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주 일요일 오전마다 시험대비 목적으로 스터디그룹에 나가곤한다. 스터디그룹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공통된 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 한명이 잘한다고해서 그룹 전체가 좋게 되는것도, 누구 한명이 열심히 하지않는다해서 그룹 전체가 나쁘게 되는 일도 없기에, 만나면 필시 본연의 목적보다는 그저 수다떨기에만 여념이 없게된다. 특히나 다들 괜스레 몸이 나른해지고 마음마저 겉잡을 수없이 싱숭생숭해 하는 요즘같은 봄에는, 20~30대 시꺼먼 남자들로 구성된 우리 스터디에서도 곧잘 핑크빛 연애 이야기가 꽃피우곤 한다. 그 중 모 상위권 공대를 졸업하고 직장도 소위 "신의 직장"이라는 곳에 다니는, 게다가 인상도 좋고 인물도 훤칠한, 쉽게 말하자면 엄친아에 가장 가까운 30대 형이 있는데, 제일 연애 고민 없을것만 같은 이 사람의 연애 고민이 우리 화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거진 4개월간 스터디를 하면서 본 바로, 이 형은 못해도 4개월동안 5번 이상의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 상대로는 의대생도 있었고, 모 방송국에서 일하는 여자도 있었으며, 집안이 준재벌급인 여자도 있었다고한다. (도대체 이러한 외적인 것들이 그 여자들에 대해서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찌됐든 그러한 여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껏 그 형 입에서 어느 하나라도 잘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며, 거의가 얘는 이래서 마음에 안들고, 쟤는 저래서 마음에 안든다 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 재는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우려했는지, 결혼할 나이가 되니 사람 만나는것이 조심스러워진다, 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 말에 영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나랑 완전히 맞는 인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흔히들 인류 최초의 여성은 야훼가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내 창조한 이브(하와)라고 알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약 창세기편의 이야기이고, 기독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 전승/메소포타미아 지방 구전에 의하면 이브는 엄밀하게는 인류의 두번째 여성이다. 야훼는 원래 남성인 아담을 빚어낼 때에 동시에 여성도 창조해내었는데, 바로 릴리트Lilith라는 여성이다. 릴리트는 아담의 갈비뼈에 살을 붙인것이 아닌, 아담과 마찬가지로 야훼의 형상을 본따서 창조된 여성이다. 릴리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최초의 여성인 것이다. 이러한 릴리트가 우리에게 생소하게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릴리트는 아담과 성관계의 주도권을 두고 잦은 다툼을 벌였고, 이에 아담과 이혼하여 인류 최초의 이혼녀라는 타이틀을 거머쥠과 동시에 영속되지 못한 인연이라는 이유로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릴리트를 최초의 여성이자 아담의 첫번째 아내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 통념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된다. 첫째로는 여성은 결코 남성으로부터 파생된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격을 갖고 탄생한 존재라는 것이고, 둘째로는 삼라만상이 평화로울 것 같고 천국이나 다름없을 것만 같은 그 에덴동산에서조차도 이혼할 지경에 이를만한 부부싸움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통상 자신의 인연을 찾음에 있어서 릴리트보다는 이브를 찾고싶어한다. 이말인즉슨, 사람들은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상대와 타협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귀찮은 사랑보다는, 처음부터 잃어버린 자신의 갈비뼈처럼 잘맞고 익숙한 사랑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컷이 암컷을 찾을때도 그렇고, 암컷이 수컷을 찾을때도 그러하다. 릴리트가 점차 인류의 기억에서 배척되어버린 것 또한 바로 인류가 릴리트보다는 이브를 사랑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그러나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이 십년후에는 뒤통수도 꼴보기싫은 원수가 되어버리거나, 처음 만났을 때는 그닥 나의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생각외로 나와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분명 드문 일이 아니다. 아니, 드문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가히 대부분의 인연이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령 한 사람의 성향을 선분이라고 가정하고, 인연을 맺는 행위를 두 사람의 성향을 상징하는 두 선분을 겹쳐놓는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때, 완전히 동일한 성향을 갖고 완전히 동일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에, 각자의 선분은 어떻게든 각자마다 다른 특유의 모양과 기울기를 가진다. 인생이 짧다고 탄식하는 예술가들이 아무리 많다지만, 반려자와 함께할 수십년간의 결혼생활이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선분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길다. 어느 구간을 놓고보면, 어떤 선분들은 이것이 하나의 선분인지 두개의 선분인지 알수없을 정도로 꼭 맞게 겹쳐있다. 남녀는 통상 이때 서로가 잘맞는 사람이라며 호감을 느끼고, 친구관계도 통상 이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선분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기울기를 갖기 때문에, 어느 구간에서 겹치는 듯 보일수는 있어도 시간이 갈수록 그 간극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운동장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두가닥의 실로 각각 잇는다고 생각해보자. 시작점에서 두 실의 각도가 단 1도의 1할이라도 틀어져있다면, 종착점에 이르러서 두 실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수있다. 혹은 시작점에서 완전히 동떨어져있던 두 가닥의 실일지라도, 끝에 가서는 거의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두사람이 인연을 맺는 것은 이렇게 운동장 끝에서 끝까지 두가닥의 실을 연결해보는 것과 같다. 그 어느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겹칠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에게 꼭 맞는 이브를 찾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필시 릴리트와 사랑할 수밖에 없다. 타협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실이 안겹친다면 풀을 바르든 매듭을 지어 묶든 베베 꼬든 이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따라서 인연을 맺고 사랑을 하는 것에는 항상 상호과정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그런 과정없이 그저 사랑의 단물만 빨아먹을 수 있는 백마탄 왕자님이나 이브 따위는 없다.
다시 릴리트의 이야기로 돌아와, 릴리트 설화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개체가 아닌 완전한 동격이라는 지적을 떠올려보자. 나와 꼭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비록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성을 나와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물 내지 자기라는 주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객체로 보는 관점(혹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전제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맞추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에 대한 자의식 과잉의 산물이다. 그들은 사랑을 하며 당연하게 행해져야하는 상대와의 타협과 배려, 이해 등의 상호작용이 마치 자신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어떤 치명적인 것인양 여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동등하게 존엄한 인격을 가지고있고, 인격이라는 것은 그 소유자만이 가진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 고작 엄지손가락에 찍힌 지문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다양성을 가진다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어떠한 한 상대가 자신에게 꼭 맞는 인격을 가지길 바라는 것이나 자신의 인격에 꼭 맞춰주길 바라는 것이 (그것도 수십년동안이나) 얼마나 폭력적인 사고방식인지 알수있다. 이브는 이러한 인간의 폭력적 사유가 만들어낸 순종적이고 피지배적인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
결혼적령기가 30살이라 한다면, 못해도 30년가량을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명의 인간이 마치 퍼즐조각의 아귀처럼 꼭 맞길 바라는 것이 어찌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브를 찾겠다는 헛된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 인간은 얼마나 많은 릴리트들을 놓치고 있는가? 사랑과 인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맺어지는 그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다. 영원히 자기일 수 없는 타자와 마음의 동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인간과의 사랑은 아담과 릴리트의 사랑이다. 아담과 이브의 사랑은 순전히 인간의 과욕의 산물에 불과하며,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지배 대 피지배 내지 주체와 객체의 관계일 뿐이다. 그런것은 사랑이라 불리울 자격조차 없다.
이브는 없다
2014. 4. 13. 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