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위 두 문구는 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이자 2차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이다. 그의 행적은 한 세기가 지난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의 수많은 세기간 대대손손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그의 대중에 대한 통찰력만큼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대중은 이렇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반정부적인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지 정의롭고, 정부에서 하는 말이라면 어느 것이든지 음모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치성향과 맞지 않는 집권세력은 국가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피해망상을 갖는다. 그들은 수백개의 신뢰성 있는 통계자료와 수치자료를 제시하는 객관적이고 복잡한 보고서 대신, 아무런 사실에도 근거하지 않는 단 한 줄의 충격적인 문장에 선동당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즉 대중은, 생각하기 귀찮아한다. 다른 모든 이유보다 "생각하기 귀찮아한다"는 이유야말로 대중의 의식을 갉아먹고, 대중을 기반으로하는 민주주의를 갉아먹는다. 멍청한 대중들의 민주주의는 엘리트 정치와 다름없다. 정치 엘리트들은 선동당하기 쉬운 대중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추구하기에 바쁘고, 결국 권력은 이들에게로 집중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난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었다. 보다 많은 정보에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수십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 힘들게 찾아야만 했던 자료들을 이제는 집에서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대중의 의식 진보와 지식 함양에도 매우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었다. 내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많은 고급 백과사전, 공식적인 언론기사, 저명한 외신보도, 학계의 논문, 신뢰할만한 통계자료 등이 침대에 누워서 손가락질 몇 번 하는 것만으로도 접근이 가능해졌지만 대중들의 의식은 단 한 치도 진보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사상 유례없는 "정보접근권리"를 완전히 포기한채로,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올라온 자극적인 문구에 선동되고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들 대부분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아온 사람이라면 당장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음에도 대중은 그저 이것들을 받아들인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하다못해 네이버 백과사전에 "프리온"이나 "vCJD"를 찾아보는게 그렇게 힘들어서 프리온이 공기중으로 전염된다는 개소리(죄송하지만 순화를 시킬래야 시키기가 힘들다)를 그대로 믿고, 어디서 검증도 안된 "한국인은 광우병에 더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갖고있다"는 헛소리를 사실인양 받아들인다. 그 뿐인가? 이번 철도 파업 사태는 애초에 철도민영화 논란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는 수서발 KTX의 자회사 설립을 공표했을 뿐이며, 이마저도 민간자본이 개입할 수 없도록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끝났어야 했다. 인터넷에는 어떠한가? 철도가 민영화되면 철도요금이 수십만원으로 오른단다. 지금 이슈가 되는 의료민영화에 똑같은 현상이 또 벌어지고 있다. 맹장수술이 1000만원이 된다는 하등의 근거자료-심지어 그 흔하디 흔한 통계자료조차도 첨부안된-도 없는 문구가 SNS를 타고 리트윗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정권의 퇴진을 외치고있다. 분명 이 나라의 대중은 정상이 아니다.


이 현상은 대중이 생각하기 귀찮아한다는 사실과 맞아떨어진다. 상식적으로 철도요금이 수십만원이 되고 맹장수술이 1000만원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단 한번이라도 인터넷에 의료정책에 대해 찾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 단 한줄이라도 공신력있는 언론의 기사나 정부의 발표자료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단 한줄이라도 "최소한의 근거자료가 딸려있는" 정보를 얻으면 철도요금이 수십만원이 된다느니, 맹장수술이 1000만원이 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대중은 연예인 누구가 누구랑 사귀고, 가수 누구가 누구랑 깨지고, 누가 마약을 빨았는지, 누가 군대 안가려고 이빨을 뽑았는지를 찾아볼때만 인터넷을 사용할 뿐, 이런 자료를 찾아보는 데에는 인터넷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않는다. 그런거 찾아봐봤자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귀찮은 것이다. 맨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틀어놓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기웃거리면서 실없는 자료보고 낄낄거리거나 연예인 자료보고 쓰잘데없는 논쟁이나 벌이는 와중에 말같지도 않은 선동자료를 보면 "와 진짜? 대한민국 독재국가! 독재정권 OUT!"을 외친다. 난 사실 이런 인간들이 과연 "독재"의 뜻이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안하지만 SNS 상에 말도 안되는 반정부성향 글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것만해도 이 사회는 열려도 너무 열려있는 사회다. 지금 대한민국 대중에게 인터넷이란, 오랑우탄에게 인터넷을 준 것이나 그 활용도 면에서 크게 다를바가 없다.

cf) 연예뉴스에 대한 과도한 심취, 반정부성향의 선동자료에 대한 과다한 노출이 합쳐지면 기막힌 현상이 발생하는데, 각계 교수들이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조사하여 설명해주는 것보다 골빈 연예인 하나가 트위터계정에 정치적인 뻘글 하나 가령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겠다던지 올리는 것이 대중에게 더 어필하게 된다. 깨어있는 연예인이라나 뭐라나


연예계 뉴스 터지면 정부가 무언가를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좋다. 난 이 생각에 별로 찬성하지 않지만, 정말로 정부가 뭔가를 숨기기 위해 연예계 뉴스를 대서특필하는 빅 브라더라 치자. 이게 왜 먹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 안해봤나? 연예계 뉴스를 통해 정치적인 이슈를 덮는게 먹힌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대중들이 정치문제보다는, 하등 인생에 도움도 안되는 연예계 뉴스에 더 집중하고 열광한다는 뜻 아닌가? 만약에 정부가 치부를 숨기고자 연예계 뉴스를 터뜨리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중은 거기에 넘어가는 그들 자신의 수준낮음부터 탓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정부가 그럴 정도로 빅 브라더라면 애초에 자신들의 치부는 기사화부터 막을 것이다. 그만치 권력이 있는데 뭣하러 조금이라도 기사화를 시키겠는가? 소위 이러한 "오비이락" 현상은 평소에는 정치권에 관심도 없던 종자들이 연예계 핫이슈 터져서 "아주 간만에" 뉴스기사를 보다가 "얼떨결에" 정치기사도 같이 보게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일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난 선동당하는 대중들이 좌파든 우파든, 보수든 진보든, 친정부든 반정부든 상관하지 않는다. 난 그들에게 "최소한의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도 대중들이 그들 자신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굳이 원한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동네서점에 있고, 대놓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책도 버젓이 팔리고 있다. 이렇게 "온갖" 자료를 접할 수 있는데 결국 그들 자신이 눈가리고 귀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권리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자들은 민주주의고 뭐고 정치활동에 참여할 기본도 안되어 있는 인간들이다. 정부가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보를 찾아보려는 생각 자체를 안한다. 정부를 탓하기 전에 당신들 자신을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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