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대에는 전유럽에 산업화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지. 바로 초기 자본주의의 발달인데, 이로 인해 도시거주민의 삶의 질은 악화되어 가고, 모든 노동력이 도시로 집중됨에 따라 농촌경제는 피폐화되기에 이르렀어. 특히 이 시기에는 유럽에 대규모 흉작까지 겹쳤는데, 이로 인해 기근 문제도 대두했지. 이러한 경제적인 배경 이외에도 영국과 혁명 프랑스를 롤모델로하는 혁명이 여러군데서 발생했어. 혁명에도 여러가지 목표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 자유주의적 목표(입헌정치, 정치적 자유, 시민권 쟁취), ⓑ 사회주의적 목표 : 경제적 불평등 해소(토지재분배, 사유재산 철폐), ⓒ 민족주의적 목표 : 민족의 자치와 독립이 있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것도 바로 1848년이야.



프랑스 혁명 : 프랑스에서 또한번 왕정이 무너졌다!!! 아니나다를까 고기도 한번 먹어본 놈이 잘먹는다고, 1848년의 혁명의 시작도 바로 프랑스에서 일어났지. 비록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프랑스에는 강대국들이 옹립한 부르봉 왕가가 유지되었고, 이후 1830년 혁명이 일어났지만 루이 필립이 황제자리를 꿰찼을 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혁명은 아니었어. 따라서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열기는 근 60년이 지나도록 식지 않았지. 1848년 프랑스의 혁명은 자유주의적 사상에 경도된 지식인 계층이 파리에서 정치집회를 함으로써 시작돼. 루이 필립 황제가 이에 군대를 파견하지만, 웬걸 진압군조차도 시민봉기에 동조하게 되지. 자유란 마약과 같아서, 속박에서 자유를 새로 찾기보다, 이미 가진 자유를 다시 속박하는 것이 훨씬 힘들지. 결국 루이 필립은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었고, 혁명 지도자들은 공화정을 선포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해. 이때 프랑스 혁명세력은 공화주의자(중산층과 부르주아지)와 급진주의자(사회주의적 혁명 요구)로 분열되는데, 이전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이내 루이 나폴레옹은 자신의 폭발적인 인기를 확인하고 황제로 등극하지(1851~2). 결국 자기 삼촌 이름에 먹칠이나 하게되는 무능력자였지만말야. 이게 바로 나폴레옹 3세 되시겠어. 왕정 -> 프랑스 혁명(1789) 공화정 -> 나폴레옹 제정 -> 부르봉 왕조 -> 1848년 혁명 공화정 -> 나폴레옹 3세 제정... 복잡하지?


강대국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지. 이미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었고, 그로 인해 전유럽이 한번 프랑스 아래 굴복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야. 나폴레옹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서 나머지 강대국들이 동맹을 맺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를 잊을리가 없었고, 1800년대 초반 유럽의 핵심 사안은 프랑스가 재기하기 못하게 하는 데에 그 중점을 두고 있었어. 그렇지만 1848년 프랑스 혁명에는 강대국들이 개입하지 않아. 이미 1815년 비엔나 체제로 프랑스는 상당한 제재를 받으며 고립되어 있었고, 강대국들도 프랑스 팽창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모두 되어있는 상태였지.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타 강대국들은 프랑스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어. 바로 자신들 발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바빴던거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행정구역. 16번 숫자의 녹색지역이 모두 헝가리 지역이다. 저게 하나 떨어져나가면 오스트리아는 반토막나는거나 다름없었지.)


오스트리아 혁명 :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경쟁국인 오스트리아는 자국의 안팎으로 번져가는 혁명의 불길을 끄는데 급급했어. 오스트리아 내부에서 자유주의적 혁명이 발생하였음은 물론(결국 성공적으로 진압되고 제정이 복원되었어. 이 부분은 자세히 설명안할게), 오스트리아 내부와 보호령인 이탈리아에서 민족주의적 혁명이 일어나 당장 나라가 수십조각으로 쪼개질 위험에 처했지. 오스트리아는 다민족제국인데, 이 다민족제국이라는 이유가 오스트리아를 약화시키고 나중에 가서는 몰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지.

ⓐ 보헤미아 지방 : 체코의 민족주의자들이 제국정부 측에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걸 허락해달라고 요구해. 특히 이들이 위험했던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슬라브계 민족국가들과 연대하기 시작하지. 그런데 오스트리아 옆에는 거대한 슬라브국가인 러시아가 떡하고 버티고 있었어. 만약 체코가 분리독립하게 된다면 오스트리아 텃밭에 러시아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었지.

ⓑ 헝가리 : 헝가리 지방의 다수민족인 마쟈르Magyar인들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계 다음으로 영향력있는 민족이었어. 오스트리아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가 주창했던 신성동맹의 명분을 내세우며 러시아에게 헝가리 혁명 진압을 요청해. 체코의 경우 같은 슬라브계이기 때문에 죽으나사나 오스트리아 자국군대로 진압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헝가리 지방의 경우 슬라브계와 연대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대리진압을 해준다해도 해가 될것은 없었지. 러시아 또한 이런 오스트리아의 진압요구를 받아들이는데, 오스트리아가 민족혁명으로 망해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 당장 거대한 영토와 많은 소수민족을 가진 자기들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거야.

ⓒ 이탈리아 : 한편 나폴레옹 몰락 이후 졸지에 오스트리아 보호령으로 편입된 이탈리아에서도 반오스트리아 정서는 대단했어. 이탈리아 반도의 유력 도시국가인 시실리, 나폴리, 투스카니, 사르디니아에서 지속적으로 반오스트리아 혁명을 주도했고, 특히 이중 사르디니아의 위세가 대단했어. 사르디니아Sardinia-Piedmont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선포, 롬바르디Lombardia와 베네치아Venezia를 일시적으로 점령했어. 결국 절치부심한 오스트리아 제국군에 의해 이 지역을 다시 잃긴했지만, 사르디니아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어.


(프러시아의 행정구역. 상단에 빨간 부분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이야. 빨간부분 윗부분이 바로 덴마크이지. 덴마크에게는 대륙으로 가는 길목, 프러시아에게는 북해로 가는 길목인 지역이었어.)


슐레스비히Schleswig-홀슈타인Holstein 혁명 :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은 원래 덴마크의 속령이야. 하지만 이 지역들의 다수민족은 독일계여서 덴마크가 직접통치하지는 못하고, 명목상으로만 통치(주권자가 덴마크 왕)하고 있었지. 우유나 짤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덴마크에서도 민족주의의 열망이 대단했는데, 1848년대에 이르러 덴마크 왕은 이 두 지역을 완전히 덴마크령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게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원래 다수민족인 독일계가 졸지에 소수민족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되는거지. 이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같은 독일계인 프러시아에게 지원을 요청해. 이는 프러시아에게 상당한 좋은 기회였는데, 접경국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각자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쯤 가져도 누구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어. 이에 프러시아는 군대를 파견하여 덴마크군을 격파, 덴마크 본토까지 침공하지. 그러나 프러시아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덴마크는 바로 영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였어. 덴마크는 지도상에도 보이듯, 영국-러시아 간 해협의 경유지이지. 영국-러시아는 프러시아의 덴마크 위협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가 없었고, 프러시아는 두 강대국의 압박으로 인해 군사행동을 포기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결국 혁명 이전의 상태로 복귀하고, 프러시아는 괜한 잿밥에 손댔다가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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