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무거워진 공기의 중량감이 이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현관에서 몇 발자국 채 나오기도 전에 입고 있는 셔츠가 몸에 딱 달라붙고, 들이키는 들숨도 폐를 축축하게 적셔버리는 바람에 이 이상 정류장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다지 먼 길이 아니었기에 한량히 서있던 건너편 택시에 엉덩이를 붙이었다. 이 택시가 만들어진 이후로 단 한 번이라도 필터 청소를 한 적이 있을까 싶을만큼 시큼하고 퀘퀘한 에어컨 쉰내가 진동을 했지만, 본디 향기가 아닌 냉기가 갈망의 지향점이었던 나의 몸은 유쾌한 악취 속에서도 안도하기에 충분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7년을 서울에서 살아왔지만 나는 태생부터가 특별시가 아닌 촌녀석이었다. 그 증거로써, 이제금 주민등록지 면에서도 완연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민이 되었건만, 여전히 지하철이나 택시 차창에 한강이 비추어질 때면 시선을 옮기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렇다할만한 냇가 하나 없는 건조한 평야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온 나에겐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은빛 광채를 내뿜는 빌딩 숲의 현대적인 광경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학 시절의 나는 이따금씩 오밤중에 캔맥주를 사들고 펜스를 넘어 특별한 추억도, 특별한 사연도, 특별한 인연도 없는 동호대교 아래 강변에 홀로 앉아 담배를 태우곤 했다. 강변 자갈밭 한어귀에서 안장으로 쓸만한 평평한 바위를 찾아내 남쪽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가끔 죽은 물고기가 내 발치 아래로 떠내려 왔다. 그들은 이미 호흡을 그쳐버린 아가미로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


이제금 들끓어 아지랑이가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한 노들로를 지나 택시는 어느새 양화대교에 올랐다. 흑청색의 한강 수면 위로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붉은 반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눈을 한껏 찡그려 다시 보니 그 반점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구조대원들을 태운 보트 두 대였다. 보트들은 (내 시각에서는) 달팽이 정도의 속도로 어떤 랑데뷰 포인트를 향해가고 있었다. 성산대교 아래 쯤인 듯한 랑데뷰 포인트로 향하는 두 대의 보트에서, 우뚝 선 장정들이 장대인지 그물인지 모를 길다란 무엇인가로 수중을 헤집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랑데뷰의 목적은 비교적 분명했다. 한강(恨江)은 또 한 인생 분의 한을 끌어안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찾아낼 것은 텅 비어버린 한 사람의 주검일 뿐, 그의 한은 아마도 한강에 완전히 침전해있을 터였다.


죽은 물고기는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혼이 없는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며 과연 그 무엇을 아우성치고 그 무엇을 원망하고 그 무엇을 저주하고 싶어했던 걸까? 어쩌면 그 물고기는 마비된 아가미로 나를 향해 분명한 인간의 말을 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물고기가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름의 강렬한 광명조차 비치지 않는 한강의 검푸름은, 아마도 들어줄 자 없이 홀로 썩어버린 망자들의 한이 앙금지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


친구 S는 나와 군 생활 2년을 오롯이 함께 보낸 동기였다. 자대배치 후 처음으로 S와 등목을 했을 때에, 나는 그의 등판을 뒤덮은 용호상박의 동양화에 적잖이 놀랐다. S는 조직 생활을 할 때에 그린 것이라며 제대하고 나서는 꼭 지울 것이라 말했지만, 창피해하는 그의 목소리 뒤에는 헤아릴 길 없는 자부심 비슷한 것이 엿보였다. 용의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은 이유가, 눈동자까지 그리면 진짜 용이 되어 훨훨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라 농을 뱉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것이 자괴감보다는 자부심에 가까운 것이라 확신했다. 다소 충격적인 문신 때문인지 정작 S 본인은 위아래가 확실하고 깍듯한 인물이었음에도, 어떤 고참도 S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S와 늘 붙어다녔던 나 또한 호가호위 격으로 비교적 편안한 막내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제대한 이후 S는 앞으로 성실히 살아보겠다며 용접을 배웠고, 당시까지만도 비교적 견실했던 대기업 협력업체에 들어가 (그의 말을 빌리자면) "비로소 정직하게 번 돈"을 만지게 되었다. 문신을 지우겠다는 다짐을 완전히 지키지는 못했어도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문신제거 견적 정도는 받아두었고, 그를 위해 따로 돈을 모으고 있다는 귀띔도 자랑스레 해주었다. 중고차이긴 해도 연식이 얼마되지 않은 중형차 한 대를 뽑아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했다. 배움보다 기술이 중요한 요즘 세상에서는, 이대로만 살아간다해도 남 부끄럽지 않은 삶일 것이 분명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선업계의 망조가 매일의 기삿거리도 되지 못하는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S가 용접공으로 취업하던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조선업계는 사실상 정점에 이르러 있었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랬다. 불과 2년이 지나지 않아 대X조선해양의 분식회계나 적자 문제 같은 것이 불거지긴 했지만... 더위와 추위만 이겨낼 수 있다면 조선업계의 숙련공이 되는 편이, 허울좋은 명문대랄지를 나와 취업난에 시달리고 이내는 제 목숨 부지키도 힘든 화이트칼라가 되는 쪽보다 훨씬 나았다. 나는 확실히 후자에 속했기 때문에 기술을 갖고 창창한 앞길을 개척하는 그가 어느 한편으로 굉장히 부러웠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도통 수주가 들어오지 않아 용접을 그만두고자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문신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놀랐었다.


그가 새로이 시작한 일은 인테리어였는데, 불경기가 문제라면 차라리 용접을 계속하는 편이 인테리어업보다는 나을 것이라 나는 주장했다. 인간관계가 힘드니마니 해도 남 밑에서 월급 벌어먹고 사는 것만큼이나 속 편한 일은 없다. 그래서 여의도 증권가의 전등이 자정을 지나서도 여전히 밝게 빛나지 않는가. 모든 일이 나의 소관이 되는 순간, 동시에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 된다. S는 그쯤은 감당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담이 큰 사내라는 것을 역설했다. 나처럼 담 작은 놈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을만큼이나 S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S의 생활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연스레 S와의 연락은 드문드문해졌다. S는 주말에도 쉬지 못했지만 사장은 견습생이라는 이유로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딱 한 번쯤인가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저히 유지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어 갖고있던 차를 팔고 스쿠터를 뽑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도 그는 이제 일을 반절 이상 배웠으니 1년 쯤 더 고생하면 그의 고향인 부산 근교에 자신만의 가게를 차릴 수 있을 것이라 희망찬 말을 쏟아내었다. "그러면 가게차릴 돈은 당최 어디서 마련할거냐?"는 내 질문에 그는 문득 말문이 막히더니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쩌면 그러고도 내가 그에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의 고생이 어디까지나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 초 즈음이었던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던 중 벨소리가 울려 수화기를 들어보니 S였다. 녀석은 자신이 서울 중구 한어귀에 방을 잡았노라 하였고, 나는 서울 와서도 왜 연락을 안했느냐 타박했다. 그는 담배나 한 대 태우자며 내 집 앞으로 온다 하였고,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강을 건너 덩치에 걸맞지 않은 자그마한 스쿠터를 타고 그가 당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왜 서울에 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나의 끈질긴 추궁에 그는 어느 한 대부업체에 일수꾼으로 취업했노라 대답했다. 새벽에는 일수 전단지를 돌리고, 오후에는 자신의 "구좌" 두 곳을 찾아가 대금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1년을 바짝 벌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가게를 차릴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S는 여전히 문신을 지우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지우지 못한 정도라면 나았을게다. 지우지 못한 것에는 비용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그럴싸한 핑계거리들이 많았다. 오히려 수년만에 만난 그는 본디 윤곽선만 있었던 용호상박 문신에 색칠까지 하였노라 자랑했다.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삶의 어느 순간에서 참으로 어리석고 비참한 것이라 여겨지기는 하지만서도, 정도를 벗어난 삶 또한 정직한 삶 이상의 비극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S는 "나는 너처럼 많이 배우지를 못해서, 지침으로 잡고 향해 나아갈 등대 같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최 정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늘상 경찰의 단속에 쫓기고 채무자들의 칼침을 두려워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피로한 삶인지를 들며 나는 하루라도 바삐 일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갈 것을 종용했다. S는 치통이 도져 머리가 아프다며 그러한 나의 말에 대답을 회피했다.


한시간 남짓을 이야기한 후에, S는 스쿠터에 올라 제 보금자리로 향했다. 나는 그의 스쿠터 브레이크등이 노들로에 올라 한강을 배경으로 멀어질 때까지 줄곧 배웅했다. S의 스쿠터가 향하는 한강 저 편엔 늘상이 불안감의 연속인 삶이 있었고, 한강 이 편엔 늘상이 매너리즘의 연속인 삶이 있었다. 저 편에는 흑백의 잉크가 용호상박의 상흔을 새긴 등판이 있었고, 이 편에는 햇살에 그을린 자국 하나 없이 허이연 등판이 있었다. 한강은 마치 휴전선과 같이 두 삶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있었다. 어쩌면 경계라기보다는, 두 종류의 삶이 갖는 각자의 한이 서로 섞이는 유일한 지점이 검푸른 한강일지도 모르겠다.

'잡설:장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에게  (6) 2016.08.28
초보 샐러리맨  (3) 2016.06.20
대학사회의 카니발리즘  (5) 2016.05.07
고독에 관하여  (3) 2016.04.24
소년병의 전장  (0) 2016.01.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