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은 과학기술과 사회사상의 발전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전의 것을 고집하는 우매함을 "정신력"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또한 일제의 잔재임을 알고있는 사람은 드물다. 두 거점도시에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을 맞을 때까지 제국주의 일본군은 점차 일본 열도로 밀고들어오는 미군에 대한 수적/질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소위 "육탄정신"을 군인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간인에게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육탄정신이라는 것은 결국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미군에게 총검이나 죽창을 들고 덤비라는, 육상판 카미카제 정신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 정신력이라는 것은, 1차대전에 이르기까지의 전열 총사대나 참호전 병력에게는 유의미한 것이었지만, 군대의 화력이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2차대전의 전장에서는 유효하지 않은 것이었다. 제국주의 대본영의 희망찬 기대와는 달리, 연신 반자이를 외쳐대며 맨몸과 다를 바없는 몸뚱이로 미군에 달려든 일본군 병사들은 그저 움직이는 표적지에 불과하였고, 카미카제 조종사들 또한 "피해를 입혔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추태만 보인채 허망히 수장되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참패는 동양권의 사고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교훈을 남겼는데, 그것은, 동양의 서양에 대한 사상적 선민의식(일본에서, 또 현재 우리가 "정신력"이라고 주장하는)이 그들의 시각에서는 "근본도 없는 파란 눈 오랑캐"의 물질문명에 의해 처참하게 박살나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이 생사의 기로에서 갖게되는 오기에 가까운 정신력은 거대한 서양 물질문명 총체에 흠집을 입히기는커녕 단 한 발의 총탄조차도 극복해내지 못하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그러한 무형적이고 허망한 것으로부터 유형적인 어떤 가치관이 창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하기 짝이 없는 생각인지는 팻맨과 리틀보이가 기폭되는 그 순간에 철저하고 잔인하게 증명되었다. 전후 동북아의 여러 국가들이 사상적인 발전보다는, 유독 경제지표와 같은 물질적 수치에 집착하는 것 또한 이러한 제국주의 일본의 패착(즉 물질문명에 대한 정신력의 굴복)과 연관이 없다고 할수없다.

그러니 전후 반세기가 훌쩍 지나간 지금 이 시점에, 그것도 제국주의 일본을 민족의 원흉으로 여기는 민족이 각종 문제에 봉착할 때면 늘상 "정신력"을 운운하는 것이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계산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놔두고 여전히 복잡한 수식을 기계적으로 암산케 요구하는 교육현장, 병사 개인의 최소안전을 보장하는 방탄복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용맹히 싸울것을 요구하는 군대, 나아가 공부라는 것을 흥미의 문제가 아닌 정신력의 문제로 이끌어내는 부모집단, 지지리 가진 것 없어 먹고살기 급급한 젊은이들에게 패기와 도전정신 따위를 요구하는 늙다리집단들이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이들의 시각에서 인간의 성패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는 "정신력"이며, 그들이 성토하고자하는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려고하지도 않으면서 성공이란 정신력에 비례하는 것이라는, 원자폭탄 두발로 사장된 케케묵은 가치관을 다시금 현대사회에서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토록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 오기에 가득찬 인간의 모습이 그사람의 본모습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주어진 환경이 충분히 호의적인데도 구태여 독고다이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비효율을 정신력이라고 여기는 극단주의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것은 햄스터가 먹거리가 고갈된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햄스터를 카니발리즘의 상징으로 매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기초적인 욕구를 모두 해결한 다음에야 필요충분한 이성을 발현할 수 있으며, 외려 그러한 이성의 발현이야말로 생존본능으로 발버둥치는 모습보다 그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다. 또한 주어진 자원이 충분한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는 것은, 당장 내일아침에 세계가 쑥대밭이 될 것이 아니라면, 공급과잉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무의미한 소리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은,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판단되는 것이지, 그 사람으로부터 모든 것을 박탈하였을때에 발현되는 생존본능에 가까운 정신력 따위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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