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동방문제

현대의 이집트와 주변국가. 우상단 구성탱이에 시리아에 주목. 이 지역은 19세기 당시 오스만의 영토였다.


지난번에 동방문제에 대해 알아봤어. 그게 1차라면 이번은 2차 동방문제인 셈이지. 1차 동방문제가 그리스 혁명으로 촉발되었다면, 2차 동방문제는 이집트 위기로 인해 촉발되었어. 당시 오스만의 영토였던 이집트에서는 메흐메트 알리Mehemet Ali라는 파샤(지방장관)가 약화된 오스만 중앙정부를 상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1차 동방문제(그리스 혁명) 당시 이 메흐메트 알리가 오스만 중앙정부를 지원하여 그리스 혁명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움으로써 알리의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어만 갔지. 이 때문에 이집트는 사실상 오스만 중앙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게 돼. 알리는 1828년 오스만-러시아 전쟁에서 오스만이 패배한 틈을 타서 남쪽으로 수단과 서쪽으로 리비아에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급기야 1831년에 알리는 시리아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오스만군과 교전을 벌이게되지. 오스만 내에서 이집트라는 독립세력과 중앙정부 간 내전이 발생한 격이야.


영국과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오스만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어. 따라서 오스만 중앙정부군을 지원해주려 했는데, 1830년대의 일련의 혁명들 때문에 영국의 관심은 이베리아 반도에, 오스트리아의 관심은 이탈리아 반도에 집중되었지. 자국 옆동네가 개판오분전이었기 때문에 저 멀리 오스만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어. 다만 여기서 프랑스의 역할이 두드러지기 시작해. 프랑스는 남부에 지중해를 끼고 있기 때문에 지중해에 상당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어. 그런데 이거 보니까, 러시아는 오스만이랑 싸우고 있고, 영국-오스트리아는 오스만을 지원해주려 하고 있는거야. 이게 무슨 소린가 하니 바로 강대국 간에 분열이 일어나게 된거야. 1815년 비엔나 체제로 억눌려있던 프랑스에게는 이런 강대국들의 분열이 그렇게 반갑지 않을수가 없었지. 또 프랑스는 오스만은 지는 별이요, 이집트가 새로운 북아프리카의 맹주가 될 것으로 판단했어. 이에 프랑스는 이집트에 군수물자와 군사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이집트를 지원해.

러시아의 득세

그런데 이 때 러시아와 오스만 간에 웃기는 상황이 발생해.

러시아 : 야 스만아 이집트한테 탈탈 털리는 것 같던데 좀 도와줄까?

오스만 : ㄲㅈ(1828년 오스만-러시아 전쟁으로 두드려맞았으므로)

러시아 : 아니 도와준대두?

오스만 : ...

러시아 : 거 오늘내일하는 놈이 자꾸 자존심만 앞세울거냐?

오스만 : 그.. 그럼 쵸큼만..

러시아 : 싫어

오스만 : 이 새끼가?!

러시아는 오스만 측에 계속해서 군사적 지원을 제의했고, 오스만은 거절에 거절을 거듭하다가 결국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궁지에 몰리게되자 러시아의 지원을 수용하게 돼. 근데 갑자기 러시아는 오스만에게 시리아를 양보하라고 하는거야. 러시아는 애초에 오스만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어. 다만 오스만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십분 활용하여 오스만으로부터 이권을 따내려했지. 영국과 오스트리아는 딴일로 바쁘고, 프랑스는 이집트를 지원하고 오스만은 사실상 러시아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그야말로 무너지게될 판이었고, 러시아의 요구에 따라 시리아를 이집트에 양보하게 돼.


(터키해협의 모습. 흑해에 면한 부분 이스탄불(당시 콘스탄티노플)이 있는 부분이 보스포로스Bosphorous 해협이고, 애게 해 쪽에 있는 부분이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이다. 러시아는 이 터키해협을 차지하기 위해 오스만과 그토록 물고뜯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 러시아는 오스만에게 방어동맹Treaty of Unkiar-Skelessi(1833)의 결성을 제안하게 되는데, 이 동맹의 내용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것이었어. 오스만이 외침을 받으면 러시아가 도와주지만, 러시아가 외침을 받든 전쟁을 하든 된장을 만들든 오스만은 개입하지 말란 거였지. 러시아의 일방적인 오스만 개입 선언이었어. 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위의 지도를 잘 보길 바래. 터키와 유럽 사이에는 쬬매난 해협이 있어. 그 해협을 통과하면 바로 러시아령의 흑해로 들어가게 되는거지. 이 터키해협(보스포로스와 다르다넬스)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터키해협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첫째는 영국해군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한 루트이고, 둘째는 거꾸로 러시아 해군이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한 루트였지. 따라서 러시아는 이 해협에 대한 이해관계가 어마어마했어. 오스만과의 방어동맹에서 러시아는 오스만에게 전시에 이 해협을 봉쇄하여 영국해군이나 프랑스해군이 흑해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라고 했어.

cf) 이 해협이 뚫리게된 전쟁이 바로 크림전쟁이다.


오스만-이집트 전쟁

오스만과 러시아의 방어동맹으로 인해 러시아는 오스만의 사실상의 보호국으로 등극해.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오스만은 유럽 강대국들이 모두 주시하고 있는 지역이었어. 그러니 러시아 입장에서도 입 싹닦고 자기네들만 오스만을 먹기가 눈치가 보였지. 이 때문에 러시아는 명목상으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보전을 약속했고,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에 접근하여 오스만 문제에 대해서 상호협력하기로 합의(1833)해.


어찌됐건 유럽의 상황은 여기서 정리가 되는 듯 했어. 그런데 문제는 오스만이었지. 이집트에게 이미 탈탈 털렸음에도, 러시아와의 방어동맹이 이제는 든든하게 빽이 되고 있었거든. 따라서 이번에는 오스만군이 이집트를 먼저 공격해. 오스만은 시리아의 이집트군을 공격하여 영토 수복을 시도(1839)했어. 그렇지만 오스만은 이미 이빨이 다빠진 호랑이였고, 이집트는 창창한 표범과 같았지. 이 공격으로 오스만은 정말로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까지 이르렀고, 유럽 강대국들은 이러한 오스만을 보고만 있다가는 결국 오스만의 붕괴로 이어질거라 생각했어.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영국-프러시아-오스트리아에게나 러시아에게나 오스만의 붕괴는 반길만한 일은 아니었지.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들으며 비실대는 오스만을 그토록 산소호흡기 끼워서 살려놓은 이유는 오스만이 붕괴되고나면 그 공백지역에 대한 유럽 강대국 간의 이권경쟁은 보나마나 뼈다귀 놓은 들개들의 싸움이 될거고, 그랬다가는 기껏 나폴레옹 이후 구축해놓은 평화체제가 한꺼번에 붕괴될 위험이 있었지. 따라서 유럽 강대국들은 이집트의 메흐메트 알리를 압박, 원래의 영지(이집트)를 제외한 다른 영토는 모두 뱉어내라고 위협해. 다만 프랑스는 좀 달랐지. 프랑스는 어떻게든 현 질서가 무너지면 자기들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이집트를 지원하여 오스만에 저항할 것을 독려해.


이집트가 프랑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아직 한발 남았다"며 저항하자, 결과적으로 보다못한 영국-오스트리아-오스만군이 시리아를 수복(1841)하였고, 이집트군은 본토까지 쫓기게 돼.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버린 프랑스는 이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어. 프랑스가 원한건 다만 강대국들의 의견분열이었지, 직접 나서서 전쟁을 하고자한 건 아니었거든.


이런 2차 동방문제의 결과물로 탄생한 게 바로 해협협정(1841)이야. 모든 유럽 강대국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보전을 약속했고, 1833년 러시아가 오스만에게 홀로 얻어먹은 모든 이권을 서로 나눠먹었어. 이로써 러시아의 오스만 보호국 지위는 상실되었지. 또한 중요한 터키해협 문제에 대해서, 타국의 군함이 흑해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똑같이 러시아의 군함도 지중해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터키해협을 아예 봉쇄시켜버렸어. 이는 러시아와 타 유럽 강대국 간의 상호견제책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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