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들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눔 문화가 확산된 듯하다. 말그대로 어떤 새 물건 혹은 중고 물건을 아무런 대가를 받지않고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주는 문화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말이 많은 문화기도 한데, 나눔의 당사자들은 그것이 윈윈게임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나눔이 윈윈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내가 보고들은 바에 의해 정리한 나눔거래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이때 인계자는 나눔을 주는 쪽, 인수자는 나눔을 받는 쪽을 의미한다.

i-1) 직관적으로 말하면, 나눔이 윈윈게임이기 위해서는 인계자에게 있어서 해당 재화의 효용은 적지만, 인수자에게 있어서의 효용은 커야한다. 가령 냉장고와 같이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필요기반 재화의 경우, 없으면 안되지만 그렇다고하여 2개 이상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으므로 인계자에게 있어서의 효용은 작다. 만약 인계자가 새로운 냉장고를 구입하게되어 헌 냉장고를 나눔한다면, 그 헌 냉장고가 얼마나 오래된 모델이든 냉장기능만 정상작동하면 되므로, 냉장고를 갖고 있지 않은 인수자 입장에서의 효용은 크게되어 이 나눔은 윈윈이 된다. 혹은 공연티켓의 경우에는 비필요적 재화이지만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만약 인계자가 해당 공연에 참석할 수 없고, 그 티켓의 처분이익이 0에 가까울 경우에는 인계자에게 있어서 공연티켓의 효용이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공연에 참석할 수 있는 인수자에게 나눔한다면 인계자 입장에서의 효용은 커지므로 윈윈의 나눔이 된다.

i-2) 그러나 막상 나눔시장의 대부분은 패션잡화가 차지한다. 냉장고와 같은 필요기반 재화는 수명이 길기 때문에 나눔의 대상재화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고, 보통 소비회전율이 높은 패션잡화가 나눔의 대상으로 적당하기 때문이다. 옷이 없어서 못입는 사람에게 나눔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나눔의 대상이 되는 옷은 통상 인계자에게의 효용도 낮은 동시에 인수자에게의 효용도 낮다. 아무리 패션에 대한 심미안이 상대적인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낡거나 찢어지거나 혹은 유행에 크게 뒤쳐지거나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스타일의 패션잡화의 경우, 인수자 인계자 할것없이 누구에게나 효용이 낮으며, 이것은 인수자들로 하여금 나눔받은 옷은 받고나서도 거의 입지 않게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ii) 만약 택배비용을 무시한다면, 나눔이라는 문화의 정의상 인수자는 재화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과 같이, 추가적인 재화를 인수하는 데에 소요되는 한계비용이 0이라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그 재화의 필요여부에 관계없이 재화를 인수하는 것이 이득이다. 쉽게말해, "받아두면 언젠가 쓰겠지"하는 마음이다. 이를테면 누가봐도 매력적이라 할 수 없는 민망한 원피스나 청바지 같은 것에도 나눔의 수요가 존재하는 것이 이 이유에서다. 마찬가지로 인수자가 나눔받은 물품을 받고서도 처박아두게 되는 원인이다.

iii) 그러나 착불 택배비용이 존재하는 경우, 인수자는 재화에 대해 택배비용만큼의 가치를 기대한다. 이것은 일종의 착각에 의거한다. 인수자가 지불하는 택배비용은 인계자에게 재화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아닌, 택배업체에 "재화의 운송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를 누가 받든간에 인수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이고, 재화는 가시적이되 운송서비스는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불하는 택배비용을 인계자에게 지불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가령 착불 택배비용 4500원을 지불하고 청바지를 나눔받았다면, 원래 이 4500원은 택배서비스에 대한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청바지 자체에 4500원어치의 가치를 기대하는 것이다. 만약 청바지의 체감가치가 4500원을 넘어간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4500원 이하일 경우에 인수자가 느끼게 되는 일종의 "손해본 기분"의 화살은 엉뚱하게도 인계자를 향하게 된다. 고로 나눔을 해주고도 욕을 먹게되는 사태가 왕왕 발생한다.

iv) 가장 필요한 이에게 재화가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여느 경제체제의 기본적인 목적이라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그러한 "필요의 척도" 역할을 다름아닌 "돈"이 수행한다(http://aceferr.tistory.com/75 참조). 그러나 ii)의 논의와 같이 인수자의 한계비용이 0이라면, 즉 필요척도로서의 금전거래가 없다면, 인수자들의 필요측정은 지극히 인계자의 주관이나 요행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인계자 수는 고정되어있는 반면 인수자는 외부에서 더 많이 유입되고, 그럴수록 인수자는 더욱더 랜덤하게 결정된다. 그야말로 인계자들이 주장하는 "필요한 이들에게로의 나눔"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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