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법칙. 세상은 언제나 무질서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청소를 하면 내 방은 깔끔해지겠지만 그 먼지는 바깥 세상으로 방출되므로 결국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어린 내 손에 형체를 갖추게 된 UFO 레고 뒷편에는 내용물을 잃은 여남은 비닐조각이 나뒹굴었고, 스물일곱 해를 자라온 내 뒷편에는 쓰레받이로 고이 쓸어담아 목적모를 모처로 버려진 찌꺼기들이 있었다. 간악스런 영장류는 언제나 완성의 영광만을 취하지만, 우주는 버려진 찌꺼기들마저도 포용하여 그들에게 무질서를 창출해낼 사명을 부여한다. 영광이든 찌꺼기든, 그 모두를 품는 어머니와 같은 우주에게 있어서는 존재의 무게가 동등하다. 그게 내가 이해한 엔트로피 법칙이다.

합정역 인근의 어느 작은 카페. 천장, 계단폭, 의자를 비롯한 모든 것이 아기자기한 그 카페에서 혹 무엇 하나 부수게 될까 걱정되어 몸을 사리던 내 눈에 겨울하늘의 폐부까지 찌를 기세로 깎아지르는 세아타워가 보였다. 신의 영역을 향한 영장류의 열망은 그 첨탑만으로는 여전히 모자라다는 듯, 옆에는 푸르지오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지상의 피로한 일상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산계급의 삶을 관망하는 자신들의 재력을 가장 원초적인 감각인 시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뜻인지, 분명 주거공간으로 쓰일터인 그 아파트 또한 바빌론의 탑을 쏙 빼닮았다. 크레인은 본디 지상으로 향하고자 하는 만물의 타성을 억압하여 바벨탑의 높이를 느리지만 착실하게 쌓아올리고 있었고, 까마득한 아래에서는 적게 쳐도 일개 소대 단위일 듯한 덤프트럭들이 각자 한 더미의 흙과 부서진 기자재들을 싣고 있었다.

인류가 신 존재에 가까워지는 영광과 개선의 틈바구니에서, 내 뇌리에는 외람된 의문이 하나 스쳐갔다. 저렇게 첨탑이 세워지는 과정이야 의기양양한 얼굴을 한 영장류 과학자, 영장류 건축가, 영장류 기술자들이 앞다투어 친절히 설명해주겠지만, 덤프트럭에 실린 어마어마한 규모의 저 찌꺼기들은 당최 어디에 버려지고, 언제 태워지고, 또 어떻게 묻혀지는가? 알 길 없는 운명의 일로를 군말없이 개척해 나아가는 저 찌꺼기들은, 영장류의 영광에 아쉽다는 눈길마저 주지 않은채로 묵묵히 최후를 향해갔다. 그들의 종착지에 대한 의문은, 날이 갈수록 세상의 영광보다 찌꺼기에 가까운 존재라 자각하는 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문이기도 했다.

찌꺼기들의 목적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거대한 바벨탑이 세상에 양각으로 새겨질 때에는, 깎여나가는 찌꺼기도 무척이나 많아서 당최 숨기기가 힘든 법이다. 천안과 인천을 기점으로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구시가지를 거쳐 의정부로 향해가는 지하철 1호선. 장대한 여정을 모두 은폐할 길이 없어 유난히도 지상구간이 많은 노선. 수 분의 배차간격을 두고 쉴새없이 지나는 열차의 소음 때문인지, 그 지상구간에서는 더 이상 삶의 터전을 엿볼 수 없었다. 영장류가 떠나간 공백은, 소음과 진동에도 불평할 일 없는 무생물들의 생태계로 채워졌다. 허리가 꺾인 목자재와 튼실함을 잃은 철근, 견고함을 잃은 석재들의 안식처는 연신 쇳소리를 내는 1호선 열차의 차창 너머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벨탑의 찌꺼기들은 정교했던 형체를 잃고 서울 한어귀에 방치되어 있었다.

한 떼의 군중은 한 뼘의 진공조차 허락하지 않는 번잡 속에서 저물어져가는 볕의 세례를 받았다. 저마다 손바닥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군중의 모습은, 바벨탑이 되지 못해 내버려진 차창 바깥 찌꺼기 더미와 지독하리만치 닮아있었다. 일말의 희로애락도, 소통도, 활기도 없는 한 떼의 적막한 영장류를 잿빛 무생물 더미와 분간할 수 있을만한 요소는 전무했다. 정거장마다 한 움큼의 찌꺼기들이 서울의 대정맥으로부터 탈출하고, 또다시 한 말의 찌꺼기들이 이미 과포화 상태인 혈류에 꾸역꾸역 합류했다. 이윽고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기신호가 창조해낸 인위적이고 자그마한 불빛을, 그들은 일평생 지향해온 갈망인듯 게걸스레 탐닉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가 낳은 마경이었다. 지평선의 위에는 은청색의 바벨탑이 구축되는 동안, 지평선의 아래에는 생의 의미를 상실한 찌꺼기 무리가 여남은 생기를 가상에 오롯이 바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 무리에 위화감 없이 섞이어졌다.

평소였다면 대단찮게 여겨졌을 광경이, 새해를 하루 앞두고서 선명하게 나를 자극했다. 철도라는 컨베이어 벨트는 세상이라는 조각판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깎여나온 찌꺼기를 모처로 실어날랐다. 색채없는 흑백의 광경을, 나는 생기잃은 동태의 눈으로 응시했다. 어쩌면 내 눈이 생기를 잃었기에 색채를 감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광스러운 것들을 대입해 가공해낸 어릴적 나의 "어른"이라는 관념은 잔인하게 구겨지고 무자비하게 일그러졌다. 스물일곱의 나는 여전히 지향모를 해류에 몸을 맡긴 찌꺼기이지 않은가. 또 그것을 알면서도 감히 해류를 거슬러오르지 못할만큼 무력하지 않은가. 그러면 스물일곱의 나는 어른인가, 어린아이인가? 아니면 다만 어른의 찌꺼기일 뿐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모로 착각하고 있었다. 대저 깔끔하게 다려낸 와이셔츠를 입고 커피물이 끓기 전에 넥타이를 맬 줄 안다면, 인파를 뚫고 향한 곳에 내가 맡을 일이 있고 내가 받을 몫이 주어진다면, 독백을 나눌 연인이 있고 반절만큼 내 모습을 빼닮은 자식이 있다면, 어른이란 것은 거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나면 은청색의 바벨탑에는 어련히 알아서 내가 낄 자리 정도는, 못해도 발디딜 디딤돌 정도는 저절로 생겨날 줄로만 알았다. 그러한 스무살 시절의 내 꿈을 투명한 소주잔 너머로 듣고있던 어떤 선배는 폭소했다. 눈물까지 맺힌채로 한바탕의 폭소를 끝낸 그 선배는, 그것이 치기어린 망상이며 허세라 단언했다. 이윽고 선배는 나의 오기맺힌 눈동자를 조롱했다. 오랜만에 게워낸 웃음이 영 익숙하지 않다는 듯, 선배는 담배를 꺼내어 물고는 내게도 한 개비를 권했다. 저렇게는, 저렇게 무기력하게는 살지 않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내가 군을 제대할 무렵, 그 선배와는 연락이 끊겼다. 독문과 출신이었던 그는 줄곧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졸업이 다가올 무렵 자퇴서를 내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선배가 고향에 내려갔다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연이은 문예대회 낙방에 자살했다고도 했다. 그가 담지해온 끝모를 무기력을 떠올려보면 둘 모두 아주 일리없는 억측은 아니었다.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의 모습을, 서른이 다가오는 나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스물일곱의 내가 스무살의 나를 독대한다면, 나 또한 폭소할 것이라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확신에 가까워졌다. 깎아지르는 바벨탑에 대한 선망은 어느 시점부터 겨울하늘이 아닌 내 폐부를 쑤셔발기는 고통이 되었고, 7년의 시간 동안에도 나는 지평선 아래의 세계를 넘지 못했다. 쓴웃음이 감돌며 입안에는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기를 쓰고 바벨탑의 바짓가랑이를 잡던 나는 외려 초연해졌다. 수차례의 낙방은, 비굴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뼈에 새겨주었다. 첨점은 나로부터 멀어져가고 심연만이 내게로 다가왔다. 얼마전 서울대생 하나가 계급상승의 여지마저 사라져버린 이른바 "수저계급론"을 유언으로 남기고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결국 밑그림은 같았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폐수에서 녹아버리는 열목어가 될 것인지, 목숨 부지만을 목적으로 일생의 지향을 스스로의 손으로 거세한 붕어가 될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삶을 인내할 수 없다면 죽어야하고, 죽음을 감내할 수 없다면 살아야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의 어항에서 붕어가 되리라.

태양이 서역으로 건너간 1호선 차창에는 내 모습이 오롯이 비추어졌다. 찌꺼기 더미의 흐려져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허연 서생의 면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스물일곱의 내 자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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