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봐라 괜찮재? 마당도 너르고 좋더라야. 니 좋아하는 고양이도 한 다섯 마리는 키울 수 있겄더라. 근데 느 엄마랑 둘이 살기엔 너무 넓드라. 2층집인데 난주에 니 장가가고 나믄은 느그가 2층 살고, 우리가 1층 살면 딱 되겠다."

"아이고 씨잘데기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소. 우리가 거게 아파트 살면서 얼마나 좋은 일이 많았는데. 거는 또 병원도 마트도 너무 멀다아이가. 그리고 요즘 아들이 누가 부모랑 같이 살라카대?"

주말간에 단독주택을 보고온 아버지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벌러덩 드러누워 손톱을 깎는 내 눈앞에 사진을 들이미셨는데, 아들의 동의만 얻는다면 당장이라도 계약서에 인감찍으러 달려갈 태세였다. 엄마 표현은 항상 저렇다. 엄마 성격을 빼다박은 나는 안다. 엄마도 내심 그 집이 퍽 마음에 들었음을. 그리고 기대도 했을테다. 당신의 아들이 요즘 "아-들"같지 않게 결혼하고 나서도 분가할 뜻이 없기를. 너스레를 가장한 그 의중, 엄마 유전자의 반절을 물려받은 내가 모를리 없다. 이미 10년차 자취생인지라 이제 둘 이상 함께 사는 억압을 견디기가 힘들다. 그리고 사실 결혼 생각은, 아유 아직 서른도 안됐구만 뭘. 그러나 괜스레 쓸데없는 데에 솔직해지면 모처럼 달아오른 아버지 표정이 시무룩해질까, 아이고 참 손톱 안보여요 하며 대답을 대신했다. 마당이니 고양이니보다도 이제는 이사할 때 병원 위치도 중요해졌구나. 그러고보니 저 크는 것은 장히 여겨도 부모 머리에 서리내리는 줄은 모른다더라. 검은 머리 짐승의 비애다.

아버지. 어렸을 적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하면 단연 아버지를 꼽았던 것은, 딱히 아는 위인이 없거나 자식 된 의무감에서는 아니었다. 우리 엄마같은 괄괄한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사자후를 당하면서도, 끝끝내 아들 장성할 때까지 콩가루 집안을 물려주지 않은 그 인내심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니 빌게이츠니 그게 다 뭔가. 우리 집 성하면 그게 우선이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싸울때면 나는 늘상 당하기만 하는 아빠 편을 들어댔는데, 그게 나중에 정치학 교과서에 "힘의 균형"이란 그럴싸한 용어로 등장하니 참 기묘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딱히 엄마를 깎아내리려는건 아니다. 성격이란게 일장일단이 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우리집은 억대 빚더미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그 추측의 출처가 엄마 혼잣말이란게 좀 탐탁찮긴 해도. 여하튼 내가 엄마 성격을 똑 빼닮았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그 성격이 아버지의 허허거림보다도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내보다도 상처주는 편이 더 편한 삶이라고, 어린 시절의 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였나. 엄마 아버지가 대판 싸운적이 있었다. 뭐 그때도 가만가만 당하고만 있던 아버지가 싸웠다고 표현하는게 가당키나 하겠냐만은. 그러나 그날따라 아버지도 새된 고함소리를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현관문을 벌컥 열고 나가버렸다. 어린 직감에도 내가 따라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 슬리퍼에 잠바 차림으로 저기 앞서 부락산을 향해가는 아버지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바스락 바스락. 그날따라 아버지의 보폭은 어린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기에, 부자의 뜻하지 않은 산행엔 고엽 바스라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야트막한지라 정상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산 꼭대기에서 불현듯 "씨발..." 그때 나는 아버지가 욕하는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본 것 같다. 여보라든지 아빠라든지 과장님이라든지 따위가 아니라 오롯이 아버지 스스로의 모습. 왜 아버지에겐 그런 모습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왜 아버지는 언제나 누군가의 부드러운 남편이고 누군가의 자상한 아빠일거라고만 생각했을까? 새된 사자후에도 좀처럼 큰소리내지 않던 당신의 모습은, 원래 화를 내지 못하는 천성 탓이라 여겼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가장이 된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스스로의 손으로 버려야하는 위대한 희생임을. 돌아가는 길엔 아버지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버지의 스물일곱 적처럼 나도 처음으로 양복을 입었다. 매주 월요일만 되면 카페나 하나 차려 나가버릴까 싶은 이 빌어먹을 직장생활을 어떻게 서른해 동안 무탈하게 했는지, 직장인으로서의 아버지도 참으로 경이로운 때다. 스물일곱. 꼭 아버지가 날 낳았던 나이다. 내가 지금 아이를 갖는다면 아마 인간극장에 출연하는 속도위반 십대부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내가 지금 가정을 갖는다면 사랑과 전쟁 세번째 에피소드가 되지는 않을까? 이제는 빛바래어 파스텔톤이 되다못해 세피아톤을 띤 가족앨범 저 앞장, 그때는 날렵한 배와 처지지 않은 눈을 가진 그 젊은이는 어떻게 저리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걸까? 나는, 나를 버리고 활짝 웃을 수 있을까? 똑같은 스물일곱인데 나는 여전히 어리기 짝이 없다.

눈이 내린다. 아버지 머리엔 녹지않을 만년설이 쌓인다. 내 머리에도 슬그머니 싸락눈이 내린다. 성씨 집안 남자들은 머리가 빨리 샌다. 안 좋은것만 꼭 닮았어, 엄마가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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