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신생 최강자, 독일 제국


(통일 후 독일제국의 판도. 좌로는 프랑스가, 우로는 러시아가 독일을 위협하는 강대세력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이에 대항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를 잇는 삼국동맹을 결성하고 영국까지 회유한다.)


내가 이전에 쓴 글인 독일통일 1편과 2편을 보면 이해가 좀더 쉽게 가겠지만 따...딱히 광고하는건 아니니까! 아무튼 시간없고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서 요약하자면시간없고 귀찮으면 이것도 안읽겠지만 비스마르크는 1862년에 처음으로 프러시아 정계에 등장하게 되었고, 국제적인 정세를 유리하게 끌어(특히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스트리아를 고립시키고서는 보오전쟁에서 승리, 프랑스를 고립시키고서는 보불전쟁에서 승리하고 독일을 통일하게 되었지. 물론 그 발기발기 찢겨져있던 독일국가들을 하나로 통일시켰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지만(참고로 독일인들은 지역의식이 굉장히 강해서, 자신이 독일인이라고 칭하기보단 자신의 지역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고한다), 비스마르크의 진가는 바로 새로운 유럽의 최강자로 떠오른 독일제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외교에서 나타났어


비스마르크가 가장 경계했던 사례는 바로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와 크림전쟁 당시의 러시아였지. 나폴레옹 프랑스와 크림전쟁 당시 러시아의 공통점은 첫째로 당대 유럽 제1의 세력이었다는 것, 둘째는 남잘되는 꼬라지 못보는 유럽놈들의 전통답게 자신들을 견제하는 연맹에 의해 패망했다는 것이지. 유럽 국가들이란게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지칭한다지만 일단 힘이 고만고만할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이 시절 19세기에는 핵무기같은 치트키도 없었으니 걸레쪼가리 유럽대륙에서 제1세력은 수십년 단위로 바뀌기 마련이었어. 1800년대만 보아도, 1800년대 초반기만 해도 프랑스가 거의 유럽대륙을 제패했지만 반프랑스 연맹에 의해 탈탈 털리고는 비엔나 체제가 형성되었고, 1800년대 중반까지는 러시아가 유럽의 제1세력으로 성장하여 골골대는 오스만을 먹어보려했지만 크림전쟁으로 실패하게 되었지. 그리고선 유럽 제1세력의 바통을 이어받은게 바로 통일된 독일이었어. 비스마르크는 일단 독일 통일까지는 이루어냈지만, 어렵게 획득한 유럽 제1세력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되었지.


일단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은 사실 독일통일을 위한 가장 필요하면서도 최소한의 전쟁이었지. 오스트리아는 독일 지역 내에서 프러시아와 경쟁국이었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 쓰러뜨릴 필요가 있었고, 프랑스는 프러시아의 성장으로 가장 피를 많이 보는 세력이었기에 전쟁이 불가피했어. 그렇지만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전쟁하며 실질적으로 얻은 이익은 많지는 않아. 물론 프랑스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얻고 파리까지 포위함락시키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었지. 이것 또한 반독동맹이 등장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에서 나오게 된거야. 만약에 프러시아가 아싸 전쟁에서 이겼다고 처먹을거 다 처먹었다가는 점점 강대해지는 프러시아를 유럽세력들이 견제하기 시작할거고, 그렇게되면 나폴레옹 프랑스의 전철을 또 밟게될 우려가 있었어.


러시아-터키 전쟁과 독일-러시아 관계의 악화


(불가리아 왕국의 위치. 러시아가 저 불가리아를 굳이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하려 했던 이유는 바로 지중해-흑해의 관문인 터키해협에 대한 영향권을 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애매한 중재로 인해 불가리아는 세조각으로 쪼개졌고, 러시아의 터키해협에 대한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게 증대되지 않았다. 이후로 독일-러시아 관계는 악화된다.)


사실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러시아가 중립을 지켜주었단 것이었지. 물론 크림전쟁 이후 러시아도 여기저기 개입할 여력이 없었던데다가, 발칸반도에서 경쟁하던 오스트리아, 크림전쟁에서 적국이었던 프랑스를 프러시아가 알아서 털어준다니 못해도 러시아에겐 본전이었어. 따라서 통일 독일 제국이 등장할때까지 러시아는 비스마르크를 별 의심없이 신뢰했고, 독일과 러시아는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지.


오스만령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반란(1875) : 문제는 다소 엉뚱한 발칸반도 쪽에서 터져나왔어. 비록 크림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오스만진출이 좌절되기는 했지만, 크림전쟁 이전에는 러시아가 대놓고 오스만을 괴롭혔다면, 크림전쟁 이후에는 러시아가 뒤에서 깐족깐족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뿐이지, 러시아가 오스만을 완전히 포기한건 아니었지. 일단 다민족 제국을 붕괴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을 조장하는 건데, 러시아는 당시 오스만의 영토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같은 슬라브인들의 분리독립운동을 뒤에서 몰래 조장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분리독립운동은 오스만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고, 뒤이어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불가리아까지 분리독립을 부르짖었지. 여기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오스만에게 전쟁까지 선포하며 개겼지만 결과는 똥망... 오스만이 아무리 병신이 다됐지만 고작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같은 일부 지역의 도전장조차도 받지 못할 세력은 아니었어.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오스만군에 의해 패배하게되었지. 그런데 이게 같은 슬라브계인 러시아가 개입할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고,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발칸반도를 완전히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야망을 갖게 되었어.


부다페스트 조약(1877) : 그러나 러시아가 함부로 발칸반도를 먹을수가 없었던 것은 바로 오스트리아 때문이었어. 발칸반도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경합지역이었는데, 만약 러시아가 발칸반도를 먹게 된다면 오스트리아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가 없었지. 따라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매수하였는데, 그 내용은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통제하고, 흑해 지방의 불가리아는 러시아가 통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어. 이때 러시아가 통제할 불가리아는 절대 큰 국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오스트리아가 대못을 박았는데, 발칸반도에 큰 독립국가가(그것도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계인) 생기게 된다면 오스트리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었지. 즉, 부다페스트 조약이란 러시아가 발칸반도를 먹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매수한 것이나 다름없어.


러시아-터키 전쟁(1877) :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매수함으로써 외교적인 준비는 마쳤다고 생각하고 오스만 측에 선전포고를 하게 돼. 왜 다른 국가와는 상의하지 않았느냐? 한다면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가 오스만 문제에 개입하는 걸 반대할 것이었기 때문이야. 애초에 말이 안통하는 애들하고 상의같은 걸 할 필요는 없었지. 일단 러시아의 선전포고로 러시아-터키 전쟁은 시작되었는데, 러시아는 승승장구하며 오스만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넘보게 되었고, 영국은 뒤로 나자빠지게 놀라 콘스탄티노플로 즉시 함대를 파견했지. 그러나 기민한 러시아는 영국이 개입하기 전에 오스만과 평화조약을 체결(1878)해버리고 전쟁을 서둘러 끝내버려. 애초에 이 전쟁은 오스만을 붕괴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발칸반도에 슬라브계 위성국가들을 획득하기 위함이었기에 소기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지. 그러나 러시아는 애초에 오스트리아를 매수할 때 약속한 것과는 달리 발칸반도에 크고 아름다운 불가리아를 건설하였고, 이에 영국과 오스트리아는 함께 반발하게 되었어.


베를린 회의(1878) : 이 때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우리 비스마르크찡이었지. 비스마르크는 "내가 직접 나서겠다"며 발칸문제에 있어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어. 유럽 사회가 발칸문제로 인해 또다시 영국+오스트리아 vs 러시아 구도로 갈라진다면 독일도 어느 한편을 들지않으면 안됐기 때문에 최대한 이 문제를 빨리 종결시켜야 했지. 비스마르크는 베를린 회의에서 영국+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중재하여 결국 부다페스트 조약에서 약속된 바와 같이 크고 아름다운 불가리아를 세조각으로 찢어서, 하나는 러시아가, 하나는 오스만이, 하나는 유럽전체가 관할하기로 했지. 비스마르크가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나섰고, 발칸문제는 여기서 나름 정리가 되었지만 러시아는 "독일새끼들 지들 통일할 때 우리가 중립지켜줬더니 이제와서 통수를 쳐?"하며 독일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어.

cf) 참고로 여기서 영국은 지중해의 해군 요충지인 사이프러스 섬을, 프랑스는 아프리카 튀니지를 획득했지. 일단 러시아가 비록 크고 아름답진 않지만 쪼매난 불가리아를 가져가게되자 지중해 지역에서 유지되던 영국-러시아간 세력균형이 붕괴될 위험이 있었고, 이에 따라 영국도 일보 진출한거야. 프랑스가 튀니지를 확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지.


비스마르크 동맹외교 1 :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라인의 완성(대 프랑스, 대 러시아)

독오동맹(1879) : 아무튼 가장 중요한건 그동안 비스마르크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가 발칸 문제로 인해 완전히 뒤돌아섰다는 거였지. 이로 인해 비스마르크는 좌로는 프랑스, 우로는 러시아라는 두개의 강력한 세력과 대적하게 되었어. 이 상황만큼은 비스마르크가 피하고 싶어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었지. 이후에는 오스트리아마저도 중부유럽에서의 패권을 두고 독일과 경쟁할 수도 있었고, 비스마르크는 당장 이갈고 있는 프랑스와 러시아는 차치하고서라도 오스트리아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해. 따라서 1879년에 독오동맹이 결성되었지. 독오동맹의 본질은 러시아와 경합중인 오스트리아를 독일의 편으로 끌어들인거야.


삼국동맹(1882) :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프랑스가 자신들의 영토만 홀랑 챙기고 제대로 도와주지 않은 데에 대해서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었어. 게다가 튀니지는 이탈리아가 군침은 흘리되 능력이 없어서 못먹고 있는 지역이었는데, 발칸문제로 프랑스가 손도 까딱안하고 튀니지를 먹은 데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어. 또한 이탈리아 반도 내에는 교황령이 있었는데, 프랑스가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이 교황령에 계속해서 간섭하는 터라 이탈리아-프랑스 감정은 영 좋지가 못했지. 이에 따라 이탈리아도 독오동맹에 편입,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삼국동맹이 완성되었지. 이탈리아가 삼국동맹에 들어오게된 본질은 프랑스와 경합중인 이탈리아를 독일의 편으로 끌어들인거야.


비스마르크 동맹외교 2 : 영국까지 회유(대 러시아)

1차 지중해 협정(1887) : 비스마르크의 숙원은 바로 영국을 삼국동맹에 편입하는 것이었어. 결과적으로 프랑스+러시아 vs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라는 이전투구에 휘말리기 싫었던 영국이 계속해서 거절하긴 했지만, 러시아를 견제해야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영국도 절대 반대하지 않았지. 따라서 비스마르크는 1차 지중해 협정을 통해 지중해와 오스만 문제에 있어서 삼국동맹과 영국이 러시아에 대해 공동대응할 것을 약속해.


비스마르크 동맹외교 3 : 러시아에 대한 유화책

위의 동맹정책들을 통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러시아를 공동대적할 모멘텀이 생기게 되었어. 하지만 지금까지는 프랑스-러시아가 그닥 좋은 관계가 아니지만(크림전쟁 때 프랑스-러시아는 적국), 삼국동맹에 영국까지 끼어든 이상 러시아가 자칫 마음만 바꾸면 프랑스와 언제든 동맹체결이 가능한 상황이었지. 만약에 프랑스-러시아 동맹이 결성될 경우, 독일은 좌우로 적대국을 마주하고 있는거나 다름없었어. 프랑스-러시아 동맹이 체결되면, 독일이 향후 이 둘 중 한국가와만 전쟁을 하려해도 자동으로 동맹국가까지 참전할 것이고, 그렇게되면 전선이 좌우로 나뉘게될 판이었지. 따라서 비스마르크는 러시아를 회유하는 정책에 힘을 쏟게 돼.


삼제협상 비밀협정(1881) :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간에 체결된 협정인데, 만약 이 세국가 중 하나가 터키를 제외한 나라와 전쟁에 돌입할 경우 나머지 국가는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조항이 있었지. 이것은 바로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치루는 상황을 의미해. 당시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의 배상금을 초고속으로 갚고 다시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발칸문제로 인해 삐진 러시아가 프랑스와 연계한다면 끝장날 판이었어. 따라서 이 조항은 비스마르크의 러시아 회유 제1목적이라고 볼수있지. 대신 러시아는 전시 터키해협의 봉쇄와 불가리아의 판도확장을 허락받으면서 나름 이익을 봤어.


재보장조약(1887) : 이 조약의 대체적인 내용은 삼제협상 비밀협정과 비슷하지만, 독일-러시아가 비록 감정은 악화되었어도 계속해서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제이자, 비스마르크 동맹외교의 핵심적인 파트이지. 독일-프랑스 전쟁이 터지면 러시아가 중립을 지켜주는 대신, 발칸반도 불가리아에서 러시아가 어떤 깽판을 쳐도 독일은 모르는 척 해주겠다는 내용이 그 핵심이야. 사실 이 재보장조약은 위에서 썼던 독오동맹(혹은 삼국동맹)과 상호 모순인데, 삼국동맹에서는 오스트리아가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와 경합할 때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할 것을 약속한 반면, 재보장조약에서는 러시아가 발칸반도에서 세력권을 팽창하는 것을 용인해준다는 내용이었어. 후에 비스마르크가 정계에서 은퇴한 후, 빌헬름 2세와 비스마르크의 후임자들이 삼국동맹과 재보장조약은 상호 모순되는 동맹체제라며 재보장조약을 폐기해버렸는데, 사실 독일 근대사상 가장 멍청한 짓거리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지. 이후로 고립된 러시아는 완전히 독일과 돌아서서 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해버렸고, 이것이야말로 비스마르크가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었거든.


말안듣는 동맹국 오스트리아 때문에 고생하는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의 동맹체제는 서로 모순되는 점이 엄청 많았고 위태위태한 줄타기 동맹이나 다름없었지만, 이 시기 유럽 강대국들 간 세력균형을 독일을 중심으로 이루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어.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마련해놓은 외교적 장치를 망칠뻔 한게 바로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였지. 삼국동맹으로 독일의 지원을 등에 업긴 했는데, 비스마르크가 러시아의 발칸반도 세력권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니까 오스트리아도 나름 화가 난게지. 따라서 오스트리아는 계속해서 발칸반도로 팽창하며 비스마르크의 위태위태한 동맹체제를 위기에 몰아넣지.


친러시아 발칸국가들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회유 : 발칸반도의 대표적인 친러시아 세력은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었어. 일단 모두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계였고, 이들의 독립(혹은 준독립화)에 있어서 러시아가 상당한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이지. 이런 애들을 오스트리아는 철도건설 등의 엄청난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살살 꼬드기는 데 성공해. 먼저 루마니아는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의 동맹군으로 함께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베사라비아라는 노른자위 땅을 러시아에게 넘기고 대신 쓸모없는 황무지인 도브루자를 받아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어. 또 불가리아의 경우도, 일단 러시아의 지원으로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하긴 했지만 사사건건 러시가아가 배놔라 감놔라 내정간섭을 하는 바람에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지. 오스트리아는 이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하며 자신들의 편으로 이끌어들여. 비스마르크는 "아 개새끼들아 내가 어떻게 이뤄놓은 동맹체제인데, 아 고만 좀 하라고. 하아 ㅅㅂ.. 하아..." 하며 오스트리아를 막아보지만, 발칸반도를 향한 오스트리아의 야망은 끝이 없었지.


정리


(알아보기 쉽게 그림으로 정리해봤어. 지중해협정에는 사실 독일은 조인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독일의 러시아 견제 목적으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대신 영국과 맺은 협정이기 때문에 독일까지 포함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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