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를 배격한 민족자주의 통일은 애초에 북한 전체주의 정권 김일성 시절부터 남한에 대한 선동을 위해 부르짖던 말인데, 이게 어느새 우리 한국 좌파들의 구호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민족자주의 통일이란, 미국 등의 외부세력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남북한의 합의를 통해 통일하자는 당사자주의의 통일안으로 정의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족자주 통일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순전히 북한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지어진 선동책략일 뿐이다.
직관적인 예를 들어보자. 조용한 도서관에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되도록 상호 간의 갈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정숙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어느 학생 둘이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두 학생의 싸움이 순전히 그들만의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이 학생들과 가까이 앉은 다른 학생들은 싸우는 소리에 더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학생들의 싸움은 비록 그 싸움의 주제가 그들만의 일일지라도, 싸움 자체는 그들만의 일이 아니다. 좁게는 그들 주변의 학생, 넓게는 도서관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다.
이제는 상투적인 문구가 되어버린 말을 한마디 하겠다. 한반도는 그 특유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긴 역사 동안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한에 멸망한 고조선에서부터, 몽고가 일본으로 향하는 교두보였던 고려, 거꾸로 일본이 쇠퇴하던 명으로 향하던 교두보였던 조선, 제국주의 일본의 제1수탈대상이었던 대한제국, 냉전기에는 동아시아에서 공산권과 서방권이 대치했던 최전선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큰 이해관계를 가져왔다면, 냉전기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사이에 미국이 더해진 것이 차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자주"라는 구호에 그렇게도 환호하는 이유는 이러한 피탈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어마어마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잠깐 폴란드로 눈을 돌려보자. 폴란드는 우리와 놀랍게도 유사한,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욱 심한 피탈의 역사를 겪어왔다. 이 때문에 폴란드에서는 수차례 민족혁명이 일어났었다. 19세기 단 한세기만 보아도, 1830년 러시아령 폴란드 혁명, 1848년 프러시아령 폴란드 혁명, 1863년에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또 한번 봉기가 일어났다.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은 이후에도 냉전기간 동안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수차례의 민족혁명과 봉기에도 폴란드는 결국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완전한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린 역사가 길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폴란드는 프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제국-러시아 제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이자 세력경쟁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프러시아-오스트리아-러시아 중 어떤 국가도 폴란드가 독립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 지역 자체에 별 이해관계가 없었다.
위의 도서관의 예, 한국의 예, 폴란드의 예에서 볼수있듯, 한 국가의 일은 그 국가 자체의 일일뿐 아니라 작게는 그 지역체제, 크게는 세계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태평양에 홀로 떨어져 아무 세력도 이해관계를 갖지않는 여의도보다도 작은 섬나라가 아니라면 어떤 일도 자주적으로 행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사실 그 섬나라조차도 그렇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를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라고 하고, 이렇게 한 국가의 자율성과 합리성이 제한되는 것을 "제한된 합리성"이라 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남북한 당사자주의 통일은 국제정치의 아주 기본적인 이론조차도 모르는 세력들의 무지한 소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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