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탄내가 풍기는 가을밤, 문득 죽음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것은 유전자 깊숙히 각인된 인간의 본능일테다. 미래에 대한 관념을 낳은 농경이 시작되기 전까지만도, 인간에게 있어 가을이란 곧 다가올 죽음의 여명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겨울의 혹한은 인류를 생과 사의 경계까지 몰아붙였을 것이며, 그렇게 한바탕의 혹독이 남기는 것은 상실만이 유일했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이 세상 솔로들이 지독히 괴로워하는 것도 그 이유다. 그것은, 옆에 붙어 미약한 체온이나마 전달할 존재를 얻지 못해 잔인한 북풍을 온전히 홀로 맞는 것이 그다지 행복한 일은 못된다는 조상들의 교훈이며, 그러한 고독이 결국 자신의 죽음과도 직결된다는 경험에 의거한 진화의 산물이다. 그래서 가을엔 삶도, 사랑도 죽음을 연상케 한다.

이 맘때 즈음이면 군부대에서는 진지공사를 한답시고 온 부지를 들쑤시고 다니는데, 우리 부대도 다를 바가 없어서 여름내 미처 깎아내지 못했던 잡초를 마저 치거나 참호를 정비하곤 했었다. 그러나 잡초도 이 때쯤에는 비실비실한 갈색빛이 되어 굳이 이발을 해줄 필요가 없는데다가, 누가 들어가지도 않는 참호가 저절로 무너질 리도 만무했기에 진지공사는 그저 20대 청춘들이 위병소 안 세상에서나마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소풍 정도로 여겨졌다. 작대기 하나둘을 겨우 머리에 이고있는 막내들이 어색하게 삽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취사병 분대는 참호 안에 모포를 깔고 둘러앉아 화투를 쳤고, 106mm 무반동포 분대는 걸그룹의 엉덩이에 대한 열띤 의견을 주고 받았다. 나도 이런 날씨면 창고의 퀘퀘함 속에 있느니 차라리 참호용 모래주머니 위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피우는 편이 훨씬 나았다. 모두가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있다는 점만 빼면, 그 광경은 군대보다는 오히려 한농기 시골 마을회관의 모습과 가까웠다.

그런 광경 한가운데에는 주인모를 무덤이 하나 있었는데, 누군가 어디로 팔아먹었는지 그 흔한 비석조차 없어서 언뜻 자연적으로 생긴 응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춘기 소년의 영글은 뾰루찌와 같은 완연한 호의 형태만이, 그곳 아래에 분명 망자가 잠들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구역의 참호는 무덤을 중심으로 둥글게 파여있었다. 이 한량하고 전략적으로 쓰잘데기 없는 후방부대에 만에 하나라도 할일없는 북한군이 침투한다면, 우리의 이마를 꿰뚫지 못한 유탄들은 그대로 무덤에 돌진할 형상이었다. 막사 건물에 금이 쫙쫙 가기 시작한 이 오래된 부대에 지금껏 어떤 이도 그 무덤의 위치를 불평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무덤주인은 이러한 서글픈 사실을 통탄할 자식조차도 없거나 혹은 세상에서 완전히 망각되었음이 분명했다. 거기엔 전역을 두 달 앞두어 몸이 불어나기 시작한 병장 하나가 무덤을 베개삼아 누워있었다.

사반년이 지난 후 나는 전역을 했고 부대와 동시에 그 무덤도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고 석 달이 지난 후, 절친했던 탄약병 후임의 부고를 들었다. 대충 정장 비스무리하게 차려입고 분당 국군수도병원 빈소에 찾아갔을 때에, 나는 사회에서 육상선수였던 그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잠들듯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건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합당함과는 머나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들렸다. 누구도 자신이 잠들고 죽는 순간을 선택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지만, 그가 세상을 등진 때와 이유는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있는 저변 저 바깥에 있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어느 한날 한시에 인간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출생에서부터 바코드처럼 낙인찍혀 끈질기게 따라다니다가 인간이 가장 무력해진 순간에 기습적으로 마수를 뻗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푸른 담배연기와 이젠 쇳소리에 가깝게 일그러져 가는 곡소리를 뒤로 한채 빈소를 나왔다. 그 녀석과 유독 친했던 내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영석이 죽었다, 한번 안와보냐 하고 물었다. 동기는 어 그러냐, 나는 멀어서 못가지 하며 덤덤히 대답했다. 그 너머로는 귀청을 찢을듯한 클럽 음악과 여자들의 교태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화기를 내려 놓으니 문득 참기 힘든 욕지기가 올라왔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아닌 신물을 게워내고, 슬픔이 아닌 허망에 빠진 나는 그 무덤을 떠올렸다. 그 환각 속에는, 현세와 내세의 국경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대던 전투복 차림의 내가 있었다. 그곳의 나는, 잔인스러울만치 태연자약했다. 삶의 빛 속에서 죽음은 짐작조차 힘든 심연으로 보였다. 아마 그래서 난 생과 사에 대한 감각을 부러 억누르고, 작위적으로 잊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푸르던 담배연기는 늦겨울의 허공에서 선명한 주검의 빛을 띠더니, 때를 잊어 미처 가시지 못한 한기에 섞여 사라졌다.

시간의 세례는 나를 상실감으로부터 구원해주었지만, 망각의 원죄는 가을이 되면 잊지않고 나를 찾아왔다. 달력이 다음장으로 넘어갈수록 기억 속 그의 초상은 색상과 윤곽을 잃어갔고, 어느 시점부터는 희미한 촉각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마저도 이제는 기름을 다한 라이터의 화염처럼 미약하기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가 죽은 날 그의 페이스북엔 참 많은 이들이 글을 남겼었고, 거의가 그를 꼭 기억하겠노라는 지키지 못할 맹약이었다. 망각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 이들이 그 후로도 이따금씩 들렀던 흔적이 있지만, 이제는 꼭 참호로 둘러싸인 그 무덤의 행색을 하고있다.

어느새 그가 죽고 네번째 가을이 왔지만, 나는 그 무덤을 둘러싼 참호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소주 한잔 뿌려 위로해주기에도, 그렇다고 훌훌 털고 참호에서 빠져나오기에도, 나는 삶의 융기와 죽음의 깊이를 감히 가늠해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그 망각의 참호 속에서 끝 모르고 헤엄치다가, 언젠가 내 위에도 흙의 응어리가 쌓이고 그 응어리를 둘러 참호가 파내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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