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크슈가 크리스천에게 불편한 이유 
여자친구와 도착한 샤롯데씨어터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티켓 박스에 버젓이 쓰여있는 "기독교 신자 50% 할인"이라는 문구며 세명이 짝지어온 수녀들의 모습은, 최초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이단이라며 비난받았던 이 뮤지컬의 도발적이기 그지없는 시각을 고려해보았을 때 경악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 천주교계야 워낙 유들유들한 것으로 유명하니 수녀 트리오는 그렇다쳐도, 과연 한국의 근본주의 개신교도들이 반값으로라도 이 공연을 보러 올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 이하 다쓰기 귀찮으니 지크슈)에는 세가지가 없다. 기적이 없고, 부활이 없으며, 신이 없다. 지크슈에서의 예수는 그저 고뇌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인간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을 고난의 가시밭길에 내던진 신에게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죽어야하냐며 반항하기도 하고, 자기를 배신한 제자에겐 날선 독설을 퍼부어 내쫓아 버리기도 한다. 자기를 둘러싼 앉은뱅이와 장님들을 귀찮다는 듯이 쳐내기도 하고, 마리아의 품에 안겨 안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치 않는다. 이렇게 예수 이야기에서 기적과 부활, 신을 빼고 그의 인간성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크리스천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참람된 시도이다. 동시에 그리스도교가 1700년 가량 견지해온 삼위일체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기도 하다.

이게 뭐 큰일이고 대단한 시각인가? 단순히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겠다는 시도가 이단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단연 대답은 "Yes"이다. 성부(야훼)와 성자(예수)를 동일시하지 않으면 (즉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는다면) 예수의 입지가 상당히 불안해진다. 예수의 등장 자체가 아브라함 계통의 고대 종교에는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 예수를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이냐가 정교와 이단, 유대교 및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를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이를테면 일부 기독교 이단에서는 예수를 신의 특별한 창조물(그러니까 신도 아니고 일반적인 인간도 아닌)로 보기도 하고, 이슬람교 등지에서는 예수를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예수 본인이 신이 아니라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도 인류의 대속을 위한 희생이 아닌 단순히(?) 본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순교가 되기 때문이다. 혹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고 아버지와 같은 위격을 갖는 신이라면, 기독교는 졸지에 두명의 신을 섬기는 다신교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은 니케아 공의회까지 열어 삼위일체론, 즉 예수는 야훼와 같은 실체라는 "인위적인" 교리를 정립하게 된다. 지크슈는 이런 기독교 교리의 뿌리를 기막히게 쌩까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지크슈가 크리스천들에게 불편한 이유는, 너절한 배신자 정도로만 여겨졌던 유다를 발칙하게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예수가 카리스마와 직관을 가진 예언자라면, 유다는 현실감각과 대중의 요구를 파악할줄 아는 능력을 가진 정치가 참모이다. 유다는 민중의 지지를 받는 예수가 로마 제국의 압제를 이겨내고 유대왕국의 왕이 되어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것을 바랐다. 출애굽기의 모세처럼. 그러나 예수는 인류의 대속을 위한 십자가행을 선택했고, 현실에서의 혁명을 기대한 유다의 눈에는 예수가 민중의 뜻을 저버리고 실패한 혁명가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지크슈에서의 유다는 신약과는 달리 조용하게 뒷통수를 치는 배신자가 아니다. 그는 예수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며 예수의 이상론을 논박하는 라이벌로 격상되었다.

Judas Superstar?
예수와 유다가 이를 갈며 서로를 비난하는 The last supper(최후의 만찬) 장면은 지크슈 특유의 참신함 정점에 이르는 백미와 같은 장면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지크슈에서 Gethsemane 이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 이 장면의 험악한 분위기가 한국판에서는 상당히 누그러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먼저 영어판 가사를 보자. 내가 받아들인 느낌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해석은 내가 직접 했으므로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다.

The Last Supper - Andrew Lloyd Webber

# APOSTLES :
...
Always hoped that I'd be an apostle.
Knew that I could make it if I tried.
Then when we retire, we can write the Gospels,
So they'll all talk about us when we've died.
제자들 : 나는 언제나 사도가 되기를 바라왔다네.
노력만 하면 그리 될줄 알았어.
나중에 우리가 은퇴할 때 쯤이면 성가나 몇개 부릅세.
그러면 우리 죽은 뒤에도 사람들에게 기억될테니

# JESUS :
...
For all you care, this wine could be my blood.
For all you care, this bread could be my body.
...
If you would remember me when you eat and drink.
예수 : 모두 듣거라, 이 와인은 내 피이고 이 빵은 내 몸일지니
...
너희들이 먹고 마실 때만이라도 나를 기억해준다면...

I must be mad thinking I'll be remembered. Yes,
I must be out of my head.
Look at you blank faces. My name will mean nothing
Ten minutes after I'm dead.
One of you denies me.
One of you betrays me.
내가 시발 미쳤지. 잘도 내가 기억되겠네.
그렇게 믿는 내가 병신이지.
네놈들 멍때리는 쌍판떼기들 좀 봐봐.
나 죽고 딱 10분만 지나도 내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거야.
네놈 중 하나는 날 부인할거고,
또 한 새끼는 배신하기까지 할테지.

# APOSTLES :
No! Who would?! Impossible!
제자들 : 아니에요! 누가 그러겠어요. 그럴 일 없어요!

# JESUS :
Peter will deny me in just a few hours.
Three times will deny me
And that's not all I see.
One of you here dining,
One of my twelve chosen
Will leave to betray me.
예수 : 베드로는 몇 시간 후면 날 부정할거야.
그것도 세번씩이나 부정할테지.
그게 내가 본 예언의 전부가 아냐.
여기 밥처먹고 있는 새끼들 중 한 새끼.
내가 선택한 열두 새끼들 중 한 새끼.
그 새낀 날 밀고하러 떠날거라구.

# JUDAS :
Cut out the dramatics! You know very well who.
유다 : 감성팔이는 집어치우십쇼. 당신은 그거 누군지 엄청 잘 알잖아요.

# JESUS :
Why don't you go do it?
예수 : 어서 배신하러 가지 그래?

# JUDAS :
You want me to do it!?
유다 : 정말 내가 배신하길 바래요?

# JESUS :
Hurry, they are waiting.
예수 : 서둘러라. 니가 밀고하려는 제사장 놈들이 기다리잖아.

# JUDAS :
If you knew why I do it!
유다 : 내가 왜 그러는지 알기나 합니까?

# JESUS :
I don't care why you do it!
예수 : 그딴 이유같은건 알고 싶지도 않아.

# JUDAS :
To think I admired you!
For now I despise you!
유다 : 난 당신을 존경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경멸스럽기 짝이 없네요.

# JESUS :
You liar! You Judas.
예수 : 이 구라쟁이 새끼! 유다같은 새끼!(이 말이 외국에서는 욕으로 쓰이니까 일종의 언어유희인 듯)

# JUDAS :
You want me to do it!
What if I just stayed here
And ruined your ambitions
Christ you deserve it!
유다 : 당신이 그렇게 하라면서요.
당신 곁에 머물면서 당신의 헛된 야망을 망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리스도 당신은 그래도 싸.

# JESUS :
Hurry, you fool. Hurry and go.
Save me your speeches, I don't want to know. GO! Go!
예수 : 어서가 이 병신새끼야.
네놈새끼 말은 더이상 듣고싶지도 알고싶지도 않아.
꺼져! 꺼지라구!

...

# JUDAS ;
You sad, pathetic man, see where you've brought us to.
Our ideals die around us all because of you.
And the saddest cut of all:
Someone had to turn you in.
Like a common criminal, like a wounded animal.
A jaded mandarin
A jaded mandarin
A jaded, faded, jaded, faded, jaded mandarin.
유다 : 당신이 우릴 어디로 데려왔는지 봐봐. 당신은 한심한 새끼일 뿐이야.
당신 때문에 우리의 꿈은 다 깨져버렸지.
누군가는 당신을 밀고해야했어. 쌔고쌘 범죄자 같이, 상처입은 동물같이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했지.
당신은 그저 퇴물 현자일 뿐이야.
넌덜머리나고 빛바랜 현자일 뿐이지.

...

Everytime I look at you I don't understand
Why you let the things you did get so out of hand.
You'd have managed better if you'd had it planned....
당신을 볼때마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이렇게 답없이 일을 벌여놓을 수가 있어?
최소한 계획이나 하고 일을 벌였으면 나았을거 아냐.

...

# JESUS ;
Will no one stay awake with me?
Peter? John? James?
Will none of you wait with me?
Peter? John? James?
예수 : 내 곁에 남아줄 사람 어디 없나?
베드로? 요한? 야곱?


보다시피 유다는 민중의 요구를 저버리고 비현실적인 계시 때문에 자살이나 다름없는 십자가행을 택하는 예수를 비난하고 있고, 예수는 그런 유다에게 꺼져버리라며 악을 쓰고있다. 그런 와중에 열두 사도들은 예수의 뜻을 알아주기는커녕, 모든 일이 끝나고나면 성가나 만들어서 후손에게 기억되자며 속편한 소리나 하고있다. 즉 열두 사도는 예수의 사상이 아닌 영광만을 추종했고, 그래서 예수의 뜻에 제대로 동조하지도, 그렇다고 유다처럼 조목조목 반박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여기 나오는 예수, 유다, 사도들의 모습이 지크슈의 전형적인 인물관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이 파트가 지크슈의 어떤 장면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파격적인 해석이 지크슈가 센세이셔널한 걸작으로 탄생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판 지크슈에서는 물을 2리터 정도 섞은마냥 이 부분이 희석되었고, 유다와 예수의 사상논쟁은 "여전히 예수를 존경하고 있는" 유다가 한발짝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고난을 보고 유다가 죄책감을 느껴 자살하는 건 원작이나 한국판이나 같다. 그러나 이야기 풀이과정이 다름으로 인해 원작의 유다는 예수와 동등한 층위에 서있는 반면, 한국판의 유다는 반박다운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예수의 뜻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크슈 원작에 대한 새롭다면 새로운 해석이긴 하지만, 비크리스천의 입장에선 심각한 원작훼손이자 평범한 예수 일대기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방향의 편곡은 지크슈의 진히어로가 어째서 유다인지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실책임이 틀림없다. 아니면 편곡가가 한국 교회 아줌마들을 굉장히 무서워했거나.

슈퍼스타 예수
다시 예수의 이야기로 돌아와, 어째서 제목이 Jesus Christ Superstar가 되었는가? 지크슈는 쉽게 달아오르고, 또 그만큼 쉽게 식어버리는 대중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날리고 있다. 그러한 감정놀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다름아닌 혁명가나 아이돌 등의 슈퍼스타다.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슈퍼스타는 생명력을 갖게되고, 대중의 무관심과 함께 슈퍼스타는 죽음에 이른다. 실제로 지크슈 작곡가 Andrew Lloyd Webber는 이러한 면을 가시화하기 위해 예수 역에 당대 최고의 아이돌 존 레논을 영입하려 했다고 한다.

예수는 자신을 둘러싼 대중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대중들은 예수의 등장에 열광했지만, 아무도 그의 사상 깊숙한 곳까지 알지 못했고 알려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예수에게 바랐던 것은, 그저 제 한몸 병을 고쳐주거나 자신들을 로마 압제로부터 구해 새 땅을 마련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 "광전사 예수"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메시아였다. 인류의 대속이니 희생이니 따위가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리는 만무했다. 예수와 가장 가까웠다던 제자 베드로조차도 그의 대속 의지를 알지 못하고 처형장의 로마 병사들에게 칼을 겨눴으니, 예수는 수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도 지독히 외로웠던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런 대중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이 바로 유다였다. 그는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자가 대중으로 인해 자멸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유다는 예수가 살아남기 위해선 대중의 요구에 따라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예수에게 설득했지만 예수는 듣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악을 쓰며 예수와 싸우기도 했지만, 유다는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노래하고 예수의 처참한 몰골 앞에서 울부짖는 등 끝까지 자신의 우상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다가 예수를 고발한 일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자신과 혁명 방법론이 다르다해서 굳이 예수를 밀고할 필요까진 없었으므로, 어찌됐든 유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나쁜 놈이라는 해석이 조금 틀어진다. 비록 예수가 자신의 의견을 듣지 않았지만, 유다는 대중의 손아귀에 농간당하는 예수의 비참한 모습을 더이상 보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로마 당국에 어서 밀고하여 예수가 그토록 원했던 이상향인 십자가 대속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나았다. 그것이야말로 유다 그가 사랑하는 우상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던 것이다. 유다의 심정은, 끔찍하게 부상당한 전우의 안식을 위해 총쏘아 죽여주는 군인의 참담함과 같았을테다.

그에 반해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아닌 "추종자"로 여겨지는 대중은 예수가 내란죄로 로마 당국에 잡혔을 때에 태도를 싹 바꾸어 처형하라며 소리친다. 한때 정상급의 인기를 갈구하다가도,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천하의 개새끼로 등극하는 연예계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정작 처형권을 가진 본시오 빌라도조차도 개인적인 양심 때문에 죄없는 예수를 죽일 수 없다고 했는데, 막상 예수는 한때 자신을 따랐던 대중들의 거센 항의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다. 예수가 유다에게 치욕을 받고 가장 먼저 찾았던 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안다는 것조차 세번 부정했다. 예수를 위해 눈물을 흘린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메시아나 신이 아닌 "인간으로" 사랑했던 마리아와 유다 뿐이었다.

총평
지크슈 초연 이후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는, 예수와 유다를 재해석하는 시도가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인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했다거나, 유다 또한 야훼의 의지로 예수를 배신했다거나, 혹은 이슬람교가 말하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유다이고 예수는 신의 권능으로 행복하게 승천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많다. 예수가 신이 아닌 단순한 인간이라는 해석도 지크슈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우스갯소리긴 해도, 인터넷 상엔 예수 마피아설(...)까지 돌아다니니 말이다.

그러나 지크슈가 걸작인 것은, 예수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 하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어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크슈는 애정과 비판과 동정이 함께 어우러진 시선으로 혁명가 예수를 바라본다. 만일 예수가 유다의 의견에 따랐다면, 지금쯤 기독교는 전세계로 퍼지지도 못한채 그저 유대민족 사이에서만 인정받는 토착 민속종교 정도로 연명하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유다의 바람대로 이스라엘 왕국이 로마로부터 분리독립되었다면, 당대 세계의 중심 사통팔달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할 리도 없었을테니. 그러니 유다의 답답한 심정과는 별개로 예수의 대속은 인류사에 선명한 한 획을 그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Andrew Lloyd Webber는 이러한 입체적인 예수의 모습에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지크슈는 신약보다도 따스한 품으로 예수를 포옹한다. 신성과 대의가 대입되어 단 한순간도 그 자신으로 살지 못했던 고독한 인간 예수를 불쌍히 여긴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의 신적 희생을 고뇌하는 한 인간의 용기로 그려낸다. 신이 아닌 인간인 예수의 모습이야말로, 그가 어째서 비크리스천들에게도 사랑받는 성인으로 여겨지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15.08.12. 지크슈 한국공연에 대한 평

지크슈는 특이하게도 락오페라 형식이고, 예수와 유다의 절규 장면이 많아 배우들에겐 굉장한 체력을 요구하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유다 역 최재림의 고음소화는 (한번의 음이탈을 제외하면) 소름돋게 완벽했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두 사람 중 하나인 마리아 역은 배정된 가사가 워낙 적고 반복적이어서 아쉬웠으나, 해당 역을 맡은 배우의 중저음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본시오 빌라도 역 김태한 또한 양심과 대중의 요구 속에서 번뇌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임에도, 헤롯의 등장씬은 시쳇말로 사이다처럼 톡톡 튀고 신선한 코미디였다.

다만 예수 역을 맡은 마이클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이 작품의 간판곡이라 할 수 있는 Gethsemane의 감동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두세번의 고음 샤우팅이 나오는 해당 곡에서 다소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가 났던 게 컸다. 샤롯데씨어터 측의 사운드 시스템에도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부드러운 오케스트라가 아닌 박력있는 드럼과 일렉기타의 멜로디를 스피커가 잘 소화하지 못하는듯 찢어지는 소리가 조금 있었다. 물론 작품의 명성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는, 6년 전 지크슈를 Steve Balsamo 공연실황을 통해 처음 알게된 내게 있어서,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훌륭한 첫 관람이었다. 생애 최고의 공연이었다. 친기독교적인 내용 가지치기는 아쉬웠으나, 아마 그걸 반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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