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미국과 소련이 2차대전 이후 어떻게 세력권을 확장해가고 공고히 하였는지, 그리고 미소간의 잠시나마의 해빙 분위기를 살펴보았어.

이번 시간에는 잠시 쉬어가는 겸,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이 어떻게 해방이 되었는지 알아보고, 미소냉전사의 중요사건인 수에즈 위기에 대해 알아보자.

1950년대 초에 이르러 냉전에 기반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세력판도가 형성된 이후 각자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건하고 있었어.

그러나 두 진영 사이에서 아시아, 중근동지방, 아프리카, 중국에서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유산을 거부하며, 서방측과 소련측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제3세계가 형성되고 있었지.

제3세계는 서유럽으로부터 대개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들이었는데, 이들은 서유럽으로부터 정치적 독립 뿐 아니라 경제적 의존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지.

이러한 탈식민지화는 사실 제3세계의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에게는 위협적이었어. 이 때문에 소련은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미국은 이를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지.

그렇다면 소련이 왜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느냐?

소련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반대하며 민족해방을 슬로건으로 삼았어.

그러나 스탈린 시절 "우리일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세계 공산당 혁명이냐?"며 1국사회주의가 득세하는 바람에 잠시 해외 민족해방운동 및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지원이 멈추었다가, 지난 시간에 설명한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으로 다시 해외지원을 시작하게 되지.

반면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을 점유하고 있었지만 윌슨의 민주주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공식적으로는 식민주의에 반대했어.

미국은 식민지를 확보하여 "블록권 경제"를 만드는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야말로 2차대전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명분상으론 탈식민지화에 찬성하면서도, 급진적 민족주의나 공산주의의 득세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태롭게 하였기 때문에 방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

 

탈식민지화는 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먼저 시작되었어. 한국이 1945년에 독립하고, 차례로 스페인 -> 미국 -> 일본 -> 미국의 식민통치를 겪었던 필리핀은 1946년에 미국으로부터 독립했지.

뒤이어 인도와 파키스탄이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 버마도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어. 인도네시아는 1949년에 네덜란드로부터, 1950년대에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지.

중동지역에서는 시리아가 1946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가 1922년 명목상 독립을 이룬뒤 1952년에 영국 보호령 신세에서 벗어났고, 리비아가 1951년에 이탈리아로부터, 수단이 1956년 영국으로부터, 모로코와 튀니지가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어. 서아프리카에서는 가나가 1957년에 독립하였고,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1960년대에 이르러 독립을 이루지. 헉헉 힘들다...

 

물론 모든 나라의 독립이 모두 중요한 사건이지만, 특히 살펴볼 곳은 바로 알제리야.

알제리는 183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지.

그러나 세계에 탈식민지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알제리민전)이 조직돼.

알제리민전은 주로 폭탄테러를 통해 프랑스군에 저항했는데, 이를 진압하려는 프랑스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어.

한때 알제리에 주둔하는 프랑스군을 40만명 규모로까지 증원도 해보았지만, 무리한 진압작전은 100만명에 이르는 알제리 주민의 사망을 야기했고 프랑스 내에서도 반전여론이 확산되었지.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은 알제리 주민에게도 평등한 선거권을 부여하겠노라 유화책을 펴보기도 했지만, 알제리가 원하는 것은 프랑스 보호령 신세가 아닌 완전한 독립이었지.

왜 이렇게도 프랑스는 알제리를 붙잡고 늘어졌을까?

근 한 세기가 넘게 알제리를 경영하면서 알제리에는 프랑스인들이 많이 정착했어. 이들을 버릴 수가 없었던 거지.

샤를 드골이 국내여론 때문에 알제리를 포기하려고 한 반면, 프랑스 군부는 알제리를 식민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었어.

그러나 결국 여론에 의해 알제리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면서, 1962년 7월 알제리는 최종적으로 독립하게 돼.

 

자 이제 아시아로 돌아와 탈식민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볼까?

먼저 인도네시아에서는 아크메드 수카르노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세력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해.

이에 1947년 7월, 인도네시아 동부에 주둔하고 있던 네덜란드군은 수마트라와 자바에 대해 공세를 펼치지.

이렇게 독립운동으로 나라꼴이 엉망으로 돌아가자 1948년 9월, 공산세력은 수카르노에 대한 쿠데타를 벌여.

미국 입장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인도네시아 공산세력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수카르노 민족주의 정부를 지원하기 시작해.

수카르노는 미국 측에 네덜란드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미국은 별수없이 네덜란드에게 마셜플랜을 중단하겠노라고 협박하여 인도네시아에서의 네덜란드군 철수를 이끌어내지.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말레이시아는 완전무결하고 깔끔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어.

말레이시아에는 화교가 현지인 인구를 능가하고 있었는데, 이 공산주의 화교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1948년 6월부터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개시하며 영국에 대항해.

영국 입장에서는 말레이시아의 주력산업이었던 고무와 주석 산업을 포기할 수가 없었지.

영국은 즉시 30만의 군대를 투입하여 이 레지스탕스를 진압하고자 해.

당시 영국군이 참 현명했던게, 정글이 대부분이던 말레이시아 지형에서의 게릴라 소탕을 위해 2차대전에서 써먹었던 자신들의 군대 전술을 완전히 바꿔버려.

그리고 버마 출신의 영국군 장교를 투입하여 죽여도죽여도 계속 나오는 게릴라를 모두 소탕하기보다는 말레이시아 주민의 여론을 포섭하는 쪽으로 전략을 펼쳐.

만약 후에 일어날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이러한 선례를 잘 따랐다면 뼈아픈 패배는 없었겠지.

1957년, 말레이시아는 명목상으로는 독립했지만, 영국의 경제적 이익에 봉사하는 전통적인 엘리트들에 의해 정부가 수립되지.

가령, 말레이시아의 국기를 보면 그건 영국의 동인도회사 깃발에서 유래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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