리지 않았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히 혀를 간질이는 달짝지근함. 그리고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나와 마주보고 앉아 치욕의 역사를 구태여 들춤없이 그저 바라만 보는 그녀. 그렇게 나는 백짓장처럼 아무것도 남김이 없는 실패를 한 마리 종이학으로 접어둔다.



사치에는 구태여 묻지 않는다. 영화도 구구절절 미도리와 마사코가 핀란드로 떠나온 사연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려 하면 이야기보다도 눈물이 먼저 터져나오는 시련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럴땐 나는 이런 일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네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느니 하는 위로를 가장한 우월의식보다도, 그저 따끈한 밥에 눈물닦을 티슈 한장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네가 더 불행하다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사람은 단순한 존재다. 세상이 마음을 할퀴어놓아도, 따스한 곳에서 따스한 사람과 따스한 밥 한 공기 자시면 철천지원수 같은 세상 속으로 다시금 노저어 나아간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건, 따스한 곳과 따스한 밥이 없어서가 아니라 따스한 사람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피만을 고대하고, 막상 도피처에 다다라서도 방황할 것이다. 그런 영혼들을 <카모메 식당>은 포옹한다. 눈웃음을 살짝 띄우고 어서 오세요.



미도리든 마사코든 핀란드로 떠나는 왔으되 그저 하릴없이 거닐다가 동네 도서관에 죽치거나, 그도 아니면 오는 길에 짐을 잃어버리는 것이 전부다. 게다가 여유로울 줄로만 알았던 핀란드에서도 이별과 아픔의 술잔은 채워진다. 도피라는 선택지에도 또다른 고달픔 외에 별다를 것은 없다는 <카모메 식당>의 메시지다. 그들이 질려버린 사람시련은 의도된 고독이 아니라 사치에, 즉 똑같은 사람에 의해 치유된다. 또한 할퀴어진 마음은 구면의 흔적없는 낯선 곳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익숙함 속 소중한 인연을 만남으로써 아물어간다. 카모메 식당이 이국적인 핀란드식 식당이 아니라 일식집이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힐링"의 길이 생각보다 먼곳에 있지 않다는 감독의 뜻일테다. 코피루왁처럼 쌉싸름하면서도 시나몬롤처럼 달콤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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