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포스팅을 아주 간만에 하는 것 같다. 내 포스팅을 기다리고 재촉하는 이들도 없을뿐더러, 요즘은 간만에 꽤나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대선, 보수는 없었다
한달간 정치권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국정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에 유리하게 댓글을 달았다는 논란부터 시작하여, 새누리당이 이에 반격하는 카드로 노무현의 NLL 발언 문제를 꺼냈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은 이미 밝힌 바대로이지만(http://aceferr.tistory.com/47) 분명 여권에 호재는 아니었다. 이때 민주당이 NLL논란을 덥썩 물지않고 국정원 문제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쯤이면 어느정도 판도가 달라져있었을 수도 있다(그 판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나 문재인 의원의 청와대 시절 기억이 지워져버린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당당함을 과시하기 위한 소위 "뻥카"였는지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미끼를 덥썩 물었다. 오히려 문재인 의원이 회의록을 공개하자고 나서기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만약 그래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만 나왔다면, 그 내용이 어떻든 간에(노무현이 정말로 김정일을 상대로 영토 장사를 했다고해도), 어느정도 핑계를 대며 "해석의 차이"로 문제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사초는 발견되지 않았다. 국가간 정상회담, 그것도 적성국 정상과의 회의록이 증발했다는 것은 명분적으로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야권에게 악재였지만내게 불리한건 국가기록이라도 지워도되지만, 너네는 댓글하나 달면 안돼!!, 실리적으로도 NLL문제에서의 주도권을 완전히 여권에게 넘겨준 꼴이 되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이후 국정원 사태를 바로잡겠다며 장외투쟁체제에 들어갔지만, 조선시대에도 안했던 짓거리인 사초 태우기의 주범인 민주당이 여권의 국정원 사태를 물고 늘어지며 국회로 돌아가지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지지율을 점점 제3세력인 안철수에게 넘겨주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덕분에 당분간 잠잠하던 이정희만 살판났다.
야권의 삽질로 여권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듯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다. 현재 여권의 가장 큰 적은 야권도 안철수도 아닌, 바로 과거 대선시절의 여권이다. 지난 시절 여권은 야권의 복지공약에 대응하며 무더기로 복지공약을 쏟아내었다. 그야말로 지난 대선은 여권이나 야권이나 포퓰리즘이 판을 치던 때였다. 그 누구도 현실성없고 무분별한 복지공약이 실현불가능하다고 지적하지 않았으며, 부족한 돈은 삥땅뜯으면된다는 세수는 어디서 마련할지 제대로된 계획안조차 마련하지 않은채 그대로 정권을 잡았다. 그때는 정권잡는 데만 급급했지만, 이렇게 5년을 더 버텨야 한다. 애초에 증세없는 복지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은 것을, 세법을 개정하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등의 어린애들 얼음땡놀이 룰 바꾸듯 눈속임이나 하고있으니 그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야권도 여권도 자신들의 걸어놓은 슬로건이 복지국가였으니 복지를 포기할 수도 없고, 상대당에 대한 지지율을 생각하자니 증세를 하기도 힘들다. 그야말로 여권은 정권을 잡았다뿐이지, 그것으로 인해 이렇다할만한 실익을 얻은 게 하나도 없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이 나라에 더이상 보수정당은 없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보수 세력의 의무는, 진보세력이 추진하는 복지국가 정책에 보다 이성적인 판단기준을 적용하여 이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보수세력은 사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호감을 사기가 힘들다. 국민들 입장에서, 진보세력들은 결혼해도 돈주고 애낳아도 돈주고 직장짤리면 돈주고 늙으면 돈준다고 하지만, 보수세력들은 사사건건 그런 것들을 걸고 넘어지며 그러면 세금이 늘어납네, 국가경제가 어떱네 하며 와닿지도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세력은 그들의 사명의식을 가져야한다. 국민에게 어느정도 미움받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지녀야한다. 보수세력은 국가와 국민에게 쓴소리를 할 줄 알아야한다. 국가와 국민이 달콤한 나락에 빠지기 전에 쓰디쓴 약을 먹여야한다. 즉, 보수세력은 악마의 변호사Devil's Advocate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더이상 악마의 변호사가 없다.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눈이 시뻘개진 정치세력들만이 있을뿐이며, 나라꼴이야 어찌되든 일단 집권부터 하고보자, 의석부터 많이 차지하고보자는 식이다. 무엇이 우리의 보수세력을 무너뜨렸는가?
지지Support와 신뢰Credibility
가령 예를 들어보자. 결혼상대자를 고르는 기준이 경제력이 유일하다고 가정하면, 연봉이 높은 사람을 고르겠는가 아니면 집안재산이 많은 사람을 고르겠는가? 어떤 남자 A의 연봉은 10억이다. 그러나 A는 200억이라는 빚을 지고있다. 분명 결혼상대자로서는 그리 좋은 조건은 못된다. 반면, 어떤 남자 B의 연봉은 2000만이지만, B의 재산은 200억이다. 두 남자가 임의의 여자에게 청혼한다면, 그리고 이 여자가 아주 속물이어서 경제력으로 남자들을 평가한다면, 분명 B의 반지를 받아줄 것이다. 연봉이 높다는 것은 현재의 일이고, 재산이 많다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통틀어서 일컫는 일이다. 연봉이 제아무리 높다해도, 도박이나 유흥으로 수백억의 빚을 지고있다면 아마 그 빚을 갚아나가는 데에만 연봉이 반 이상 차압당할 것이다. 더군다나 직업을 잃게된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된다.한강대교에서 만나려나? 반면, 연봉이 아무리 박봉이어도, 꾸준히 돈을 쌓아온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생겨도 대비할 여력이 있다. 또한 적은 연봉이지만 온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는 것이 가능하다.
자 내가 이 말을 왜 했을까? 위의 예시를 국가에 비교해보고자 한다. 연봉이 높다는 것은 정치세력이 국민들의 높은 지지Support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재산이 많다는 것은 정치세력이 국민들의 높은 신뢰Credibility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지와 신뢰는 매우 다른 의미다. 어떤 정치인이 무상의료 정책을 추진한다면, 이 사람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게될 것이다. 한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란, 그 정치인의 성향에 관계없이 정책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정치인이 보수정당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국민지지는 오를지언정 이 사람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게 된다. 원래 보수정당이라면 복지정책의 재정적인 위험성을 고려하여 축소하고자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이 보수세력에게 가지는 기대이고 신뢰이다. 한 정치인을 "신뢰"하는 것이란, 그 정치인의 정책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그 정치인이 일관된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령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나는 절대 이정희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정희가 항상 진보종북세력일 것이라고 신뢰한다. 다시말해, 이정희가 어느날 TV토론에 나와서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리라곤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날 이정희가 더위를 자셔서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장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즉, 신뢰와 지지는 이처럼 다른 문제이다.
신뢰가 장기적인 사안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지지는 아주 단기적인 사안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 정치세력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수십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정책이 국민의 공감을 사든 못사든 그들은 오랜기간 일관된 소리를 내고있다는 것을 어필해야하기 때문이다. 저새X들은 원래 저래. 반면, 한 정치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매우 쉽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요구하는 그 무언가를 잘 캐치해내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해결책만 주장할 수 있다면 일정정도 이상의 지지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지율에 목매는 정치세력
그러나 국가의 대사는 단기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연금적자가 10년 20년 후에는 수십조원~수백조원으로 불어나듯, 한 정책의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와 정책입안이란 늘 영원을 바라보고 해야하는 것이다. 경기침체와 국민경제의 마비는 국민들로 하여금 복지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그러나 복지라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새누리당은 한국의 제1여당이자 제1보수정당이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유일한 보수정당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 해야할 "복지에 대한 이성적 비판 역할"을 내팽개치고 단순히 지지율을 높이고자 포퓰리즘을 외쳤다. 정작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국민의 지지는 얻었을지언정, 앞으로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과연 새누리당을 진정한 보수정당으로 취급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cf) 경영학에서도 계속기업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기업이 영원토록 존재할 것임을 전제하는 원칙이다.
왜 정치세력의 국민 신뢰도가 중요한가? 보수와 진보는 항상 총성없는 전쟁을 치른다. 어느정도 국가재정이 바로서고 여유가 생기게되면 복지의 확대를 추구하는 진보세력이 집권하는 것이고, 국가재정이 어려워 복지의 축소가 필요하다면 보수세력이 집권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항상 상호를 견제하고 경쟁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순간 한국의 보수와 진보들은 국민 지지에만 영합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5년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서 정말 긴축적인 정책이 필요할때, 과연 새누리당을 진정한 보수로 신뢰하고 그들을 뽑아줄 수 있을것인가?
정치세력에게 집권은 부차적인 것이다. 항상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다가, 세상이 그들을 필요로 할때 비로소 수면으로 나와 집권하는 것이다. 정치세력에겐 당장의 지지율보다 장기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정치인은 카산드라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지금 세상이 평화로워 내 말을 아무도 귀기울여 듣지 않을지라도, 미래에 언젠가 닥쳐올 부조리에 대해 항상 경고해야 한다. 그 위기가 닥친 이후에, 비로소 나는 지금껏 내가 해왔던 말들에 의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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