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 아저씨가 우주선이라도 접는 날엔, 머시마들 집구석에 박혀있는 색종이니 전단지는 남아날 리가 없었다. 뭐 저렇게 빨리 지나가? 어서와서 저녁 먹으라는 엄마 등쌀에 한 장면이라도 놓치기만 하면 접고있던 종이는 죄다 딱지행이 되었었다. 개학 전날이 되면 실컷 미뤄두었던 방학숙제 소스를 얻어보고자 종이접기 아저씨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도 했지만, 늘상 일요일이었던 개학 D-1엔 종이접기 아저씨 대신 중학국어니 명화극장이니 따위로 편성표가 꽉 차서 한바탕 원망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 아저씨가, 어느새 덩치가 커지고 또 어느샌가 교복을 입으면서부터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서 내 기억 속의 아저씨는, 톰과제리 색종이가 한마리의 학이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레 묻혀버렸던 것이다.
누군가는 나이 들고서도 순수하다는 말을 들으면 그건 칭찬이 아닌 욕이라 했다. 그렇지만 종이접기 아저씨가 수십억대 자산을 쌓은 주식 투자자가 되어, 혹은 전국 곳곳에 체인점을 가진 사업체의 사장이 되어, 그러니까 정말 "철들어버린" 어른이 되어 나타났다면, 우린 아마 그를 쉽사리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김영만? 그런 사람이 있었나? 어디서 많이 본것 같기도 한데... 아 그 종이접기하던 아저씨? 오 저 아저씨도 나이 많이 들었네.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그렇게 또다시 그는 기억의 사구에 파묻히고, 삶의 셀수없이 많은 파편 중 한 움큼도 채 되지 못한채 우릴 스쳐갔겠지. 다만 그가 "종이접기"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그만치 인기를 얻었다면 좀더 철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우리의 세속적인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순수했기 때문에, 하 수상한 시절의 젊은이들은 다시금 어린 시절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시종일관 시청자들을 어린애 다루듯 대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를 어린시절의 마술사를 보듯 마주했다. 20년 전 아저씨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툴게 종이를 접는 아이들에게서 순수를 찾았듯, 20년 후 우리는 낱장 색종이를 능숙히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아저씨에게서 순수를 찾았다.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꼭 같았다. 무언가가 바뀌었고, 그것에서 일말의 위화감과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그가 아니라 우리였을 것이다. 강산이 옷을 두번이나 갈아입는 세월이 흘렀음은, 아마도 아저씨의 깊게 패인 주름이 말해주는 것은 아닐테다. 그것은 종이접기 시간에 색종이는 안 챙기고 그저 그리움의 눈빛으로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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