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와서 신검을 받기전 나는 솔직히 4급 공익이 나오길 간절히 바랐었다. 어릴적부터 체력장 1.2킬로미터를 단 한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었던데다가 소극장 2층석만 가도 현기증이 아찔한 고소공포증을 가진 나와 군대라는 것은 무척이나 거리가 멀어보였다. 왠지 그날따라 내 발도 평소보다 평평해보이는 것이 "혹시나?"하는 내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김없이 현역으로 판정됐고 내 부질없는 희망은 박살나버렸다. 부모님은 날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민주시위가 한창이었던 80년대 전투경찰 출신의 아버지는 더욱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나름 담담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 다 다녀오는것, 나만 안 다녀오면 어디 얼굴들고 다니겠나 하는 치기어린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 친구가 입대전 내게 몸 건강히 전역하는 것도 무척이나 어렵다고 하셨었다. 어른들 말씀이란 원래 처음에는 콧방귀 끼고 듣다가 나중에 가서 몸소 깨닫는 법이다. 보급병으로 자대 근무를 하면서 난 어깨탈골이 생겼다. 사단 보수대의 이동정비가 있던 날, 박스를 어깨 위로 들던 중 왼팔에 힘이 갑자기 풀리면서 축 늘어졌다. 가까스로 박스에 들어있던 40개의 야전삽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피했는데, 아마 그때 그만치 순발력이 없었다면 나는 일찌감치 군대가 아닌 인생을 전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기억 때문인지 아직까지 <나홀로집에>에 나오는 도둑들이 머리를 다치는 장면을 보면 정수리가 서늘하다. 그때 빠졌던 어깨는 군시절 수 번이나 더 빠졌었고, 제대한지 4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조금만 피로가 몰려오면 왼쪽 어깨부터 불에 활활 타는 듯 아프다. 마치 그것은 전역증과 같아서, 삶에 치여 피로하고 힘들때 내가 틀림없는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이라는 것을, 약골 뚱땡이였던 내가 그 좆같던 2년을 견디어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래서인지 군대 2년에 대한 내 보상심리는 누구보다도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위와 같은 스토리는, 더욱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형태로 모든 군필자들에게 존재한다. 그렇지만 똑같이 군대다녀온 남들(심지어는 최전방 수색대나 해병대를 나온)이 공익이나 면제자들을 보고 많이 아픈가보다 하고 쿨하게 넘길때, 나는 결코 그들을 그런 넓은 마음가짐으로 보지 못했다. 무엇 하나만 그들에게서 책잡을만한 것이 있으면 "군대를 안 갔다와서 저렇다"며 의식적으로 그들을 평가절하하고 나자신을 추켜세웠다. 그래야만 "어차피 남들 다 가는 곳"에 다녀온 나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한 공적을 쌓은 누군가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견해이자 정말 몸이 아픈 사람들에 대한 막말이며, 폭력적인 선입견이자 나만의 피해의식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왔는지 아닌지가 그 사람을 평가할 잣대로 적절치 못함을 어느정도 체득했기 때문일수도 있고, 나이를 한살이라도 더 먹었으니 나잇값을 하려는 노력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씩 그 묻혀버린 불을 끄집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박원순 시장이 그랬고 이완구 총리내정자가 그렇다. 나는 박원순과 이완구가 어떤 사유로 방위를 갔는지, 그들의 아들들이 어째서 공익과 면제로 빠졌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그게 합법이었는가 불법이었는가조차도 그다지 알고싶지 않다. 아무려면 어떠랴. 자신들이 하면 불법도 합법으로, 남들이 하면 합법도 불법으로 연금술처럼 바꾸어 변호하고 매도하는 것이 저들 정치인의 본업이 아니던가. 내가 밥먹으며 숟가락을 집어던지게 만든 것은 저들의 "당당함"이었다. 나와 내 아들은 방위 공익 면제 받은게 정당하니 공개신검해보라, 결코 불법아니다, 나는 당당하다는 그 태도 자체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 뻔뻔함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상에 서있는 정치인이라면, 설령 어떠한 신체적인 문제로 인해 현역복무를 하지 못했어도 "어떤어떤 질환이 있어서 현역복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그에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에 발린 레토릭이라도 날려주어야 나와 같은 쿨하지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못하며 찌질한 군필자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하지 않을텐데, 배째라 난 잘못없다며 나오니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없는 잘못 있는 잘못 다 캐내고싶은 심정이다. 박원순 아들 병역문제를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캐고있는 이들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이완구는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정치인의 개인적인 문제는 비밀로 청문회를 진행한다더라"는 사족을 붙였다. 그런데 나는 그가 어째서 쿨한 미국의 총리직이 아니라 그런 개인적인 것 가지고 물고늘어지는 찌질한 한국 총리직에 나섰는지 알수가 없다. 또 그가 어째서 미국에서의 군인에 대한 대접과 한국에서의 "군바리"에 대한 대접의 차이는 일언반구도 없이 함부로 미국의 사례를 언급할 수 있는지 알수가 없다. 정상에 서있는 자들부터가 이렇게도 병역면탈에 있어서 당당하거늘,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는 개소리가 어느정도나 씨알이 먹힐지 의문이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면 박원순과 이완구와 그의 아들들은 신성하지 못한 2등 국민일 뿐인데, 어째서 그런 2등 국민들이 신성한 국민들의 필두에 서있을 수 있는지 나는 오늘 호기심을 품어본다.


'정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째서 한국 여성들은 작은 존재가 되었나  (1) 2015.08.09
흥신소 합법화에 대해  (0) 2015.03.14
마이크로패러다임과 자유의지  (0) 2014.08.04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다  (0) 2014.07.09
공동체와 악  (0) 2014.06.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