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열차에도 진공은 없다. 낮의 세상을 사는 이들이 현실을 떠나있는 순간은, 밤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땀냄새와 숨결로 꾸역꾸역 가득 차있다. 모두가 운동복에 안전화 차림이었고 나 혼자만이 멀끔한 감색 정장 차림이었다. 그러나 이상할 것은 없었다. 먹고 살아감을 향한 오체투지는 열차 한 량을 평등히 지배하기에 충분했다. 인력시장으로 향하는 이들을 나와는 다른 이류(異流)라고 생각해왔던 지금까지의 내 사고는 우습기 그지없는 오만에 불과했다. 내가 끽해야 일년에 한두번 겪는 절박을, 그들은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서 겪을 것이다. 절박은 내게 있어서 특별한 것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자연스런 일부일 것이다. 문득 절박을 마주하는 나의 멀끔함이 부끄러워졌다.
외국계 증권사 인턴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바깥에서 마주쳤다면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을 세 명의 면접관은, 면접장의 가늠하지 못할 마력에 의해 흡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유인원 앞에 우뚝 선 모노리스처럼 여겨졌다. 그 모노리스 앞에서 나는 모든 존엄을 잊고 발가벗겨져 하나의 미개함이 되었다. "두X 씨는 인턴 경험이 한번도 없네요?" "그래서 여기서 첫 인턴 경험을 쌓아보고자 합니다." "전공이 정치외교인데 왜 증권사에 지원했어요?" "저는 그러한 시각 또한 시장분석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금융공학을 이중전공하여 재무분석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취미가 글쓰기와 사격? 뜬금없네요." "단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도 커리어와 연관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취미가 아니지요."
취미에 대한 내 답변에 면접관들은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들은 취미로써 재무제표를 보며 자위행위를 즐기는 변태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내 영업 경험은 있느냐고 물었다. 분명 채용공고에는 애널리스트 인턴이라 되어 있을 터였다. 영업은 해본적이 없노라고 대답한 후, 내가 본 바로는 영업 직무가 아닌데 그러한 경험이 필요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죄송해요. 금감원 규정에 따라 인턴에게는 고객정보를 맡길 수 없게 되어있어서 이번 인턴 공고는 좀 애매하게 띄웠어요. 저희 입장도 생각해주세요. 두X 씨가 하게될 일은 기업금융 영업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씨팔것. 속았다. 내가 무얼 위해 해뜨기 전에 일어나 여기까지 왔는가.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면접관들은 내게서 그 이상의 질문을 거두었다. 그들은 더 이상 모노리스가 아닌, 그저 나와 같은 미개함에 지나지 않았다.
새벽 열차에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니 무언가 비린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기억은 먼지와 같아서 그렇게 쉽게 털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떨어내려 하면 할수록, 공기중의 다른 먼지와 얽히고설켜 내게로 엄습해온다.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세우고자 초가을 공기에 차게 식어버린 금속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맞은 편의 시선 때문에 도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어제 기름이나 넣어둘걸, 오늘은 한갑 넘게 피울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지 쯤을 지나자 교복을 입은 한 남자애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열차에 올랐다. 그를 보니 한때는 나의 꿈이었던 우리 학교가 떠올랐다. 어린 아이들이 우리학교로 투어를 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동선은 매번 비슷했다. 먼저 압도적인 위엄을 가진 본관을 보여주며 이곳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초딩이라면 목표로 삼아야하는 대학이란 것을 역설하고, 이내 열람실의 풍광을 보여주며 우리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교사들은 투쟁의 역사를 가진 정대후문 대자보나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로 가득찬 동아리방의 냉장고보다는, 학교 교표가 멋들어지게 음각된 기념품을 쌓아둔 상점으로 아이들을 이끌곤 했다.
그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관은 대학생활 4년 이상 하며 한번도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것, 혹은 들어가본다 해도 별로 좋은 일 때문은 아닐 거라는 것, 시험기간 열람실은 흡사 나치 히틀러가 몰락하기 2주 전쯤의 모습이라는 것, 그나마 앉아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책을 보는 이보다는 휴대폰을 응시하는 이가 훨씬 많다는 것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길 온다고 해서 아무것도 확정되는 것도, 보장되는 것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통해 증명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교사와 부모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허상을 주입했다. 그들은 그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을, 아직 경험하지 않아도 괜찮을 생의 전장으로 벌써부터 내몰고 있었다. 좋은 대학과 성공에 대한 망상에 가까운 환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무고한 소년병들을 사지로 이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미래를 거세당한 채 꿈없는 내시로 자라나고, 나중에 자신들이 바쳤던 피땀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치면 그 환상이 결국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그랬다. 우리가 그랬다. 그리고서는 어느 날 새벽열차를 타고 회의할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스물여섯 해를 살아왔나.
이런저런 상념에 가득 차있는 동안 새벽열차는 마포구 한어귀에 도착해있었다. 내가 탈 때부터 같은 공간을 공유해왔던 많은 이들이 지상의 삶을 좇아 머나먼 오르막길에 올랐다. 나도 위화감 없이 그 무리에 섞이었다. 더운 엔진열에 벌써 등에는 땀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지만, 지상의 찬 바람을 쐬는 것은 냉동고에 넣어둔 쇠막대기를 등에 댄 것과 같아서 금세 땀을 증발시켰다. 아직도 하늘은 볕의 세례를 받지 못한채 내 재킷과 같은 감색을 띄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불나방이다. 하수관에서 퀘퀘함을 내재한 채 나고 자라, 빛을 향해 이루어질 길 없는 구애를 일삼는 불나방일지어다. 그것은 확실히 부귀와 성공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려 생존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이내 불에 이른다해도 찌직하는 소리와 함께 타죽을 운명일지어다. 광명을 향해가는 그 투신이 종말로 끝맺는다해도, 그것을 누가 우매하다 비난할 수 있을까. 새벽열차는 불나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넓지 않은 품으로나마 동지들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계 증권사 인턴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바깥에서 마주쳤다면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을 세 명의 면접관은, 면접장의 가늠하지 못할 마력에 의해 흡사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유인원 앞에 우뚝 선 모노리스처럼 여겨졌다. 그 모노리스 앞에서 나는 모든 존엄을 잊고 발가벗겨져 하나의 미개함이 되었다. "두X 씨는 인턴 경험이 한번도 없네요?" "그래서 여기서 첫 인턴 경험을 쌓아보고자 합니다." "전공이 정치외교인데 왜 증권사에 지원했어요?" "저는 그러한 시각 또한 시장분석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금융공학을 이중전공하여 재무분석 능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취미가 글쓰기와 사격? 뜬금없네요." "단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도 커리어와 연관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취미가 아니지요."
취미에 대한 내 답변에 면접관들은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들은 취미로써 재무제표를 보며 자위행위를 즐기는 변태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내 영업 경험은 있느냐고 물었다. 분명 채용공고에는 애널리스트 인턴이라 되어 있을 터였다. 영업은 해본적이 없노라고 대답한 후, 내가 본 바로는 영업 직무가 아닌데 그러한 경험이 필요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죄송해요. 금감원 규정에 따라 인턴에게는 고객정보를 맡길 수 없게 되어있어서 이번 인턴 공고는 좀 애매하게 띄웠어요. 저희 입장도 생각해주세요. 두X 씨가 하게될 일은 기업금융 영업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씨팔것. 속았다. 내가 무얼 위해 해뜨기 전에 일어나 여기까지 왔는가.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면접관들은 내게서 그 이상의 질문을 거두었다. 그들은 더 이상 모노리스가 아닌, 그저 나와 같은 미개함에 지나지 않았다.
새벽 열차에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니 무언가 비린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기억은 먼지와 같아서 그렇게 쉽게 털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떨어내려 하면 할수록, 공기중의 다른 먼지와 얽히고설켜 내게로 엄습해온다.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세우고자 초가을 공기에 차게 식어버린 금속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다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맞은 편의 시선 때문에 도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어제 기름이나 넣어둘걸, 오늘은 한갑 넘게 피울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지 쯤을 지나자 교복을 입은 한 남자애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열차에 올랐다. 그를 보니 한때는 나의 꿈이었던 우리 학교가 떠올랐다. 어린 아이들이 우리학교로 투어를 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동선은 매번 비슷했다. 먼저 압도적인 위엄을 가진 본관을 보여주며 이곳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초딩이라면 목표로 삼아야하는 대학이란 것을 역설하고, 이내 열람실의 풍광을 보여주며 우리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교사들은 투쟁의 역사를 가진 정대후문 대자보나 유통기한 지난 막걸리로 가득찬 동아리방의 냉장고보다는, 학교 교표가 멋들어지게 음각된 기념품을 쌓아둔 상점으로 아이들을 이끌곤 했다.
그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관은 대학생활 4년 이상 하며 한번도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것, 혹은 들어가본다 해도 별로 좋은 일 때문은 아닐 거라는 것, 시험기간 열람실은 흡사 나치 히틀러가 몰락하기 2주 전쯤의 모습이라는 것, 그나마 앉아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책을 보는 이보다는 휴대폰을 응시하는 이가 훨씬 많다는 것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길 온다고 해서 아무것도 확정되는 것도, 보장되는 것도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나를 통해 증명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교사와 부모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허상을 주입했다. 그들은 그 어리고 순수한 아이들을, 아직 경험하지 않아도 괜찮을 생의 전장으로 벌써부터 내몰고 있었다. 좋은 대학과 성공에 대한 망상에 가까운 환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무고한 소년병들을 사지로 이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미래를 거세당한 채 꿈없는 내시로 자라나고, 나중에 자신들이 바쳤던 피땀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치면 그 환상이 결국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그랬다. 우리가 그랬다. 그리고서는 어느 날 새벽열차를 타고 회의할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스물여섯 해를 살아왔나.
이런저런 상념에 가득 차있는 동안 새벽열차는 마포구 한어귀에 도착해있었다. 내가 탈 때부터 같은 공간을 공유해왔던 많은 이들이 지상의 삶을 좇아 머나먼 오르막길에 올랐다. 나도 위화감 없이 그 무리에 섞이었다. 더운 엔진열에 벌써 등에는 땀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지만, 지상의 찬 바람을 쐬는 것은 냉동고에 넣어둔 쇠막대기를 등에 댄 것과 같아서 금세 땀을 증발시켰다. 아직도 하늘은 볕의 세례를 받지 못한채 내 재킷과 같은 감색을 띄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불나방이다. 하수관에서 퀘퀘함을 내재한 채 나고 자라, 빛을 향해 이루어질 길 없는 구애를 일삼는 불나방일지어다. 그것은 확실히 부귀와 성공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려 생존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이내 불에 이른다해도 찌직하는 소리와 함께 타죽을 운명일지어다. 광명을 향해가는 그 투신이 종말로 끝맺는다해도, 그것을 누가 우매하다 비난할 수 있을까. 새벽열차는 불나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넓지 않은 품으로나마 동지들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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