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까지만 해도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TV프로가 있었다. 지금도 이 프로가 계속 방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사실 TV를 안본지 어언 8년째에 접어들었으니), 그리고 그리웁던 사람을 부르는 만남의 순간에 나오는 따다다단~ 하는 음악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명하다. 재미있는 것이, 까까머리 학창시절에 그토록 흠모했지만 차마 고백하지 못했었던 옆집 소녀는 어언 살집이 푸짐한 아줌마가 되어, 어깨동무하며 팽이치고 같이 놀다가 어느샌가 서울로 전학가버린 앞집 코흘리개는 양복을 입은 비즈니스맨이 되어,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소위 "줄빠따"를 치던 호랑이 학주 선생은 어느새 지팡이 한자루도 버거워보이는 백발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나타난다. 그마저도 그렇게 만난다면 다행이고, 아주 간혹은 먼저 세상을 떠나가거나 소식이 묘연해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어찌됐든 운이 좋아 그렇게 자기가 그리웁던 인연을 찾는 사람은, 아마 마치 마술상자에 무시무시한 사자를 몰아넣었다가 이내 백색의 귀여운 비둘기가 나오는 마술쇼를 보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십년만에 만난 인연과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할 것인지가 어릴 때부터 항상 궁금했다. 수십년을 그 사람과 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정도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희미해졌다는 방증이다. 간혹 기억이라는 서랍장을 뒤적뒤적이다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도 오랜 기간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사람을 한번 만나게 되었다고해서 그 이후로는 계속 연락하고 지낼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요즘 사람인 내가 이런말을 하는게 좀 어색하긴 하지만, 굳이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이 없어도 될 것이다. 페이스북에 가입하면, 도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통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만한 사람 목록에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동기들이 좌르륵 뜬다. 심지어는 이름이 낯이 익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않아 가만가만 생각해봤더니 유치원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까지 뜬다. 페이스북 팀에서 뒷조사를 하는건가... 께름찍할 정도다. 내가 그리웁던 인연은 물론, 아예 내 기억 속에서 소거되어버린 인연까지 모조리 끌어다 보여주니 나도 모르게 내 방에 감시카메라 같은게 있진 않은가 살펴보게 된다. 내가 고작 고리타분하게 "요즘 세상은 참 많이 편해졌어" 따위를 말하려고 페이스북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내가 정말 연락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인연이 아닌 악연에 가까우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대개는 페이스북에 뜨는 친구들 중, 나에게 비교적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인연들이 분명히 있다. 가령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졸업때까지 찰싹 달라붙어다니던 단짝 친구나, 학원에 처음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때 나에게 먼저 다가와줬던 고마운 친구나, 고등학교 때 으레 내가 조언을 구하던 속깊은 친구 등등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과 연락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재미있는 것이다. 분명 그 사람들은 한때는 없으면 못사는 존재들이었고, 영원히 떨어질 것 같지않던 존재들이었는데, 이제는 페이스북이라는 친절한 "흥신소"가 나에게 "당신이 친했던 사람들은 이래이래 지내고 있고, 연락처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직접 말을 해주는데도 막상 다음에 한번 연락해봐야겠다...며 미루고 미루다가 이내는 다시 내 기억속에서 잊혀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인연을 논할만큼 세상경험이 풍부하지도, 영리하지도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고 단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인연의 대명제는 바로 "평생을 갈 것 같던 불타오르는 사랑도 하루아침에 떠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오늘만 보고말자던 꼴보기 싫던 웬수도 이따금 평생의 인연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적절히 들어맞은 것은, 마치 평생을 갈 것 같았던 내 꼬맹이적 수많은 죽마고우들 중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라는 사실과, 군대다녀오면 자기 부대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 말이 있을만큼 지긋지긋했던 군대 인연들과는 여전히 연락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죽마고우 녀석들과 연락을 닿아보려고 조금만 노력해도 거진 핸드폰 번호 정도는 다 얻을 수 있었고, 통화까지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게, 그렇게 통화할때는 반가운데 막상 그 이후로는 또 그저그렇게 내 핸드폰의 수많은 연락처 중의 하나로 전락해버린다.


요즘 "인연을 정리"한다는 말이 잦은 듯하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면서 오랜 기간 연락하지 않는 사람의 번호를 지운다거나, 자기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을 일거에 먼지털듯 털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란 짐이 없고 심플하고 가벼울수록 좋다나? 뭐 그거야 개개인만의 삶의 방식이니 내가 비판할 건덕거지는 못된다. 그러나 인연을 자의로 어떻게 한다는 것, 즉 있는 인연을 정리하고 없던 인연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생각보다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 내가 지우고 싶어도 지울수가 없고, 평생을 잊지 않으려해도 잊혀지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인연에 대한 기억을 마치 컴퓨터가 하드디스크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유자재로 썼다가 지웠다가 할수 있다면 어땠을까? 잊고 싶은 것을 잊을 수 있다면 세상에 이별 따위는 힘들지 않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사진이나 앨범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인연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굴레 중에서도 아주 악독한 굴레임이 틀림없다. 언뜻 보기에 세상은 인간에게 인연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인간은 인연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인연 때문에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인연은 그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과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있는 기억을 지울수도 없고, 없는 추억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만날 사람은 수십년간 연락이 닿지 못해도 어느 날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고, 못 만날 사람은 그 사람의 집앞에서 밤을 새워 기다리며 애타게 전화해도 만나지 못한다. 그러니 벨이 울리지 않는 그이의 전화는 기다리지 않는 것이 좋다. 받아들이기가 쉽지않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연이라는 굴레에서 어느정도는 해방되었다고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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