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줄거리



작품의 시점은 환경위기로 인해 인간이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 아포칼립스의 세계다. 이미 정부와 군대는 그 힘을 잃고 해체되었으며, 대다수의 인류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더불어 인류가 이루어놓은 과학과 기술은 이제금 모두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어 학교 교사들조차도 아폴로의 달착륙은 음모였다고 가르친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전 NASA 파일럿이었던 쿠퍼조차도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옥수수 농장을 돌보며 살고있다. 그러던 중 쿠퍼의 딸 머피는 자신의 방 책장에서 책이 떨어지는 중력이상 현상을 발견하고서 유령이 나타났다고 쿠퍼에게 호소한다. 쿠퍼는 그러한 머피에게 "과학적으로 생각하라"며 타박했지만, 중력이상 현상으로부터 어떠한 좌표를 읽어낸 후 평범한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그 좌표를 향해 달려간다.



쿠퍼와 머피가 좌표를 따라 달려간 곳은 다름아닌 해체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NASA의 지하기지였다. 그곳에서 쿠퍼는 일전에 함께 일했던 존 브랜드 박사와 그의 딸인 아멜리아를 만나게 된다. 브랜드 박사는 50여년 전부터 토성 인근에 알수없는 이유로 웜홀이 발생하였고, 이 웜홀이 쿠퍼와 머피가 겪은 중력이상 현상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브랜드 박사는 그 웜홀이야말로 멸망해가는 인류가 다른 은하계의 생존가능한 행성을 찾아갈 수 있는 통로라 여겼다. 그는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띤 우주선의 조종을 쿠퍼가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머피는 책장에서 "STAY(가지말라)"라는 메시지를 읽었다며 쿠퍼를 가로막지만, 쿠퍼는 언젠가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로 되돌아올 것(빛의 속도에 가깝게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가므로)이라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지구를 떠나게 된다.



NASA 측은 이미 웜홀을 통해 선발대를 보내어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행성을 물색해 놓았는데, 모종의 이유로 NASA는 선발대에게 통신을 보낼 수 있었지만 선발대는 NASA에게 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쿠퍼의 임무는 이 세 개 행성에 들러 선발대를 구출하고, 선발대의 자료를 토대로 인류 재건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브랜드 박사의 재건계획은 두가지였다. 플랜 A는 중력방정식을 이용한 거대 우주정거장에 인류를 태워 새로운 행성으로 대피하는 것이었고, 플랜 B는 플랜 A가 여의치 않을 경우 5000개의 수정란을 새로운 행성에서 양육하여 인류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아직 브랜드 박사가 중력방정식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는데, 브랜드 박사는 쿠퍼가 웜홀을 통한 다른 행성들을 둘러보고 지구로 복귀할 때까지 중력방정식을 완성시켜놓겠노라 단언한다.



토성 인근의 웜홀을 통해 쿠퍼 일행은 가르간투아 블랙홀을 공전하는 밀러 행성에 이른다. 문제는 블랙홀의 중력으로 시간이 지연된다는 것이었는데, 쿠퍼는 이때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는 7년에 해당된다는 청천벽력같은 현실과 마주한다. 쿠퍼 입장에서는 밀러 행성에서 2시간만 낭비해도 아들딸들이 14살이나 더 먹는 것이었고, 따라서 서둘러 임무를 마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쿠퍼와 아멜리아 박사는 밀러행성에 착륙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블랙홀의 중력으로 인해 발생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도였다. 동료 우주인 도일을 잃고서도 아무런 소득이 없이 모선(母船)인 인듀어런스 호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지구시간으로 23년이 지나버린 이후였다.



가까스로 블랙홀의 시간지연 지역을 피해있던 모선 인듀어런스 호에는 지난 23년간 쿠퍼의 아들딸들이 보내온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다. 아들 톰은 이미 결혼하여 쿠퍼의 손자를 낳았으며, 딸인 머피는 브랜드 박사의 제자가 되어 플랜A의 실행을 위한 중력방정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리려 한다"는 톰의 메시지와 "오늘은 내 나이가 아버지의 나이와 같아지는 내 생일"이라는 머피의 메시지를 본 쿠퍼는 오열한다. 쿠퍼와 아멜리아에게는 이제금 남은 두 행성 중 하나의 행성만을 방문할 연료와 시간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옛 연인이 선발대로 파견된 에드먼드 행성을 가자고 주장했지만, 쿠퍼는 만 박사가 계속 신호를 보내오는 만 행성으로 향하기로 한다.



같은 시각 지구에서는 브랜드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는데, 브랜드의 유언으로 머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된다. 이미 중력방정식은 쿠퍼가 지구를 출발하기도 전에 완성되어 있었으며, 지구에 남아있는 인류를 거대 우주정거장에 태워 피신시킨다는 플랜 A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다만 멸망해가는 인류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행성을 탐험하기 위한 예산을 타내려는 속임수였고, 쿠퍼도, 아멜리아도, 머피도 감쪽같이 20여년을 속아왔던 것이다. 이제 지구에 남은 인류는 그야말로 버려진 셈이 되었다. 그러나 머피는 아버지 쿠퍼와 아멜리아만큼은 플랜 A가 불가능한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자신을 버린 것이라 생각하여 분노에 찬 저주를 퍼붓는다.



한편 만 행성에 착륙한 쿠퍼와 아멜리아도 같은 사실을 알게된다. 얼음 황무지나 다름없는 만 행성에 동면되어 있는 만 박사를 깨워서 자초지종을 들은 결과 브랜드 박사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려고만 하는 쿠퍼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은 플랜 A를 들먹였던 것. 쿠퍼는 이 사실을 들은 이후, 반드시 지구의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다지게 된다. 그러나 쿠퍼의 의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만 박사는 이 행성이 춥고 암모니아 투성이일지라도 사람이 살수있는 지하지대가 있다며 쿠퍼를 이끌고 나갔는데, 그것은 자꾸 지구로 돌아가려하는 쿠퍼를 제거하고 에드먼드 행성으로 떠나 플랜B를 온전히 실행하려는 만 박사의 속임수였다. 쿠퍼는 만 박사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아멜리아에게 구출되었고, 인듀어런스 호에 도킹하려던 만 박사를 저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모선 인듀어런스 호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다시 장면은 지구로 돌아온다. 브랜드 박사의 중력방정식이 불완전함을 알게된 머피는 어린시절 자신의 방에서 일어났던 중력이상 현상이 해결의 실마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피는 여전히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옛날 집을 떠나지 않으려던 오빠 톰과 그의 가족들을 가까스로 내보낸 뒤, 다시금 어린시절의 책장 앞에 서서 고뇌한다.



만 행성으로부터 살아돌아왔지만, 인듀어런스 호는 이제 쿠퍼와 아멜리아 둘 모두를 에드먼즈 행성까지 데리고 갈만한 연료가 없었다. 쿠퍼는 대신 고육지책을 선택하였는데, 블랙홀 근처를 공전하여 아멜리아를 에드먼즈 행성으로 보내고, 자신을 블랙홀 중심으로 빨려들어가게 희생하여 플랜 A의 실행에 필요한 데이터를 획득하는 것이 그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지구 시간으로 5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이미 지구로 돌아갈 것을 포기한 쿠퍼는 아멜리아에게 "이제 우리에게는 상대성 이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며 계획을 감행한다.



블랙홀 중심은 다름아닌 중력이상 현상이 발생하던 머피의 책장 뒤였다. 다른 점이라면 이곳은 5차원 테서렉트여서, 과거의 머피와 현재의 쿠퍼가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결국 머피에게 여러 메시지를 보냈던 것은 유령도, 중력이상 현상도 아닌 지금 시점의 쿠퍼였고, 머피와 생이별을 하기전 "STAY"라는 모스 부호를 보낸 것도 다름아닌 쿠퍼였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사실 언제나 머피와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과거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머피의 법칙"처럼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되어있던 것. 머피 또한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하여 인류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플랜 A를 위한 중력방정식을 완성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쿠퍼는 지구시간으로 80여살을 더 먹어 임종을 앞둔 딸과 마주한다. 인류는 머피가 완성한 중력방정식을 통해 플랜 A를 실행하여 대피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이제금 쿠퍼의 탐험은 그토록 바라던 가족을 만남으로써 막을 내린다.

인류로서의 인간, 인간으로서의 인간

내가 사는 안암동은 꼴에 서울이라는 딱지를 달고있긴해도 겨울이면 여러 상념에 잠길만큼의 충분한 별이 뜨는 곳이다. 가만히 서서 담배 연기마저 뚫고 내 시각을 자극하는 별빛을 보고 있노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리를 둔 저 존재들이 도대체 얼마나 거대해야, 또 얼마나 밝아야 여기 이 미물에게까지 빛이 닿을 수 있는지 감탄하고는 했다. 인류가 얼마나 진화하고 영리해지고 과감해져야만 저곳들에 손길을 미칠 수 있을지를 의문을 가질 때에는, 부득불 우리 수명이 유한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통탄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차원은 가히 인간 지성의 한계를 시험한다. 킬로미터나 킬로그램 따위로는 계량할 시도조차 하지 못할,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치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직관에 대해 갖는 오만을 무참히 짓이겨 놓는다. 우리가 여간해서는 의심을 품지않는 시간감이나 빛의 직진성조차도 거대존재들의 세계에서는 왜곡된다. 누군가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에 나라가 세워졌듯이 먼 미래에는 인류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을 내놓지만, 그 말인즉슨 저 하늘을 정복하는 세대는 결코 우리의 세대가 될 수 없음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우주는 거대하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한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인즉, 우리를 품고있는 거대한 자궁과 같은 우주공간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인간존재가 아니라 그러한 유한한 삶들이 연속되어 무한을 이루어가는 인류존재여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류존재의 모든 희망은 다름아닌 소수의 우주인이라는 인간존재에게 투영된다. 인류의 도약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기꺼이 감히 계측할 수조차 없을만큼 거대한 시공간계에 자신을 투신해야만 한다. 그 누군가는 자신의 인간존재로서의 의미들, 이를테면 사랑과 행복과 가족과 친구를 모조리 포기한 채로 인류의 도약을 위하여 자신을 오롯이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 물론 이렇게 인류전체의 기대를 짊어진 개인의 고뇌는 <인터스텔라> 고유의 것은 아니고, 이미 <아마겟돈> 류의 세기말적 SF물에서 다루어진 바가 있다.


<인터스텔라>는 한층 더 나아가 플랜B를 통해 인류존재 전체에게 "인간성의 희생"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약 지구상의 인류가 모조리 절멸될 위기에서 인간은 인류존재의 존속과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인간성을 희생할 수 있는가? 과연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을 위해 이미 태어나 어엿이 존재하고 있는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우주가 인류의 목적지임은 분명하지만, 한 인간의 목적지라고는 할 수 없다. 개인에게 있어서 우주는 그저 가끔씩 올려다보는 밤하늘일 뿐이다. 정작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연인과 사랑과 친구이지, 수백 광년 떨어진 별들의 신비로움이 아니다. 달에 사람까지 쏘아보냈던 미국조차도 경제가 어려워진 직후에 가장 먼저 삭감된 예산은 우주관련 예산이었다. 사람들은 당장 지구살이도 힘든데 우주는 무슨 우주나며 정부를 타박해댔다. 아폴로 쇼크 이후 더이상 우주개발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자 사람들은 우주발전과 자신의 인생은 그다지 관계없는 것이라 섣불리 단정지었다. 설령 화성 한어귀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한들 우리 인생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말이 세상을 지배한다. 어쩌면 그들이 정상이고 과학자가 괴짜일런지도 모른다. 지구는 여전히 60억의 인류를 부양하는 데에 부족하지 않은 자원과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는 우주를 개척해주기를 바라지만,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되거나 그 언젠가가 지금 당장이 되기는 원치않는다. 이러한 "인간성"의 문제는 쿠퍼의 고뇌로써 극단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과학자는 그래서 영웅과 같아야한다. 지구 속에만 안주하려는 인류존재를 이끌어 어둠 속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어둠을 어둠 그대로 두는 것에 치욕을 느끼고, 자신의 유한성과 인류의 폐쇄성을 이겨내고 우주공간의 한줄기 호롱불이 되는 것에서 희열을 느껴야만 한다. 더불어 그것들의 불투명한 목적성도 감내해야만 한다. 평생을 공들여온 자신의 발자취가 결과적으로 인류의 도약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이론들이 모여 결국은 거대한 도약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현재 살아남은 사람의 안위보다 미래 후손들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 그러니까 자기자신의 인간존재성을 극복하고 인류존재로 거듭나야만 한다. <인터스텔라>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렇듯 인간이 인류로 진화하는 데에 따르는 고통이다. 우주개척을 가로막는 것은 결국 그에 소모되는 막대한 시간도, 측정조차 못할 어마어마한 거리도 아니다. 바로 전인류적이지 못한 인간성이 우주로의 여정을 가로막는 것이다. 영화는 어영부영 억지 해피엔딩으로 이 질문에 마침표를 찍고 있지만, 우리는 혁명가와 같은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총평
<그래비티>와의 개봉시점이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나는 <인터스텔라>를 같은 장르라는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비티>가 압도적인 영상미를 앞세운 대신 스토리를 어느 정도 뻔한 방향으로 이끌어낸 점이 아쉬웠다고 한다면, <인터스텔라>는 정반대의 극단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흔히 현대 SF 장르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인터스텔라>는 우주의 인외마경을 극단의 CG기술을 활용하여 그려내지도 않았고 (혹은 못했고), 그렇다고해서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소품들이 <스타워즈> 시대의 그것들에 비해 크게 발전한 것도 아니다. 여느 SF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오락적이고 화려한 요소들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만큼 영화가 다루는 스케일에 비해 영상이 빈약하다. 이제는 진부한 이류 SF물의 상징이 되어버린 세기말적 세계관 또한 그다지 신선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지구를 떠날만큼 급박한 인류의 식량난이 단순히 옥수수밭을 찍은 몇 개의 씬으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인터스텔라>의 객관적인 영상 퀄리티가 아주 수준 이하라는 말은 아니다. 등장하는 블랙홀의 중력렌즈 현상, 5차원 테서렉트 등은 실제 물리학적 법칙에 상상을 가미하여 만들어진 영상들이며, 이토록 사실고증에 철저하려 노력했다면 이 이상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분명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스토리에 있어서는, 다소 호불호가 나뉠지도 모르겠으나, "너무 먼 미래의 일도 아니면서, 너무 현실적인 일도 아닌" 가장 적절한 시점을 잘 선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리 법칙을 마음껏 짓밟으며 광속의 몇 배씩을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갔다하는 미래의 모습은 전개는 빠를지언정 관객의 공감을 사기가 힘들고, 완전한 현실의 일은 우주라는 미지세계에 대한 인류의 답답함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만 할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그 중간의 포지션을 적절히 잡아서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헛소리" 내지는 "어느 정도 헛소리가 가미된 현실"의 중간쯤을 달리고 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그로 인하여 인류존재로서의 역할과 인간존재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것은 기존의 SF물들의 내용이 대개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는 순간 뇌리에서 모조리 휘발되어 날아가는 것들이라는 점과 비교해 볼 때, 스토리 측면에서 크게 진보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의 이야기는 머지않은 미래의 인류가 필연적으로 당면하게될 문제이며, 그 문제를 가장 현실성있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필히 비판받아야 마땅한 점은, 주제 전달을 위해 우연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많이 가미하여 스토리 전개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영화 전반부의 내용이 후반부의 복선이었다고 소름이 돋는다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 이 장치들은 모조리 우연에 기댄 억지 전개에 불과하다. 고작 "알고보니 머피의 책장이 블랙홀 중심의 5차원 공간이었다"는 애들 보는 만화 따위에나 나오는 억지에 소름돋는다는 평은 내리는 것은 사치스럽다. 고작 그정도 억지를 이끌어내고자 전반부를 지리멸렬하고 길게 늘어뜨린 것은 알량한 "반전"을 운운하며 관객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령 어째서 웜홀이 태양계에 생겨나게 되었는지, 어째서 블랙홀 속의 5차원 테서렉트가 머피의 책장으로 이어지는지, 어째서 그 블랙홀이 다시 태양계로 돌아오는 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인터스텔라>는 치밀한 과학적 고증과 무시할 수 없는 메시지로 이러한 우연적인 요소들을 은근슬쩍 묻어버리려고 하는 듯 한데, 그러한 허상들을 완전히 배제한다면 <인터스텔라>는 그저 <트랜스포머>류의 단순 오락성 SF물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말이 되든 안되든 일말의 개연성 정도는 마련을 했어야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만큼 언제나 어느 정도의 오류는 허용되는데, 다소의 고증오류를 감수하고서라도 스토리의 개연성을 챙기는 것이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더 현명한 방안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놀란 감독의 이전 작품들이 치밀한 전개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인터스텔라>는 개연성이 크게 떨어져 영화를 보는내내 관객으로 하여금 "빛 좋은 개살구"라 느끼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마치 감독이 마련한 놀이터에서 마음껏 놀아나는 느낌이랄까? 취향차이는 존중하지만 사실 <인터스텔라>가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은 공감가지 않는다. 가히 놀란이 만든 역작이라기보다는 평론가들이 가공해낸 가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허나 이만큼의 혹평을 내린다고해도, <인터스텔라>의 인기비결이 단순한 지적허영일 뿐이라는 지극히 계급주의적인 작자들의 평론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대중은 늘상 <트랜스포머>나 <아바타>류의 시각자극적인 작품에만 열광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들은 과학발전과 더불어 인간 지성의 저변이 수십만 광년까지 확장되어가는 것을 단순히 "내 인생과 관계없다"는 옹졸한 소견만으로 폄훼하고 있을 뿐이다. 설령 이 작품이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손쳐도, 그러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나마 관객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호기심을 갖게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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