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다?

요즘 이런 말이 유행이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합격하는 것보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능력있는 것은 결국 부모를 잘 만나는 능력이란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귀속지위가 인간이 일생동안 노력하여 얻은 성취지위보다 더 가치있게 평가되는 것이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할지라도, 마음 한켠으로는 어느정도 체념하고 살아가는 듯하다.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 "무능력자"들도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하고, 부모를 잘 만난 "능력자"들도 "자본주의 사회이니 당연한 것이다" 라며 즐기고 살아간다. 자본주의라는 게 가난한 부모를 만난 사람들은 평생 어렵게 살고, 부모를 잘만난 사람들은 평생 수월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자본주의 vs 황금만능주의

소련이 반세기 간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뼈아픈 실패를 하고, 세계는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형편없는 대우와 인식을 받고 있다. 세상은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를 약육강식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으며, 자본가라고 하면 인색하고 비인간적인 스크루지 인간상을 떠올린다. 각국의 정부들은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온갖 수식어로 덮으며, 자신들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은 황금만능주의이지, 자본주의가 아니다. 황금만능주의와 자본주의는 명백히 다른 개념이다.


자본주의란 무엇일까? 여기서 먼저 국가차원의 자본주의란 개인이나 시민사회 차원의 황금거래와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개인 및 시민사회 차원의 황금거래는 역사적으로 유구한 시간동안 존재해왔다. 어부가 생선을 농부의 밀과 바꾸는 거래도 황금거래이고, 시장에 시민들이 모여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것도 황금거래이고, 고용자가 직원에게 임금을 주는 것도 황금거래다. 그러나 이 모두는 실상 개개인의 황금에 대한 욕망이 맞아떨어짐에 의해 생겨난 거래, 즉 아주 협의의 자본주의일뿐이다. 사회구성원들이 단순히 시장에서 무언가를 거래한다고하여 그게 자본주의라면, 세상에 자본주의 아닌 사회가 어디있을까? 하다못해 사회주의 소련에도 시장은 있었다.


국가차원의 자본주의란, 위와 같은 단순한 황금거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희소한 가치들을 배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가령 어떤 의자가 하나 있고, 주위에는 앉고싶어 하는 두 명의 사람과 한 명의 중재자가 있다. 그렇다면 이 의자는 과연 둘 중 누구에게 주어야할 것인가? 중재자는 자신이 꼴리는대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의자를 줄 수도 있다. 혹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보이는 사람에게 의자를 줄 수도 있다. 누구에게 의자를 주느냐는 전적으로 중재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것이 국가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전의 시스템 혹은 계획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자에 앉고싶어하는 사람이 두 명이 아닌 천 명으로 늘어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중재자는 이 1000명의 사람들 중 자기가 가장 의자를 주고싶은 사람을 고를수 있을까? 이상형 토너먼트라도 하나? 혹은 이 1000명의 사람들 중 가장 병약한 사람을 고를수 있을까? 다 지들이 아프다고 할텐데말이지 그렇다면 만명이라면? 십만명이라면? 여기서 중재자는 자본주의를 도입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가치분배의 문제를 아주 쉽게 만들어준다. 의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2명이든 1000명이든 10000명이든, 이 의자에 대해 가장 높은 금전을 지불하겠다는 사람에게 의자를 주면 되는 것이다. 중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골라야할 필요도 없고, 가장 병약한 사람을 골라야할 필요도 없으며, 가장 의자를 필요로 하는 이가 가장 높은 금전을 지불하겠다고 할 것이므로, 가채분배의 문제는 상당히 쉬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예시는 아직 끝난게 아니니 잘 기억하기 바란다.)


사실 이러한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개인과 시민사회에서 황금거래가 활발할 때조차도 막상 중앙정부가 본격적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하지는 않았다. 이는 정치적 이유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왕정이 보편적인 정치체제로 통하던 중세시대까지는 왕실이 사회 가치분배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물론 자본의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사회의 가치분배에 있어서 자본의 역할보다는 정치권력의 역할이 더 막강했던 시기이다. 만약 국가차원에서 자본주의를 공식적인 사회 가치분배 시스템으로 도입해버린다면, 그 시간부로 왕실의 권위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왜냐? 자본주의에서는 보다 많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더 큰 영향력과 발언권을 갖게되고, 그렇게 되면 분명 왕의 권력까지 넘보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의자의 예시와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의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정치권력이 점점 비대해지는 사회에 가치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이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비롯한 계획경제체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정치권력에 의한 가치분배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함에 따라 수많은 비효율과 모순, 부조리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가 새로운 가치분배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우리가 현대에 이르러 생각하는 그런 황금만능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비효율에 대한 효율적인 가치분배 시스템이요,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민주주의를 좀더 현실성있게 해준 제도이다. 여기에 더해, 태어난 신분대로 평생을 살수밖에 없었던 전근대사회와는 달리, 자본주의 도입 이후에는 누구나 자본을 가지면 신분상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가 유연화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자본주의가 현시대에 이르러 얻어먹는 욕과는 정반대의 역할을 해온것이다.


억울한 자본주의

사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상당히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제도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혁명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자본주의의 핵심가치는 "공정"인데, 사회구성원들은 자신이 노력하는만큼 자본을 얻게되고, 그러한 노력의 대가인 자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게 되고, 이 자본을 축적하여 사회적으로 신분 상승을 노릴수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노예는 평생 노예이고 귀족은 평생 귀족이었지만,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자신의 노력에 걸맞는 성취지위를 얻게 해준다. 이게 바로 "공정의 정의"이다. 여기까지는 아주 잘 알려진 자본주의의 덕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있다. 위에서 썼던 의자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어떤 의자가 하나 있고, 그 의자에 갖고싶어하는 1000명의 사람이 있고, 이를 중재하는 중재자가 한명 있다. 상술했듯, 자본주의는 중재가가 어떠한 고민이나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단지 의자에 대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의자를 주면 되므로 매우 효율적이다. 의자를 갖고싶어하는 그 누구나라도 자신이 노력하여 의자를 사는 데에 필요한 자본을 모으고, 자신이 필요한만큼 가격을 제시하면 된다. 의자를 덜 갖고싶어하는 사람은 100원만 부를 것이고, 의자를 많이 갖고싶어하는 사람은 100,000원을 부를 것이다. 만약 100,000원을 부른 사람의 가격이 가장 높다면 그 사람에게 의자가 돌아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노력과 필요대로 가치가 분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 어떤 한 사람 A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도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A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만한 금전적 여유가 있으므로, 의자가 그다지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을 제시할 것이다. 즉, A는 자본을 모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상속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얻었고, 의자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지만 단순히 자본이 많다는 이유로 의자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자본주의의 본래 취지는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즉, 자본주의가 가치분배 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필요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한편으로, 사회구성원들은 모두 해당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가져야한다. 이것은 "공평의 정의"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교란자"는 자신의 노력과 필요에 비례하지 않는 가치를 손에 쥐는 사람이다. 이 교란자들은, 자본주의의 가치분배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며, 결국 상황은 약육강식, 황금만능주의로 흘러가게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없애라?

"공정"과 "공평"에 제대로 기반한 자본주의의 가치분배 능력은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답시고 연구해도 이렇다할만한 대안체제가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금전에 대한 욕망"이라는 인간의 추악한 본능을 사회적인 의미에서는 순기능으로 순화시키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막강한 힘이다. 다른 체제의 경우, 인간의 사상적인 무장이나 인간정신의 발전 따위를 언급하는데, 그런 귀찮은 매커니즘보다는 차라리 인간의 버릴수 없는 본능에 의지하는 쪽이 훨씬 수월하다. 어차피 세상이 발전해도 인간은 스마트폰만 쓸 줄 알게되었을 뿐, 선사시대에 비해 정신적인 능력이 향상되진 않는다. 가령 사회주의의 경우, (앞서 의자의 예시에서도 언급한) 중앙정부 계획경제체제의 비효율적인 가치분배를 어찌 감당할 것이며, 잉여생산물에 대한 이득을 취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어떻게 막을 것이며, 어차피 목표량만 채우면 되는 노동을 어찌 열심히 하게할 것인가? 사상무장? 세뇌교육? 이게 바로 자본주의가 아직까지도 대안이 없는 가치분배 체제인 이유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들어, 정은 자본주의 사회요, 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불평등 발생이요, 합은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들의 봉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틀렸다. 아직까지 세상에는 완벽한 자본주의 사회가 등장한 적 자체가 없다. "공정"과 "공평"에 의거한 제대로된 가치분배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자의 소외, 부익부 빈익빈, 부르주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 등은 일어날 수가 없다. 완벽한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분배 시스템은 여전히 전무하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이르러 "자본주의를 철퇴"하자는 주장들은 모두 헛된 것이다. 그들은 과연 자본주의에 대한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가? 그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더욱 진화된 가치분배 시스템이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철퇴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황금만능주의다. 빈부격차, 부와 빈의 세습, 부의 독점 등은 모두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철퇴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본주의, 즉 공정과 공평의 정의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완전한 자본주의로 회귀해야 한다.


상속제의 문제

자본주의는 교란자들로 인해 황금만능주의로 변해간다. 교란자들은 노력하지 않고서도 자본을 얻고,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고, 축적된 자본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좀먹는다. 자본주의 교란자들이 생겨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상속제도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가치인 "공정"과 "공평"의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시작해야한다. 시작은 똑같되,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미래에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이 인정되는, 그래서 자신의 일생을 윤택하게 사는 것이 인정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다. 누구는 저 앞에서 출발하고, 누구는 저 뒤에서 출발하는 것은 결코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상속제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않느냐는 사실 논쟁거리이다. 가끔씩 "내 자식에게 내가 물려주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심보의 사람들이 있는데, 자본주의의 본질을 항상 생각하라. 자본주의는 사회의 가치분배 시스템으로서 존재한다. 설령 자본주의가 부의 세습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가치분배 역할에 해가 된다면 당연히 상속제를 폐지해야한다. 그리고 애초에 공정과 공평의 정의가 바로선 제대로된 자본주의에서는 부의 세습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노력과 필요에 의한 자본축적과 윤택한 생활은 그 사람 개인의 일생에 한정되서만 해당된다. 부자의 자식이라고 그 부를 물려받아서도 안되고, 빈자의 자식이라고 그 빚을 물려받아서도 안된다. 그게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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