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먼지가 쌓여도 윤곽을 잃지 않는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건대 그러한 기억들은 대개 유쾌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행복은 늘상 무른 점토판에 새겨져 화분(花粉)조차 들썩일 수 없는 미약한 춘풍에도 쉬이 지워져버리지만, 충격적인 기억은 단단한 금속판을 녹슨 못으로 파내어 새긴듯, 잊혀짐이 없이 삶의 여정 곳곳에서 나를 소름끼치게 했다. 기억의 경중이란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두뇌는 나이가 들수록 퇴화하여, 적체되어 가는 트라우마들을 본능적으로 망각하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열다섯살의 마지막 달 어느 날, 또 술을 마시고 자살소동을 부리다가 침대 맡에 머리를 부딪친 어머니를 업고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곳이 아마 세번째 응급실이었을게다. 차라리 정신을 잃을거면 완전히 잃어버리는게 나았을 것을, 여태 내 등에 업혀 횡설수설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예의 두 응급실에선 "Drunken 환자는 안 받아요"라며 떠맡기를 거부했다. 한겨울 밤이었음에도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나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받아주었던 큰누나뻘의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마지막 응급실에서도 우리 모자는 내쳐졌을 것이다. 갓 의과대학을 졸업한 듯한 30대 초반의 의사는 잠이 덜깬 눈으로 포도당 수액을 어머니의 팔목에 꽂았고, 그제서야 기한모를 찰나의 평화가 찾아왔다.

철이 자신을 부러뜨리지 못한 망치질에 견고해지듯, 사람도 자신을 죽이지 못한 시련에 둔감해진다. 나는 삐걱이는 철제 보조침상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고맙게도 간호사 누나가 망고 주스를 내밀었지만, 나는 그저 가물은 논바닥처럼 바싹 타버린 목구멍을 축이는 데에 바빠 감사의 인사조차 잊었다. 간호사는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가, 감정을 잊은듯 멍한 내 표정을 보고 이내 응급실의 정적 속에 스며들었다. 다음번에는 뛰어내리든 말든 말리지 않으리라 나는 다짐했다. 차라리 그것이 우리 모자가 각기 바라는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테다. 어머니는 죽음을 바랐고, 나는 휴식을 바랐다. 연이은 고통에 나를 에워싼 둔감 속에서, 나는 당분간 이루어질 길 없는 화목보다 차라리 이불 속에서의 숙면을 갈망했다.

지방에 전근가계신 아버지가 간신히 평화를 찾은 이 생지옥에 도달하는 데에는 여남은 4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다. 당장은 내가 해야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어머니의 첫번째 자살시도 때에,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발을 동동 굴렀었다. 그러나 그래봐야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음을, 지금과 똑같았던 서너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하니 새우잠이라도 청해야 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희미한 소변 체취가 깃든 차가운 간이침대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 낯선 곳에서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나였음에도, 극도의 피로감은 경악스러우만치 무거운 무게로 내 눈꺼풀을 짓눌렀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운 겨울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사이렌의 파상음에, 나는 굳기 직전이었던 몸을 일으켰다. 불안섞인 웅성거림과 절박한 곡소리가 응급실의 적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이번 환자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Drunken은 아닐 것이다. 의료원들의 긴박한 움직임은 그 환자가 이미 생사의 경계에 놓여있음을, 어쩌면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울 것임을 대변했다. 어머니 팔에 수액바늘을 꽂았던 의사의 눈에서는 예의 그 몽롱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사는 간호사들에게 위세척을 지시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중학생에 불과한 나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미수와 기수(旣遂)의 차이일 뿐, 새하얗게 질린채 검푸른 액체를 토해내는 익명의 저 사람도 아마 나의 어머니와 같은 지향을 가졌을 것이다. 죽음을 향한 지향말이다.

서너 포의 위세척액이 당직 의사의 손에 전달되었고, 이내 익명의 환자 주변엔 순백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러나 그 장막은 시야를 막을지언정 소리까지 막을만큼 치밀하지는 못했다. 이미 죽음의 세계로 노 저어가는 환자를 다시금 생의 세계로 돌이키려는 처절한 신음은, 환자의 입에서 꾸역꾸역 새어나오던 검푸른빛 액체처럼 틀어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겨울 공기만큼이나 식었을 것이 분명한 저 차가운 위세척액은 환자의 숨통을 조여오는 독기를 뽑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검푸른 이물을 마시게 한 생의 고역과, 그의 심부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을 죽음을 향한 지향은 반백 포의 위세척액으로도 뽑아낼 수 없으리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보호자 노파의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자살 시도는 그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것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청흑색의 악귀와 합을 겨루던 당직 의사는 순백의 장막을 나와 노파에게 나지막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노파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검푸른 독기는 그것을 머금은 이의 바람대로 한 많은 하나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것임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자명해보이는 상황이었음에도, 의사는 더 큰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한 대를 불러 환자를 실었다. 정작 목숨의 주인은 그것을 유기하려 하고, 생면부지의 이들은 그것을 구하고자 하는 지독한 아이러니에 나는 구토감을 느꼈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흐려질 무렵, 의사는 저런 경우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이윽고 가슴 속이 답답해져 응급실 바깥으로 나왔다. 환자가 토해낸 독액의 기운이 아마 내 폐에까지 퍼졌으리라 생각했다. 내쉬는 숨결은 백회색의 탁함이 되어 이내 흩어져버렸고, 들이쉬는 숨결은 심부마저 얼릴만큼 차가웠다. 열다섯 겨울밤의 하늘은 꼭 그 독액과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지독한 청흑색의 악귀가 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발버둥을 치고 마구 비명을 지르고픈 공포감이 나를 잠시 스쳐갔지만, 이내 그 공포는 겉잡을 수 없는 무기력이 되어 나를 주저앉게 했다. 인간이란, 타나토스와 하데스를 기만하면서까지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시시포스라고 나는 생각했다. 난간에 올라서고 독액을 머금은 인간은, 이미 그 자체로 시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투신과 독기로써 저주하고 싶은 고통일런지 모른다.

열다섯 겨울, 그 응급실에 여호와 따위는 없었다. 그저 청흑색 타나토스의 망토만이 적막했었다.

'잡설:장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에 관하여  (3) 2016.04.24
소년병의 전장  (0) 2016.01.03
바벨탑과 찌꺼기  (0) 2016.01.02
모두들 그렇게 아저씨가 되어간다  (0) 2015.11.07
새벽열차  (6) 2015.10.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