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디서 비롯된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법고시 시험 지문에 항상 당사자가 갑과 을로 표시되곤 하는데 거기서 유래된 건 아닌가 싶다. 쉽게말해, 갑은 을의 우위에 서서 갖은 횡포를 다 부리고, 을은 어쩔수없이 갑의 횡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참 서글프게도 갑을관계라는 것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이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권력욕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만큼 아름다운 본능은 아니지만 어찌 됐거나 인류가 절멸할 때까지는 인간은 권력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힘이 생기면 약자를 억누르고부터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해서 갑을관계를 그대로 두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갑을관계는 없앨수는 없지만 개선이 되어야만 하고, 그 개선을 통해서 갑과 을이 최대한 동등한 선상에서 공정하고 평등한 관계를 갖게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한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큰 맥락에서는 두가지다. 바로 여성정책과 경제민주화다. 남성과 여성의 갑을관계는 남성중심의 조선왕조 600년을 지내온 한국 땅에서난 꽤나 유구한 전통의 갑을관계일 것이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갑을관계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전우주적(?) 갑을관계일 것이다. 어쩌면 이 두 갑을관계들의 당사자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도대체가 접점에 만날래야 만날수가 없는 영원한 평행선일지도 모르고, 아마도 그래서 정부도 이런 정책에 시행함에 있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런지 모른다.


문제는 접근방식이다. 흔히들 이 갑을관계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을에게 혜택을 부여하고, 갑을 제한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가령 취업이나 국가고시에 있어서의 여성쿼터제라던지, 세제를 개편하여 고소득층의 소득세율을 인상한다든지가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원시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갑을관계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방법에서는 아무도 제한받는 갑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갑은 강자이므로 제한을 받더라도 어련히 알아서 잘 헤쳐나갈것이라는 믿음 때문인지, 아니면 소수의 갑의 횡포에 대한 다수의 을들의 분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갑은 무도회장에나 놀러가는 계모처럼, 을은 집에서 궂은 일만 하는 콩쥐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갑에 대한 분노와 을에 대한 동정으로 인해 이 정책은 초기에는 굉장한 효과를 보이며, 충분한 정당성을 지닐지 모른다. 이때 갑은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파로 분류되고, 을은 현 체제를 뒤엎으려는 진보파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갑을관계를 역전시킨다. 기존의 을이었던 자들은 갑이 되고, 갑이었던 자들은 을이 되기 시작한다. 즉 이전과는 거꾸로, 을이 사회정책의 혜택을 받는 보수세력이 되고, 갑이 그 체제를 변혁하고자 하는 진보세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항상 또다른 모순이 생겨난다. 지금과 같은 남성교원 부족, 법관의 여성편중, 얼마전 불거졌던 이화여대 로스쿨 문제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을을 위한 정책"이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고착화됨으로써 이전에 갑이었던 자들은 역차별을 받게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을 규제한답시고 온갖 투자의 길을 다 막아놓음으로써 대기업들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을 진행하기 꺼려한다.


여기에는 세가지 문제가 있다.

1) 이제는 약자가 되어버린 예전의 갑들만이 할 수 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곧, 사회의 생산성이 하락하게 된다. 남자교원 부족은 남성교원들만이 가르칠 수 있는 일련의 과목을 교육할 수 없게하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대규모의 수출 프로젝트를 불가능하게 한다.

2) 그런데도 을은 자신들이 약자라는 인식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한다. 이것이 곧 제도의 부작용을 뜻하는 바다. 처음에는 약자가 탄압받는 현실을 반영하여 제도가 마련되지만, 후에는 그 제도로 인해 더이상 약자가 아닌 자들을 약자로 비치게 하는 것이다.

3) 지속적인 역차별은 결국 갑과 을 간의 고착화되고 장기적인 갈등관계를 낳게 되고, 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 자본가와 노동자는 비록 갈등이 있을지라도 손을 잡고 협력해야만하는 관계다. 그러나 누군가를 갑으로 규정하고, 누군가를 을로 규정함에 따라서 이들은 상호불신과 적대감을 갖게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갑 때리고 을 안기" 방법은 어느정도 선에서 그쳐야 한다. 그 어느정도 선이라는 것은 갑과 을이 어느정도 동등한 위치에 섰을 때를 의미한다. 언제까지고 항구하게 이 정책을 추구하다보면, 현시대에는 치명적인 생산성 저하를, 나중에 가서는 새로운 갑을관계와 사회분열을 낳게 된다. 이제쯤 사회는 갑을관계를 돌이켜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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