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는게 좆같이 어려운 세상이다. 블로그에 잡설을 지껄일 때면 온갖 현학적이고 고상한 어휘들이 무수히 많이 떠오르지만서도, 취업을 준비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러한 가식과 포장으로써 현실을 덮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얼마나 편협하게 왜곡했었던가? 계속된 자존감의 붕괴, 흘러가는 세월에 커져만가는 조바심, 불어만가는 뱃살을 볼 때면 그러한 비극을 구태여 화려한 어휘로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깡그리 사라지곤 했다. 그 광경은 그저 "좆같다"는 표현으로써 필요충분히 수식되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좆같았던 것은 갑들의 갑질이 아니라, 을들마저도 병정무기경신으로 나뉘어 서로를 할퀴어대는 참상이었다.

3학년 때였던가. 이력서 한줄을 위해 우리학교의 한 학회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격증만 있고 단체활동이 없으면 취업시장에서 공부만 한 싸이코패스로 비칠 것이라는 동기 형의 조언에 의한 것이었다. 학회의 리크루팅 과정은 가히 유수 대기업의 채용과정을 방불케 하였는데, 자기소개서를 받은 것도 모자라 한밤중에 면접 일정을 잡아 필참을 엄포했다. 면접실에는 면접관 흉내를 내려 앳된 얼굴에 애써 근엄함을 머금은 학회 간부들이 나를 둥그렇게 둘러싸 앉아있었다. 그들의 와이셔츠에는 여기저기 부자연스러운 구김이 새겨져 있었고, 구두굽은 닳은 구석 하나없이 멀끔했다. 한명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로 노트북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는데, 흘끗 훔쳐본 그 화면에 페이스북 창이 띄워져있던 광경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런저런 간단한 호구조사가 끝나고 페이스북을 보고있던 이가 나지막이 내게 질문을 건냈는데, 그 질문이란 것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두X씨, 서울시에 바퀴벌레가 과연 몇마리나 있을까요?"

제딴엔 꽤나 재미나고 신선한 압박질문처럼 여겨졌겠지만, 그 당시 "면접관들의 갑질행태"란 제목으로 여러 기사에서 이슈가 되었던 바 있는 질문이었다. 그래, 온갖 무게 다 잡더니 결국 뱉어낸 것이 그 정도란 말이더냐. 그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한가지를 확신했다. 그들은 소위 그러한 류의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으로써 단위면적당 바퀴벌레 수를 헤아려 서울시 면적을 곱한다는 답변이나, 통계청 유해곤충조사 자료 따위를 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질문을 통해 지원자의 창의성과 역량을 읽어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따위 시비에 가까운 질문을 통해 지원자의 학회에 대한 충성도나 대인관계를 알고 싶어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 온전히 피해자의 입장에 서있던 자신들의 열패의식을, 또다른 약자의 우위에 섬으로써 타인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문득 분노가 일었다. 아무리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가라지만, 녀석들이 배운 것은 고작 기득권의 부조리를 모방하는 것 뿐이었다. 수많이 죽어가고 얻어터졌던 데모 세대 선배들의 유산이 결국 이것밖에 안되었나. 나는 나의 생각을 그대로 쏟아내었다.

"분명 그 질문에는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요. 아마도 단위면적당 바퀴벌레 수를 조사해 서울시 면적을 곱하면 된다는 것이 모범답안일거고요. 허나 나는 당신의 질문에 분노가 치밉니다. 면접자가 입장하는데도 기본 예의조차 없이 페이스북이나 보던 당신이 어떠한 사상이랄 것을 갖고 이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다음주 세션 주제가 아픈 청춘들이라 하셨지요? 유치해빠진 당신의 질문 대신, 먼저 거창하기 그지없는 다다음주 세션에 대해 내가 한가지 해답을 드리지요. 우리는 '젊음'을 희망이라고 일컫곤 하는데, 그것은 공통의 아픔을 공유하는 젊은이들이 시대의 문제상황을 올바로 통찰하고 나중에 사회에 나아가 그것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 시대 청춘들이 아픈 이유는 바로 그런 희망이 말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증오해마지 않는 기득권층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붕괴되었기 때문이지요. 다소 피상적이고 비현실적일지라도 사회의 공동선을 힘차게 좇아야할 우리 대학생들이, 현실타파는커녕 자신들과 똑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동지들에게 자신들이 겪어온 비굴과 부조리를 그대로 전가하고 있는데, 거기에 어떤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런 녀석들이 아픈 청춘을 논한다니, 기가 차서 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지요.

당신이 뱉어낸 그 질문이 과연 순수히 지원자들을 평가하기 위함인지 스스로 고찰해보길 바랍니다. 그저 갑의 위치에 서서 떵떵거려 보고싶은 당신의 오만이 아닌지 성찰해보길 바랍니다. 지금은 내가 지원자의 입장에 있지만, 나에게는 질문의 의도 또한 명확히 알 권리가 있습니다. 꼭 답변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당신의 질문에 답변을 해드리지요. 난 서울시에 바퀴벌레가 몇마리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면접실에는 바퀴벌레가 두마리 있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선과 오만으로 거들먹거리는 당신과, 이력서 한줄을 위해 이런 모욕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나 자신입니다."

빙판을 한껏 긁어댄 스케이트처럼 날선 내 말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무엇인가를 소리치려다가 이내 꿀꺽 삼켜버린 이처럼 얼굴이 시뻘개졌다. 아마 그는 나의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할 것이다. 씁쓸해진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듯한 한 명이 질문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한다며 사과했지만, 학회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담 청년 취업난 또한 인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군요. 이미 당신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놓고 뭐하러 아픈 청춘들이니 하는 세션 따윌 진행하는 겁니까?" 하자 그 녀석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아픈 청년들의 원흉으로써 386 세대의 위선과 기호 1번을 고집하는 콘크리트 노인층을 들어 성토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연민에 잔뜩 취해 자신들은 이 비열한 세상의 피해자일 뿐임을 소리쳤을 것이다. 또다시 원서를 내고, 또다시 모욕을 당하고, 분명 또다시 다른 약자들에게 자신들이 당한 모욕을 전해주었겠지. 그리고선 자신들은 시대정신을 가진 지식인이라 자부했을 것이다.

이따금씩 대학생들끼리 군기를 잡거나 구타를 자행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 기억이 떠오른다. 녹슬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상아탑 아래서는 아픈 청춘들끼리 서로 물어뜯기 바쁜 야생세계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언제나 힘껏 눌러쓴 대자보가 위풍당당하게도 펄럭인다. 거기에 카니발리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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