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교무실에선 수시 원서접수를 두고 나와 담임교사의 고함소리가 쾌청한 가을공기에 한 스푼의 위화감과 함께 섞여가고 있었다. 수능이 근 백일가량 남았던 그날, 나는 눈을 실컷 비비고 와서는 안과에 가겠답시고 외출증을 받아 천안 터미널 앞을 배회했다. 울적한 마음에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눈치채지 못한 사이 카니발의 "거위의 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을 위해서라면 (이제와 떠올려보면 그날이 당최 무슨 날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희미하지만) 난 인내해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기만하며, 위로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의 덩어리를 눈물과 담배연기로 게워냈다. 노을이 아스라이 비추기 시작한 신부동 번화가에선 10대의 마지막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입대 이틀전, 담배 한갑을 사러간 편의점에선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 가서 다시 듣겠답시고 재빨리 가사를 받아적느라 아르바이트생이 내가 평소에 피우지 않는 멘솔 담배를 내놓은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아파트 옥상에 걸터앉았을 때, 달빛은 찬란히 눈을 적시고, 진한 박하향이 칼칼히 목을 적시고, 버블시스터즈의 "가시리"가 쓸쓸히 귀를 적셨다. 청승맞은 성인식을 홀로 마치고난 나는 논산훈련소 정문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 한곡만을 틀어두었다. 한낱 깨어날 꿈이리라, 잠시 쉬어갈 마음이라, 알코올 범벅인 1년간의 기억을 안고 나는 처음으로 군복을 입었다. 그 끝에 이르러 나는 한줌이나마의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열람실 이용시간 종료를 알리는 진동이 철제책상을 요란스레 울려댔다. 힐끗 째려보는 옆사람에게 가벼운 목례로 사과를 하고나니 마침내 내 발로 걸어들어간 수용소로부터의 탈옥이 허락되었다. 이상을 거세당한 청춘을, 아니 어쩌면 스스로 그런것 따위 걸리적대기만 할뿐이라고 생각하여 거세해버린 것인지도 모를 그 청춘을 반겨주는 것은, 뉘엿뉘엿 서역세계를 밝히러 떠나간 태양빛의 흔적과 얼마전 여자친구에게서 추천받은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의 가사였다. 어딘지도 모를 목적을 향해가는 정처없는 생을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는 달콤하고도 따스한 위안이 되어 날 보듬어주었다.

노래란 내게 그런 것이었다. 아무도 줄 수 없는, 주려하지 않는 위로를 노래만이 피상적으로나마 항상 제공해주었다. 때로는 서글픔에 짓눌려 내 몸 하나 일어서게 하기 힘들 때에, 노래만은 나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시련들이 점차 색과 의미를 바래갈 때에도, 그때 들었던 노래만큼은 뇌리 속에 선명히 각인된 자명종이 되었다. 선율과 가사의 흐름에 나를 맡길 때에, 세상의 파도소리는 고요한 정적이 되었다. 내가 찾고자 하나 세상에서 찾을 수 없던 것들은 모두 이어폰 속에 있었다. 삶의 모든 순간에, 그때의 경치는 앨범재킷이 되었고 그때 들었던 노래는 앨범 타이틀곡이 되었다.

한바탕의 시험에 묵사발이 되어버린 내 몸을 침대에 뉘이고 나니, 다음곡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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