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지평을 넓히고자 이번 학기에는 사회주의체제연구, 즉 마르크스주의(맑시즘)를 수강하고 있다. 공부가 부족하여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은 이후 몇편으로 연재해야될 듯 하다. 다만 내가 절실히 느끼는 것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소위 마르크스주의를 외치는 대다수의 진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이 신봉하는 마르크스주의에 심히 모순되는 짓거리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에 대한 책 한글자도 읽지않고 그저 사회비판을 하는 지식인이라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주의의 뿌리에 대해 보자면, 1900년대 초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사회주의혁명세력Socialist Revolutionist과 멘셰비키Mensheviki이고, 다른 하나가 볼셰비키Bolsheviki이다. 이중 사회주의혁명세력과 멘셰비키는 후에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전신이고, 볼셰비키가 소련 및 중국의 정통사회주의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한국의 좌파 또한 마찬가지로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사민주의 노선과 정통볼셰비즘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갈리게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마르크스의 이론을 직계로 계승하는 사상은 볼셰비즘이고, 한국에서 마르크스를 운운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이 볼셰비즘을 계승하는 세력이다. 멘셰비즘 혹은 사회주의혁명세력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수정주의이자 반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거대 사회주의제국인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이 붕괴함에 따라 한국의 볼셰비키들은 설 자리가 사라진다. 아무도 경험적으로 실패한 사상을 민중에게 요구할 수 없었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연계해오던 북한이라는 존재도 더이상 그들을 지원할만한 여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들을 이때부터 알량한 "민주주의"를 외치게 된다. 이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인가?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갖는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표현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인민민주주의다. 북한이 명백히 그들의 국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지만 아무도 인정치못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이유에서다. 인민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그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인민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먼저 인민민주주의에서 칭하는 인민이란, 모든 국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효용과 선이 다를 수 있으므로 공동된 선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이 때문에 "다수결"이란 제도를 통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민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개개인의 공동선이자 공동목표가 명백히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앞에서 설명했듯, 여기서 인민이란 무산계급이고, 모든 무산계급의 공동목표는 바로
부르주아지 타도와 사회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인 것이다.


cf)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 : 공산주의가 바로 이상향이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향해가는 과도기적 과정, 즉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의미한다.


여기서 공산당에 대한 의미가 부가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공산당은 바로 이 모든 인민의 공동선, 즉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인민을 지도하고 이끄는 "전위정당"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모든 인민의 뜻이 곧 전위정당인 공산당의 뜻과 같다는 의미인데,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공산당의 뜻이 모든 인민의 뜻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사회의 공동선은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 단 하나뿐이므로 다른 정당의 결성 또한 모두 불법화된다. 즉, 인민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전체주의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것이다. 실제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한번 떠올려보라. 당신들이 알고있는 사회주의국가들 중 정기적으로 총선을 실시하고 야당과 여당의 경쟁이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있는지.


이에 따르면 한국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승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의미에서 모순이다. 첫째는 그들이 외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인민민주주의이고, 이는 엄밀히 말해 민주주의가 아닌 전체주의 좌파독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만약 그들이 정말 그들 입으로 주장하는 것과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민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어떤 식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상의 특성상 자유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