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포스트를 읽기전에 2차대전 후 http://aceferr.tistory.com/11에 들어가서 독일이 분할된 상황을 먼저 알아보기 바람)

 

국가의 외교정책 혹은 대외정책이란 지도자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정부라는 집단이 결정하기도 힘들며, 때로는 슬프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바라 하여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의 국가는 국제체제International System라는 틀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제체제 안의 국가는 합리성에 제한을 받기 마련인데, 이를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한다. 어떠한 정책적 결정이 분명 국익을 증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국제법에 위배가 되거나 아니면 주변국들로 하여금 반발을 일으키게 하는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지도자-정부-국민이 합심하여도 그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쉽게말해,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섬국가가 아니라면(물론 현대사회에서는 그 섬나라 또한 제한을 받겠지만) 정책결정을 할때 주변국의 눈치를 볼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여기서 하고싶은 말은, 과연 독일통일이 대북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부와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졌는가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 통일은 동서독 정부와 국민의 의지 뿐 아니라, 국제적 환경이 그 의지에 부합할만큼 조성되어있던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서독의 봉쇄정책 : 한중관계

흔히 독일통일의 기초를 닦은 주요정책으로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꼽고는 하는데, 실상 이 브란트의 동방외교는 미국 리처드 닉슨 정권이 중국에 접근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즉, 봉쇄정책이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까지 닉슨 정권은 소련을 사회/정치/경제적으로 완전히 봉쇄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대소 봉쇄정책에 있어서 사회주의 제2제국인 중국을 포섭하여 아시아에서의 소련을 포위하고자 했다. 서독의 브란트 총리 또한 기존의 할슈타인 원칙(동독을 승인한 국가와는 외교를 하지 않음)을 파기하고 소련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와 연계하였다. 서독이 동구권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했던 것은 동구권을 포섭하여 동독을 포위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즉,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본질은 민족적, 사상적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동독을 고립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이를 한반도 상황에 대입해본다면, 한국이 북한을 완전한 고립 상태에 빠뜨리기위해 포섭해야할 대상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서 또한 북한의 연차례 핵실험으로 인해 민간부문에서는 반북감정이 고조되고는 있지만 여태까지도 정부차원에서는 북한에 대한 강경한 제재를 하고있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원유와 식량을 지원하며 김정은 정권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무너지면 자유진영과 자신들의 완충지대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북한이 어떠한 짓을 저질러도 지금과 같이 미온적인 제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언제까지고 혈맹이라는 미명하에 북한에 대한 두둔을 계속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중국의 협력없이 단독으로 북한으로 군사적 진격을 실시하는 방안 또한 검토해야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에 지나친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에 시의적절한 시기이다.

 

미소의 유화적 분위기 : 미중관계

또한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시작된 60년대 말 70년대 초는 미소냉전사에서 초기 데탕트 시기에 해당된다. 미국과 소련이 적대적 대치를 계속하고 있었다면 서방권에 속한 서독과 소련권에 속한 동독이 각자 미국과 소련의 승인없이 상호 교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독과 동독이야말로 서방권과 소련권이 접경하고 있는 최전방 제1전선이었고, 미소 간 제3차 대전이 발생한다면 동서독의 경계에서 발생될 개연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소 양측의 최전방 국가가 과연 독립적인 통일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 쿠바미사일위기에서 미국이 쿠바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시행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소련의 독일침공 우려 때문이었다. 다시말해, 미소의 유화적 분위기가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이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있어서 외세배격과 자주통일을 외치는 세력에게 내가 해주고싶은 말이다. 통일은 결코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지역 또는 하나의 국가에는 주변의 수많은 세력들이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애초에 자주적인 통일이란 것은 허울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 이해관계가 비록 우리가 보기에 부당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라쳐도, 그러한 이해관계를 적절히 잘 활용하면 우리 측에 유리한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무턱대고 당사자원칙만 내세우자는 것은 통일 과정에서나 통일 후에나 주변국과의 관계를 내다보지 않는 근시안적인 대책일 뿐이다. 우리는 중국이 북한을 계속 두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기회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권을 중국에게 빼앗기지 않으려하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차도살인借刀殺人지계를 펼쳐야할 것이다.

 

베를린의 역할 : 개성공단의 역할

어쩌면 지엽적인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베를린의 역할은 동독의 체제를 밑에서부터 침식하는 데에 상당히 큰 역할을 하였다. 베를린은 동독 영토 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권과 소련권은 이를 동서베를린으로 분할하여 분할점령하였다. 소련이 서독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는 육로를 봉쇄하는 등 베를린이 관리하게 골치아픈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왜 서방권은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동독 내에 있는 서베를린이 소련권에 심어놓은 서방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동독 탈출 난민이 서베를린을 통하여 유입되었고, 서독의 경제발전상은 그대로 서베를린에 또한 적용되었기 때문에 동독주민들에 대한 선전효과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수단 그이상 그이하의 역할도 하지못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이 개성공단을 볼모로 하여 대남위협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였을때 서방권이 서베를린에 무려 11개월 간 공수작전을 벌였던 것은 적국 한가운데 심어놓은 전초기지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개성공단을 서베를린 급의 전초기지로 성장시키지 못할거라면, 계속 북한에게 인질을 떠넘겨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 당장이라도 철수하는 편이 나을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