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와 쇼비니즘

한국에서는 흔히 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침탈의 역사가 얼마나 뼈아픈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며 한민족의 DNA에 뿌리깊게 내재되어 온 것이다. 나는 여기서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며, 따라서 미국과 같이 다민족국가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족은 실체로 만져지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그러나 그 구분이라는 것이 어디까지가 이마이고 어디까지가 머리인가를 따지듯 경계가 매우 모호하고, 바로 그 모호성 때문에 민족주의에 대한 논쟁이 오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민족주의는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민족주의를 설명하기에 앞서 민족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다른 사전적 정의를 떠나서,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며 유사한 공동선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이 민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유사한 외모도 포함되는데, 실상 외모야말로 대다수의 인간이 자신과 같은 민족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직관적인 요소이므로 외모적 특수성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민족이란 바로 각기 다른 개인들의 공통적인 정체성, 즉 집단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흔히들 민족주의의 태동은 영국에서, 확산은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민족주의란 흑인사회에서 태어난 흑인 아기가 백인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과 같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단순히 한 개인이 타 민족을 보고 이질감을 느끼는 감정 자체를 민족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족주의는 이 집단들이 자신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혹은 찾은 그 결과를 의미한다. 여기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혹은 그 결과란, 자신들이 이질감을 느끼는 타민족에게 지배받는 것이 불합리함을 느끼고, 나아가 그러한 불합리함을 없애기 위해 자신들만의 공동체, 즉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한 민족이 한 국가를 형성한다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탄생한 역사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전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뿌리깊이 자리매김한 개념이 되었다. 그 이유인즉슨,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은 어떠한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이념이지만, 민족주의는 인간이 태어남과 동시에 가지는 타인에 대한 이질감과 자아인식이라는 본능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동한 민족주의는 19세기 이후 수많은 민족의 독립과 양차 세계대전, 나아가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세계사에 영향을 미치고있다. 종교분쟁 또한 종교라는 문화를 위시한 일종의 민족주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틀어 대개의 민족독립운동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그 민족이 실질적으로 지배민족에게 지배/탄압받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진행되어왔다. 어느 국가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라 하여도,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이 달리 정해져있지 않고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며, 어느 민족도 정치/사회적으로 탄압받지만 않는다면 원만하게 그 사회에 융화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이다. 수많은 민족이 한데 어울려 생활을 영위하고는 있지만 어떤 민족도 미국에서의 분리독립을 외치지는 않는다. 반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그 맥락이 다르다. 제국주의 일본에게 한민족은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탄압과 지배를 받았고, 이러한 억압과 탄압이 바로 독립운동의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족주의란 이질적인 민족의 혼재 + 지배/피지배 계층의 분화라는 조건에서 태동한다.


그렇다면 배타적 민족주의, 쇼비니즘이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쇼비니즘이란 민족주의의 발전개념인 동시에 상반개념이다. 이 쇼비니즘이 제도화된 것이 바로 2차대전기 나치즘과 파시즘이고, 제도화되지는 않았으나 집단화된 것이 KKK단과 스킨헤드라 할 수 있다. 극단과 극단은 만난다고 했던가? 쇼비니즘이 태동하는 이유는, 민족주의와는 거꾸로, 다수민족이 소수민족에게 역차별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치즘에서는 유태인의 독일경제 독점을, KKK단과 스킨헤드는 유색인종의 자국사회 및 경제 침투를 겨냥했다. 민족주의가 피지배민족이 지배민족에게 차별받는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과는 반대의 이유인 것이다. 대개 사전적 의미에서는 쇼비니즘이 민족주의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나오곤 하는데, 쇼비니즘의 동작원리는 민족주의와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 제노포비아에서 쇼비니즘으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은 단순히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출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배경에는 항상 지배-피지배 원리와 수혜자-손해자의 제로섬적인 상황이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쇼비니즘과 민족주의는 무턱대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발생원인을 색출하여 해결해야 그 현상 자체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문제가 되는 바는 바로 다문화정책 문제다. 한국 국민들이 외국인에게 가지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혐오증)는 마냥 근거없는 것인가? 앞서 상기한 글을 읽어보았다면 한국의 제노포비아는 영 그 근거가 없다고만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유입된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집단을 형성하여 공공질서에 피해를 주고, 외국인범죄율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배려정책은 국민의 통상적인 외국인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지나치게 역차별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즉, 정부의 다문화정책이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보정권에서 행한 외국인지문날인제도 폐지 조치(2004년)이다. 한국이 고령화/저출산 국가화되는 것이 명약관화한 미래라고 해도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다문화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심각한 제노포비아 내지 나아가서는 쇼비니즘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내국인과 외국인 요구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향후 10년 내에 한국판 KKK, 한국판 스킨헤드, 나아가서는 한국판 나치즘이 등장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다문화정책을 위해서는 현존하는 외국인에 의한 문제에 대한 방안을 근본적으로 강구하고, 내국민의 공감을 사는 일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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