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주제의식 없이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해보고싶다.

나는 대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속칭 아싸(아웃사이더)다. 물론 모든 어린애들 중에서는 가장 어른이요 모든 어른들 중에서는 가장 어린애인, 또한 어떠한 생산적인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의 비판을 면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인 대학 4학년에 접어든 내 또래들 중 아직까지도 아싸가 아닌 사람은 드물다. 군대 다녀온후 복학하여 졸업을 앞둔 "대학 끝물"들은 자기자신을 퇴물이라 지칭하고, 새내기들의 자리에 자신들이 끼는것은 주책스러운 일로 치부하면서 같잖은 어른 흉내를 낸다. 그러나 기실 그들은 이제 "먹고살기 위해" 점차 원자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만 내 경우만큼 빠르게 아싸 생활을 한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내가 인정하는 아싸생활은 제대 후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1학년 때부터 어떠한 과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생활을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대학 4년을 온전히 아싸로 지내온 셈이다. 그렇다고해서 친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우리 대학에 많이 진학한데다가, 학과 안에서도 어찌저찌 또 인연이 닿아 만나게된 담배친구, 정치이야기 친구가 있고, 1학년 때 하숙방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처박혀있었던 동아리 때 선배들이나마 있으니, 그나마 그 사실이 내가 완전히 사회와 동떨어진 외톨이까지는 아니라고 구차하게 변호한다. 허나 이러한 내 자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싸임이 틀림없는 사실인 것은, 우리 학과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대며 이사람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열의 여섯 일곱정도가 이런 사람이 있는지조차도 몰랐다고 대답할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아싸가 되었는가? 사실 모든 아싸가 그렇겠지만, 처음부터 어떤 그룹에서 아웃사이더가 되고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감정적인 이유건, 실체적인 이유건(가령 술먹고 대단한 실수를 했다던지) 어떤 사람이 아싸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의 인간성과는 또다른 문제다. 나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까지 대인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친구가 없거나,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고민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아직까지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잘만 연락하고 있고,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에는 어지간해서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그러한 관계들 속에서 어떤 불편함없이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면 내가 스무살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그런 모든 대인관계 능력이 내가 모르는 연유로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일까? 따지자면 그것도 아닌 것이, 남들은 제대하고 자기 부대방향으로 오줌도 누지않는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제대한지 3년이 꽉 채워져가는 지금까지도 동기 선임 후임 중대장 행보관, 심지어 정보과장이었던 사람까지 두루두루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며 지낸다. 내 자기애적인 착각이 아니라면, 이들 또한 나에 대해 단체생활을 못할만한 어떠한 인격적인 흠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단체생활만은 마치 두자석의 같은 극성을 억지로 이어붙이려하는 것처럼 나와 도저히 인연이 없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와서 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 객관성은 조금 떨어질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도 그다지 아싸생활에 환멸을 느낀적은 많지 않으며, 과생활에 편입되어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왜 내가 여타 단체생활에 대해서는 애착을 느끼고 편입되려고 노력했지만 대학생활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는가? 지금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이유는 아마도 대학에서의 인간관계의 특성일것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고3때까지 거의 천편일률적인 삶을 산다. 군대에서의 삶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같은 꿈(원하는 대학으로의 입시와 꿈에 그리던 무사전역)을 기원하며, 진부한 일상을 공유하는 동료들끼리 묘한 전우애가 끓어오른다. 서로 비슷한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비슷한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서로는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으며, 내가 느끼는 것을 너도 느끼고, 네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는 진정한 인류대통합(?)의 장이 될수있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인간관계가 한결 수월하다. 남이 나에게 무슨말을 하면 좋을지 혹은 기분나쁠지 자기가 잘 알고있으므로, 자기가 듣고싶은 말을 해주고 듣기싫은 말을 안하면 그만이다. 뭉치기도 쉬우며, 어쩌다 한번 틀어진다해도 다시 이어지는 것도 어렵지않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삶은 조금 다르다. 일단 대학에 오는순간부터 전공이 나뉘므로 개개인의 목표가 거시적으로 다르게되고, 같은 전공 안에서도 수많은 직업적인 방향이 나뉘기 때문에 미시적으로도 분절된다. 향후 나와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인연은 거의 없으며, 더 나아가 매일매일 듣는 수업마저도 각자 다르다. 그저 강의가 없는 공강시간마다 과방에 오고, 일주일에 한번정도 회식하는 것이 공유하는 삶의 양식의 전부다. 그것마저도 남자의 경우 입대시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전역하고 학교로 돌아오면 동기가 거의 남아있질 않게된다. 그야말로 대학에서의 과생활은 광란의(?) 1학년을 보내기위한 목적이고, 대개의 경우 그 이상동안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렇게 목표도, 삶의 양식도 이제는 각기 달라져버린 이들을 축제니 고연전이니 하며 한 데로 묶어보려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어서, 일단 그해 마지막 축제인 고연전이 끝나고나면 과방은 그야말로 휑해진다. 무엇보다도, 더이상 서로가 서로의 삶과 생각을 공유하지 않으므로 쉽게 서로에 대해 알거나 공감할수가 없게되고, 더욱이 이제는 사회나갈 준비하며 자기 건사하느라고 바쁜 와중에 그런 수고를 들일 여유도, 필요도 없게된다. 이것이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란 대개 얕을 수밖에 없다는 통념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근거다.

인연의 만남이 항상 언젠가의 헤어짐으로 끝맺을지라도 그 끝을 생각하지않고 인연에 최선을 다해보려하는 나도, 솔직히 이렇게까지 단기적이고 향락적인 인간관계에 내 에너지를 쓰기는 싫었다. 물론 개중에서도 소중한 인연이 생길수야 있지만, 거기 이외에도 지천에 금덩이같은 인연들은 널렸는데 구태여 사금파리같은 인연 찾자고 모래밭에 뛰어들 이유도 딱히 없는 것이다. 게다가 혼자 조용히 사는 삶이 그다지 나쁜 것만도 아니다. 집안에서 꼼짝도 하기싫은 날에 어쩔 수없이 술자리에 끌려나갈 필요도 없고, 내 스케줄은 더할나위없이 널널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편해지며, 여러가지 혼자만의 생각을 할만한 여유도 많다. 이런것을 모조리 버리고 그런 일회적인 목적의 단체생활을 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

사회에 나아가면 사회에서의 단체생활이 과연 어떠한 행태를 띌지는 나도 모른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상사 아래 그놈의 돈을 목적으로 일한다는 점에선 고등학교 시절이나 군 시절과 같겠지만, 모두의 삶의 행태가 지금보다도 더욱 다양해진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대학의 단체생활처럼 피상적이고 단기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내가 단체생활을 할지말지에 대하여 선택권이 있었지만, 사회나가면 그런것 따위는 얄짤없이 좋으나싫으나 단체에 편입되어야한다. 그러니 어쩌면 인생에서 정말 혼자 조용히 있을수 있는 시간을 대학 때 즐겨놓지않으면, 저먼 미래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백발성성할때나 다시 즐길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혼자 조용히"도 분명 나를 성장시키며, 한번쯤은 복작복작한 단체로부터 떠나 누릴만한 괜찮은 특권이다.

자 그러니 대한민국의 모든 아싸들이여, 단결하라. 그대 학식에서 밥 혼자먹음을 슬퍼하지말며, 그대 금요일 밤에 울리지않는 핸드폰을 원망하지말라. 그대들은 더할나위없이 그대들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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